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안에 갇힌 윤기진 씨. (사진=영화 '불안한 외출' 스틸컷)
국가가 나의 사상을 판단하고 재단한다. 그것을 불순하다고 하면서 자유를 박탈한다. 자유를 찾은 후에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다. 19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일은 2016년 현재에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황선-윤기진 씨 부부는 왠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은 유명인(?)이다. 인터넷에 이들 이름 한 번만 검색해보면 각종 게시물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북한'은 이들이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단어다. 한 때는 '주사파'로 불렸고, 그 말이 사라질 쯤에는 '종북' 딱지가 붙었다.
윤기진 씨의 10년 수배 생활과 5년 수감 생활, 이 모든 것은 학생 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다시 감옥에 가게 된 이유 역시 감옥 안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한 장 때문이었다. '불순한 사상'은 또 한 번 윤 씨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형을 마치고 윤 씨가 출소하자 다음 타자는 황선 씨였다. 재미교포 신은미 씨와 함께 한 통일토크콘서트가 '종북콘서트'로 명명되면서 황 씨는 구속 수감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그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으며 현재도 재판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들 부부에게 '옥바라지'는 이제 그리 어려운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그들은 결혼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자유롭게 살아본 적이 없다. 두 딸이 있지만 네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아 본 시간은 채 3년도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라난 이 법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일본의 원활한 식민 지배를 위해 세워진 법은 권력자들의 국민 지배로 그 용도를 바꿔 가며 이 땅에서 살아남았다.
결국 '국가보안법' 법령에 따르면 통일토크콘서트부터 감옥에서 보낸 편지까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활동이 '반국가활동'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 이전에 국가가 국민의 어떤 사상과 행위를 '반국가활동'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마땅한가.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안한 외출'은 말 그대로 이들의 외출이 왜 불안할 수밖에 없는지, 15년 간 이어진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의 기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다음은 기자가 황선-윤기진 부부와 나눈 일문일답.
윤기진 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황선 씨. (사진=영화 '불안한 외출' 스틸컷)
▶ 인터넷을 찾아 보니 두 사람이 '종북' 인사로 유명하더라.◇ 황선(이하 황)> 그것도 역사가 있다. 예전에는 빨갱이였다가, 주사파에서 친북 그리고 종북까지 왔다. 오히려 이제는 '친북'이 온건하게 들릴 정도다. 이런 단어로 사람을 낙인 찍고, 사회적으로 따돌리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되돌아보면, 이런 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를 적대시하고 고립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이런 말로 '몰이'를 하면서 덮어왔다. 분단 상황을 악용한 '색깔'이라는 무소불위의 무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뻔뻔하다. 거기에 속지 말아야 보수도 진보도 진화한다는 생각이다.
◇ 윤기진(이하 윤)> 평양 출산 등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도 했고, 해명도 했다. 그러나 너무 반대쪽 이야기가 압도적이니까 해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영향력이 막강하고, 이것이 사회 구조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린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어버이연합 등의 이야기를 종편이 실어다 나르고, 그것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참 일사분란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겁이 날 수도 있었는데 아내가 감옥을 가면서 내려 놓고 나니까 겁은 덜 났다. 소위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 사람들이 흔들리니까 싸워 보는 게 어렵다. 중세시대에 '마녀냐 아니냐' 물었던 것처럼 '종북'이냐 아니냐는 비민주적인 확인이 당연하다는 인지적 관성이 생긴 것 같다.
◇ 황> 종편에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은 오늘의 제물이 되어서 난도질을 당하는 거다. 한창 토크콘서트 건으로 뉴스가 쏟아졌을 때 종편에서 매시간 마다 폭격을 맞았는데 어디에서 관상도 종북이라고 하더라. 당시 상황이 그랬다. 소위 진보 언론이라고 하는 일간지에서도 제 얘기를 싣지 못하겠다고 했었으니까.
▶ 두 분이 통일 운동을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 체제를 옹호했다는 이야기가 불거져 나왔다. 감독님은 최근 재판에서 황선 씨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는데.◇ 황>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혐오감. 이것은 분단 이후 기득권들의 집요한 세뇌와 이데올로기 공세가 만든 기저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깨지 않으면 통일에 대한 두려움은 끊임없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이 분단 체제에 있는 한 어느 곳도 지상낙원일 수 없다. 그리고 북한 또한 생지옥이기만 할 수는 없다. 충분히 서로 공존 가능한 의식적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위험하다.
