총자산이 3백조원대에 육박하는 시중은행인 우리은행, 정부가 떠안은 지 15년 동안 정부가 계속 민영화를 공언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지, 해법은 무엇인지를 두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 글 싣는 순서 |
1. 15년을 끈 우리은행 민영화…정부는 '이 핑계 저 핑계' 2. 해법은? "은행계 '히딩크'에 맡겨라" vs "현 시세대로 조기 매각하라" |
"옛날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고 난 뒤 변양호씨(당시 재경원 금융정책국장)가 헐값 매각의혹으로 구속되는 것 봤잖나. 그렇게 팔도록 몰아간 정치권과 여론은 어디 갔나.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우리은행을 파나. 팔았다고 치자. 가만히 있겠나. 몇 년 뒤 주가가 많이 올라서 산 측에서 큰 이익을 얻고 다시 되판다면 또 돌을 던질텐데 누가 책임지고 나서겠나."
우리은행 지분 51%를 가진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계속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원금을 회수하려면 주가가 13,000원선에는 올라서야 하는데 현재는 9,500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3월 16일 종가 9,490원)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을 시가대로 외국에 팔면 또다시 헐값 매각의혹이 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 시한을 정해놓고 우리은행 민영화를 이뤄내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달성가능성은 높지 않다.
글로벌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데다 저금리 상황에서 은행업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아 당분간 주가의 큰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자료사진)
◇ "민영화 조기에 한다면서 배당 왜 늘리나" vs "배당 늘리는 것도 회수의 한 방법"최근 우리은행 주식에 대한 배당을 늘리려는 시도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은행 주식에 대한 배당은 예년에는 주당 250원씩이었으나 지난해와 올해는 중간배당까지 포함해 두배로 올려 5백원씩 이뤄졌다.
이는 신한은행이 올해 1,200원, KB국민은행이 980원 배당한 것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시가에 대한 배당수익률로는 5.5%로 가장 높은 편이다.
이렇게 높아진 것은 매각이 계속 늦춰지면서 민영화 전망도 불투명해지는데 따른 대주주인 정부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순익이 생기면 배당을 해서 다 가져갈 것이 아니라 내부 유보를 통해 자산가치를 높여놔야 상품 경쟁력이 더 높아지고 내다팔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생기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민영화를 조기에 하겠다고 하면서 배당을 늘리는 처사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측은 배당금을 늘리는 것이 매각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예보로서는 매각이 안될 때 배당을 늘리는 것도 회수의 한 방법"이라며 "배당금 수익을 통해 회수해야 하는 공적자금이 줄어들면 원금회수를 위한 주가 목표금액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주당 5백원의 배당이 이뤄지면 예보의 배당금 수익은 1,700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의 공적자금 원금은 현재 4조 3천억원대로 줄어들었고, 원금을 회수하기 위한 목표 주가도 13,000원선으로 낮춰졌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분명한 것은 공적자금 회수의 한 방편으로 배당을 늘려 받을 정도로 우리은행 매각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 "4% 과점주주들의 컴비네이션 찾는 것은 30% 지분 투자자 찾는 것만큼 어려울 것"특히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지금까지 매각이 안 이뤄진 것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4% 이상의 과점주주에 대한 매각으로 매각방식을 바꿨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결과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큰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금융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전망했다.
"비슷한 지분을 출자한 여러 과점주주들이 서로 자신은 재무적 투자만 하는데 남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냐"며 "과점주주들 사이에서 누구는 재무적 투자를 하고 다른 사람은 전략적 투자를 하도록 하는 컴비네이션을 찾는 것은 30% 지분투자를 하는 경영권 투자자 한 명을 찾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민영화라는 원칙이 내걸린 가운데 지금까지 15년을 끌어온 우리은행 민영화.
