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그동안 동계종목, 특히 썰매 종목의 불모지였다. 꾸준히 동계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냈지만 사실상 쇼트트랙의 강세가 가져온 결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편차가 컸다.
하지만 지난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가 확정된 뒤 뒤늦게 동계종목의 강화에 나섰고, 썰매 종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경기 시설조차 없던 강원도에 각종 시설이 만들어졌고, 선수가 없던 종목들은 다른 종목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 가운데 눈에 띄는 ‘원석’을 찾아 나섰다. 전문 운동선수 경력이 없는 일반 학생들도 ‘태극마크’를 달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 썰매의 전성시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불과 5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한국은 누구도 거들떠보는 이 없던 ‘썰매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를 여럿 거느린 당당한 ‘썰매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제는 전 세계 15개뿐인 경기장이 국내에 생기고 현대 자동차가 제작하는 썰매를 타고 경기에 나설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 중심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에서 세계 정상에 당당히 선 원윤종-서영우(봅슬레이), 윤성빈(스켈레톤)이 있다.
봅슬레이 2인조 세계랭킹 1위 원윤종(왼쪽)과 서영우는 불모지의 설움을 딛고 당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자료사진=올댓스포츠)
◇”금메달에 가장 가까운 자격을 갖춘 선수가 돼야죠”
봅슬레이 2인승의 원윤종과 서영우는 지난 2010년부터 호흡을 맞춘 이후 6살의 나이 차에도 마치 부부처럼 서로의 눈빛, 행동만 봐도 속마음을 읽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제대로 된 경기장도 없는 데다 썰매도 다른 나라에서 빌려 국제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로 출발은 미약했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는 썰매가 전복되며 공식 기록도 없이 경기를 마쳤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하지만 유럽과 북미가 100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금자탑을 원윤종과 서영우는 불과 5년여 만에 완벽하게 뛰어넘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18위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3월 독일 빈터베르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무섭게 세계 정상급 선수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최종 순위와 직결되는 스타트 기록의 향상을 위한 두 선수의 피나는 노력뿐 아니라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합류로 2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까지 노릴 만한 수준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원윤종과 서영우는 ‘도전자’의 태도를 고수한다. 원윤종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가 메달이라는 결과를 보장받고 출전하지 않지만 남은 2년을 잘 준비해서 금메달에 가장 가까운 자격을 갖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국민의 응원과 관심에 보답할 길은 힘든 훈련을 참고 견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스켈레톤 입문 3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을 정도로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춘 윤성빈은 불과 4년 만에 세계랭킹 2위의 실력자로 확실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자료사진=올댓스포츠)
◇”전 아직 부족하니까요”2013년 여름까지만 해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윤성빈은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의 눈에 띄어 전격 발탁됐다. 스켈레톤 입문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국제대회에서 차례로 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지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세계랭킹 2위까지 뛰어오른 윤성빈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라는 별명처럼 최근 10년가량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주목하고 있을 정도다.
윤성빈의 최대 강점은 엄청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스타트. 전문 선수로 진로를 바꾼 이후 윤성빈은 근력 강화에 집중했고, 이제는 경기력에 방해될 정도로 근육량이 많아졌다. 덕분에 윤성빈은 결과와 직결되는 스타트 기록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