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와 승부를 벌이고 있는 바둑기사 이세돌 9단. (사진=구글 제공)
"이세돌 9단을 도와줬다고요? 제가 더 많이 배웠어요."
홍민표 9단은 바둑계에서 이세돌 9단의 절친한 동료 기사로 통한다. 지난 10일 알파고와의 2국 이후, 이세돌 9단과 함께 밤새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짠 멤버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당시 홍민표 9단을 비롯한 프로 기사들은 '패' 싸움, 알파고 초읽기 몰아가기 등의 전략 등을 이세돌 9단에게 제의했다. 수많은 의견 교환 끝에 이세돌 9단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나의 바둑을 두겠다'.
밤을 새워가며 도움을 보탰을 정도로 어쩌면 누구보다 이세돌 9단의 부끄럽지 않은 승부를 바랐던 이도 홍민표 9단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홍민표 9단은 이세돌 9단을 포함한 프로 기사들과 함께 회포를 풀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우리끼리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며 웃어 보였다.
1국부터 5국까지, 이세돌 9단과 함께 한 홍민표 9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SBS에서 5국 해설을 했다. 이세돌 9단의 오늘 바둑은 어떻게 봤나?- 초반에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싸움에서 이세돌 9단이 승리를 거뒀다. 그 이후에 알파고도 운영을 상당히 잘해서 잘 따라온 형세였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의 느슨한 수법들이 역전을 허용하게 했다. 이세돌 9단이 흔들어 가면서 변화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는데 알파고가 이미 빼앗은 우위를 잘 지켜내 완벽한 마무리를 했다.
▶ 사실 계가까지도 갈 수 있는 승부였는데 이세돌 9단은 돌을 던졌다.
- 내용 면으로는 만만치 않은 바둑이 이어졌다. 원래 반집만 지더라도 돌을 던지는 기사들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이세돌 9단이다. 패배를 알기 때문에 굳이 계가까지 할 필요 없다고 판단해 돌을 거둔 것이다.
▶ 그래도 이번 패는 지난 1·2·3국과는 달랐던 것 같다. 이세돌 9단이 끝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알파고에게 압박을 가했다.- 일단 이세돌 9단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고, 알파고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국 룰로 펼쳐지는 대국은 백돌이 유리하다. 그런 부분을 결국 돌파하지는 못했다.
▶ 2국이 끝난 후, 홍민표 9단을 포함한 동료 프로 기사들이 조언을 한 것이 승부에 적절히 쓰였다고 보나?- 이세돌 9단은 '나의 바둑을 두겠다'고 했다. 그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도움을 주러 간 것은 맞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고 나왔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연구하면서 경이로운 생각들을 알 수 있게 됐다. 얼마나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수법인지 배울 수 있었다. 제 앞에서 막혀 있던 고정관념의 틀이 깨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 알파고의 등장이 바둑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큰 획을 그어서 바꿀 정도는 아니고 정상급 프로 기사들에게는 한 가지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 같다. 알파고가 제시한 수들이 정말 놀랍고 좋은 수였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패러다임이나 기술을 쓸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물론 이세돌 9단이 4국을 승리하면서 인공지능이 아직 '난공불락'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목표로 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다.
▶ 아무래도 바둑계에서는 아쉬운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재대결의 여지는 없는지?- 아무래도 구글 쪽에서 원한다면 재대결은 성사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기사들은 이런 승부를 항상 갈망하고, 알파고 같은 기보들을 보고, 갖길 원한다. 알파고의 기보는 명보로 남을 가능성이 많다. 알파고에 대해 알게 됐으니 좀 더 흥미롭게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