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당시 경찰에 입건된 가해 학생들 (사진=자료사진)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다시 들끓고 있다.
tvN드라마 <시그널>의 마지막 미제사건인 '인주 여고생 사건'의 모티브가 된 '밀양 여중생 사건'이 화제가 되자 온라인에 당시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해당 사건 연루자라고 밝힌 A씨가 자신의 페이스북과 온라인커뮤니티에 당시 검찰의 처분 결과를 공개했다.
SNS와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A씨의 주장과 검찰 처분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A씨의 '무혐의' 주장과 달리 검찰 처분결과로 볼때 A씨 또한 범죄인(피의자)으로 특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5일 자신의 검찰 처분결과를 공개하면서 "검찰조사결과 범죄인정안됨, 증거불충분, 죄가안됨, 공소권없음, 피해자진술없음으로 나와 있고 합의를 본 사실도 없을뿐더러 본 사건은 친고죄이기때문에 합의를 보아도 처벌을 받는다"면서 "가해 학생들은 이미 처분을 받았고 저처럼 무혐의 받은 사람들도 강간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친고죄의 경우, 지난 2013년 성폭렴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과 형법 등이 개정되면서 성범죄 관련 친고죄 조항이 모두 삭제되었다. 과거 성범죄는 피해자나 고소권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수사와 처벌이 가능했지만, 법 개정으로 모든 성범죄에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사라져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다.
사건이 발생한 2004년에는 법 개정 전으로 친고죄가 적용되었고, 합의할 경우 대부분 고소가 취하되었다. 당시 피해 여학생의 친부가 가해학생 부모들로부터 5천만원을 받고 탄원서를 써주고 몰래 합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친고죄와 관련해 잘못알고 쓴 부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해당 사건에 연루된 것은 맞지만 (강간)범죄 사실과는 다른 혐의"라고 주장했다.
A씨가 자신의 페이스북과 온라인커뮤니티에 공개한 검찰 처분결과
A씨는 또 '범죄인정안됨' '죄가안됨' 등의 처분결과 내용을 강조하며 해당 혐의(특수강도강간·특수강간·청소년강간·야간·공동공갈)가 없다고 주장했다.
A씨가 공개한 검찰 처분결과에는 '기소유예'로 기록되어 있다.
검찰이 공소장에 기재한 죄명은 가.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도강간등), 나.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등), 다.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청소년강간등), 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야간·공동공갈)이다.
검찰은 가. 나. 라.를 증거불충분으로 범죄 인정이 되지 않아 혐의없음으로 처리했다. 이 법률은 '성폭력범죄'와 '폭력범죄'를 규정한 법률로 검찰은 성폭력범죄와 관련해 특수강도강간죄와 특수강간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제반 정황상 A씨가 피해자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하고, 흉기 등 기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여 강간의 죄를 범했다고 본 것이다. '폭력범죄'에 대해서도 폭력행위 등을 자행하고 여럿이 피해자의 재산을 갈취했다고 봤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없거나 혐의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증거불충분'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사건에 연루된 고등학생 44명 중 10명은 재판에 넘겨졌고 20명은 소년원으로 송치됐으며 14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풀려났다. 피해자가 1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성추행과 폭력행위가 있어온 가운데 많은 가해자들을 한명한명 그 행위까지 다 기억하기 어려운 점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공소권없음'은 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고소가 있거나 처벌 의사가 있어야 죄의 유무를 판단하고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데, 고소가 없거나 취소되는 경우,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 검찰이 공소를 제기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즉, 당시 피해자측과 합의에 의한 고소취하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이 있었고, 이때문에 검찰이 쌍방간 합의로 죄가 안 된다고 처분했다고도 볼 수 있다.
A씨는 부모에게 여러차례 확인했지만 합의도 없었고, 경찰에서 한차례 불구속수사를 받은게 전부라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기소유예'는 검찰이 소송조건을 구비하는데 있어 범죄의 객관적 혐의가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범인의 연령·성행·지능·환경·피해자에 대한 관계·범행동기·수단·결과·범죄 후의 정황 등 전반적인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범행이나 범죄인의 제반상황을 참작하여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범죄인에게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바른 마음으로 살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즉, 검찰이 어떤 이유에서 범죄인을 처벌하지 않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준 것이다.
검찰청 (사진=자료사진)
온정 법률사무소 대표 한규정 변호사는 "기소유예는 검사가 범죄의 객관적 혐의가 충분하고 소송조건을 구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정황 등을 참작하여 기소하지 않는 것으로, 무혐의처분과 확실히 구별된다"면서 "공소권 없음 역시 소송조건이 결여되거나 형이 면제되는 경우 내려지는 처분으로 범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무혐의처분과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는 "당시 가해자들과 친하게 지냈던 것은 맞지만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했고, 집단 성폭행에가담한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된다. A씨는 "친구가 친구를 불러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40여명의 학생들을 경찰버스에 실어갔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폭행·폭언·협박도 있었다"며, "(실제)가해학생과 (후일)무혐의 처리된 학생들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고, 수사팀이 교체되고 나서는 억지 짜맞추기식으로 수사가 진행됐다"며 수사의 부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보통 검찰수사는 경찰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성립의 적절성을 판단한 뒤 기소하게되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실제 혐의가 입증된 가해자들은 형을 살거나 소년원에 가는 등 처벌을 받았지만, 단순히 가해자들과 함께 어울렸던 자신과 일부 친구들은 범죄에 가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는 것이다. 결국 이때문에 10여년간 한데 묶여 '강간범'이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왔다는 것.
한규정 변호사는 "피의자들 간 범죄의 경중이 다르고 실제 '무혐의처분을 받은' 피의자들처럼 억울한 피의자가 있을 수 있지만, 단지 기소유예나 공소권없음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해당 피의자가 자신도 당해 사건의 '억울한 피해자 중 하나다'라는 주장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를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처럼 '똑같은 강간범'이라고 확정할 근거도 없다. 검찰의 처분결과대로 강간행위에 대한 범죄사실의 요건이 충분하지 않기때문이다. 강간죄에 대한 법률적인 요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재수사 요구에 대해서도 또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검사가 일단 처분을 내리면 특별한 사정변경이 인정되지 않고는 재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