앞으로 또다른 15년도 이런 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 "정부 소유 은행, 정치적으로 입김 안 받을 수 없다…우리은행 더 나빠질 것"그 결과는 우리은행이 계속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인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교수는 "우리은행을 현재처럼 계속 끌고 갔을 때의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정부 소유 은행이 정치적으로 입김을 안받을 수 없다. 그래서 은행이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세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계속 망가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상과제인 우리은행 민영화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오랫동안 이 문제를 들여다 본 전문가들에 따르면 검토해 볼만한 가지 않은 두 길이 열려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히딩크 같은 세계적인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위탁"…정부 결단 필요하나는 은행계의 '히딩크'를 모셔와서 경영을 위탁하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상품경쟁력을 높이는 한 방안은 위탁경영이라고 본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히딩크를 모셔오듯이 세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경영인을 모셔와서 전권을 주고 경영을 맡기자는 것"이라고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금융연구소 관계자는 말했다.
"예를 들어 웰스파고와 같은 세계적인 은행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그 브랜드의 시스템과 함께 글로벌 전문경영인을 모셔와서 전권을 주고 위탁경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히딩크가 와서 외부의 입김을 배제하고 박지성이나 이영표를 뽑아서 축구국가대표팀을 완전히 바꿔 놓듯이 이 전문경영인에게 계약기간 정부가 일체 개입하지 않으면서 경영을 위탁한다면 현재 온갖 군데의 청탁을 받아 시궁창이 되고 있는 우리은행은 인사문제부터 해결되고 경쟁력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은행계의 '히딩크'에게 경영을 위탁하게 되면 우리은행의 매각이나 민영화도 순조롭게 풀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과점주주 매각으로 매각방식을 바꿨는데도 우리은행에 대한 매수세가 약한 것은 우리은행의 경영이 지금까지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당국이 인사, 은행정책 등에 수시로 개입하는 한 시중은행으로서의 경쟁력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그런데 글로벌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주고 경영을 위탁하게 되면 상황이 180도 바뀌어 앞날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돼 매수세가 크게 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은행계의 '히딩크'에게 경영을 위탁하는 길로 가느냐의 관건은 정부의 결단에 달려있다.
정부가 위기상황에 몰려있지도 않은데 엄청난 이권이 달려있는 우리은행의 경영권을 글로벌 전문경영인에게 순순히 넘길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지금 가격에 손들고 누가 나서면 바로 그 가격에 팔아야"…정치권 보증 필요그래서 나온 두번째의 길은 현 시세대로 조기매각하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우리은행은 매각을 늦추면 늦출수록 은행은 점점 더 엉망이 되고 가격은 더 떨어진다. 지금 가격에 손들고 누가 나서면 그 가격으로 바로 우리은행을 팔아야 한다. 이것이 현재 가치화한 공적자금의 최대회수 방법이고 우리은행을 살리는 길이며 우리나라 은행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은행을 망쳐온 논리 중의 하나는 액면가로 계산해서 투입된 공적자금을 100% 회수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대학 1학년도 아는 현재가치의 개념을 무시한, 말도 안되는 논리"라며 "어떻게 2001년에 들어간 10조와 지금 회수하는 10조가 같은 거냐"고 반문했다.
다만 현 시세대로 파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손해보면서 현 시세대로 판다고 결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니까 여야 정치권과 대통령이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빨리 팔아라. 싸게 팔았다고 사후 책임추궁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확실히 전달돼야 한다"고 김상조교수는 말했다.
◇ "민영화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질 사람을 분명하게 정해주는 것"은행계의 '히딩크'와 같은 유능한 경영인을 모셔오는 방안과 관련해서도 현재의 소유구조를 그대로 두고서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절대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자율경영하도록 해서 경쟁력이 살아난 사례는 국내외은행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민영화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질 사람을 분명하게 정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리은행을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시가로 팔 수 있다면 왜 개인들한테 팔아서 분산시키나, 기관한테 팔면 된다. 그것이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나도 소액주주운동하는 사람이지만 주식을 분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주가 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소액주주가 아닌 기관투자자가 할 수 있다. 은행의 경우 과점주주 형태의 소유구조가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 민영화의 해법으로 제시된 은행계의 히딩크에게 위탁경영하는 길과 현 시세대로 조기매각하는 길, 이 두 길은 정부와 정치권의 중대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모두 비현실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은행 민영화를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늦추는 것이 우리은행을 점점 더 망하게 하고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아직 가지 않은 두 길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