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매치'로 불리는 바둑천재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맞대결이 9일 오후 1시 첫 대국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다. 인간과 AI의 바둑 대결이라는 이벤트에 대다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맞이하게 될 새 시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어떠한 미래를 선사하게 될까.
인간과 인공지능의 맞대결은 연초에 전해졌다. 지난 1월 말 이세돌 9단이 상금 100만 달러(환율 고정 11억 원)를 두고 알파고와 다섯 판의 대국을 벌인다는 소식이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는 앞서 중국에서 입단한 뒤 프랑스에서 활약 중인 판후이 2단과의 공식 대결에서 5전 전승을 거뒀다. 컴퓨터가 프로 바둑기사와의 대결에서 이긴 것은 알파고가 처음이다.
체스의 경우 1997년 러시아의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의 체스 대결에서 패한 바 있으니,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분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대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세돌 9단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간이 컴퓨터에 져서야 되겠느냐"며 "내가 무난하게 이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당시 '알파고는 대국 상대로 왜 이세돌을 택했을까'라는 물음을 갖고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재료과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SCI(과학기술인용색인) 급 논문 50여 편을 발표한 그는 바둑 애호가이기도 하다.
맹 교수는 "경우의 수가 장기, 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바둑에서는 치밀하고 빠른 연산 외에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람의 직관과 통찰력이 승부에 큰 역할을 한다"며 "지금까지는 컴퓨터가 사람의 직관과 통찰을 흉내낼 수 없다고 봤는데, 알파고의 경우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바둑을 통해 사람의 고유한 특징을 모방하고 학습함으로써 자기화시키는 과정에 있는 인공지능이 알파고라는 것이다.
맹 교수는 이세돌 9단에 대해 "여느 프로기사들보다 짧은 시간 안에 직관적으로 수읽기를 하는 모습"이라며 "바둑을 두다 보면 판 전체가 얽혀서 바둑돌 하나로 인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데, 이 9단은 이런 점을 감각적으로 파악해 이길 판은 이기고 질 판도 뒤집는 식으로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나간다"고 했다.
결국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 온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재차 학습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게 맹 교수의 견해다. "바둑처럼 복잡한 경우의 수를 예측하면 무인차량이 자동주행할 때 돌발상황이 벌어져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처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데, 인간과 비슷한 사고, 판단을 하는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 미래 사회를 설계하는 구글, 왜 인공지능 개발에 열을 올릴까
바둑기사 이세돌(가운데) 9단과 데미스 하사비스(왼쪽)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33) 9단-구글 알파고(AlphaGo) 세기의 대결' 기자간담회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결전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고조됐다. 이세돌 9단 역시 부담을 느낀 탓일까. 대회 전날인 8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인간의 직관력이나 감각들을 인공지능이 따라오기에는 아직 힘들지 않냐"면서도 "알고리즘을 듣고 나니 직관을 어느 정도 모방 가능하겠다고 생각돼 5대 0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나타내 온 기존 모습과 달리, 한 발 물러선 모습이었다.
기자회견장에 예정 없이 등장한 알파벳(구글 지주회사)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이번 대국의 결과와 상관없이 승자는 인류가 될 것"이라며 "우리가 이 기술을 지켜나가면 인간이 더욱 똑똑해지고 궁극적으로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서 검색엔진으로 널리 알려진 구글이라는 기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법하다. 구글은 알파고를 개발한 인공지능 연구기관 딥마인드, 이족보행 로봇을 만드는 보스턴 다이나믹스 등을 산하에 두고 있다.
SF평론가인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구글이 무인주행자동차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데는 임원진이 컴퓨터와 관련한 인류의 미래 문명에 그만큼 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책 '특이점이 온다'로 유명한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구글의 임원으로 들어가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 인간과 결합해 '포스트 휴먼'이 등장할 거라고 예측하는 인물이다.
박 대표는 "구글은 본래 사업인 검색엔진 영역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컴퓨터 스스로 인간에 필적하거나 인간보다 똑똑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커즈와일을 비롯한 임원진이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 점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자사 인공지능의 발전 상황을 환기시키려는 전략으로도 보여진다"고 전했다.
이어 "구글에서는 조만간 풍경사진 하나만 올리면 그곳이 지구상의 어디인지를 대답해 주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쌓여가고 있기에 비단 풍경사진 하나만 해당 되는 건 아닐 것"이라며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이 빅데이터를 통해 인공지능의 예측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