◇ 윤> 지금의 북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혹은 '반북'이나 '혐북' 뉴스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 시스템 상 북한을 문제시하지 않으면 범법자이고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걸 따라가게 된다. 실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실질적인 내용은 드물고, 실체가 매우 없다. 북한을 욕하라고 하지만 북한 욕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 '종북 인사'라는 낙인에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기도 했나? 진보 진영 안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윤> 어느 날 선배 중의 한 명이 갑자기 전화를 했더라. 안부전화인 줄 알았는데 빨리 신은미 씨를 설득해서 국회에서 하기로 된 토크콘서트를 취소하라는 이야기였다. 신은미 씨 혼자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 행사 당일 날 입구에서 막을 거라고 하더라. 야당 쪽에서 초청해서 이뤄진 행사였고, 여러 유명인들 심지어 통일부 전 장관까지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초청자가 취소를 하게 되는 상황이 된 거다. '종북'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버리면 그런 관계들도 끊어져 버린다. 솔직히 화가 난다기 보다는 안타깝고 불행해 보였다. 본인은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정말 막역한 선배였는데 그 선배가 그럴 정도면 다른 분들은 어떨까.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
◇ 황> 오히려 토크콘서트 사건을 거치면서 정치인들은 연락 두절 상태가 되거나 훈계를 하려고 한다거나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잃은 것은 크지 않다. 안목이 있으신 분들도 있다. 지난한 한국사에서 그런 분들은 정말 말없이 있다가 결정적인 고난의 시기에 마음으로라도, 말 한마디라도 힘을 주려고 한다. 그런 정치인들 한 둘과 비교할 수 없는 역량이 있다.
윤기진-황선 부부와 두 딸들. (사진=영화 '불안한 외출' 스틸컷)
▶ 영화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투쟁도, 옥살이도 아닌 두 부부와 그 딸들의 이야기다. 특히 딸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 깊더라.◇ 황> 아이들이 얼마나 아빠를 어색해하면서도 좋아하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아빠 면회를 가서 메롱하는 장면이 있다. 온 가족을 휩싸고 있는 큰 우울감 속에서 아이들이 울 수는 없고, 자기들이 나름대로 택한 방법이라는 게 느껴졌다. 아빠가 출소했을 때 주머니에 손을 빼서 아빠를 안지 못하는 장면, 구속되는 아침에 아빠를 안지 못하는 장면이 너무 속상했다. 감독님에게 감사한 측면은 저도 몰랐던 아이들의 심리를 영화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는 거다.
▶ 부부 둘이 번갈아 가면서 옥바라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황> 우리 둘이 항상 장난스럽게 하는 논쟁이 그거다. 옥바라지가 힘드냐, 아니면 감옥 생활이 힘드냐. 이번에 제 옥바라지를 하더니 육아가 힘들다고 인정을 하더라. 엄마니까 감옥 안에서는 아이들 생각하면 정말 많이 눈물이 났다. 교도관 몰래 들키지 않게 우느라고 힘들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그 유가족 분들을 생각하면 울 수가 없었다. 영영 기다려도 만나지 못하는 그 아픔을 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 삶을 돌아보면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또 그 와중에도 행복이 있다. 물론 부부싸움도 많이 했지만 다른 친구들 만나보면 저희처럼 끈끈한 부부도 드물다.
▶ 부모 영향을 받아 아이들도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윤> 어머니께서 장난으로 제게 돈 좀 벌어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4~5학년인 저희 애들이 '할머니 아무리 그래도 아빠한테 돈을 벌어 오라고 하면 안 되죠'라고 이야기하더라. 집 분위기가 그런 게 있다. 우리가 너무 당했으니까 억울해서라도 투표권을 행사해서 바꿔야 겠다는 생각. 그래서 아이들이 선거 일정에도 관심이 많고, 촛불 집회도 자주 나가고, 특히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는 꾸준히 생각한다.
▶ 가족의 도움 없이는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힘들었겠다.◇ 윤> 당연히 가족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만큼 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저희를 지지해주고 계신다. 워낙 압수수색을 자주 당하니까 경찰 대하는 게 딱 서 있다. 사탕발림을 한다 해도 도와주지 않고, 겁을 줘도 주눅 들면 안된다. 어머니가 지지해 주는 게 전부인데 그런 응원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밝은 것 같다.
◇ 황> 원래 국가보안법보다 무서운 것이 가족보안법이다. 거기에 거스르지 못해 운동을 그만두는 이들도 많다. 어머니와 저는 다른 집 고부 관계에서 생기는 그런 갈등이 있을 수가 없다. 서로 너무 고마워하고, 그래서 가족 삼대가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
▶ 아이들은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황선-윤기진 가족의 소망이 있다면?
◇ 황> 아이들이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삶에 지치고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안에서 아이들이 대단히 낙천적으로 키우려고 애썼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이 영화를 가족의 기록으로 소중하게 끌어 안은 느낌이다. 학교에서 신문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우리 가족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왔다고 당당하게 붙였더라. 우리 아빠가 특급 수배자라고. (웃음) 모든 사람의 소망처럼 저희에게도 결손가정이 되지 않는 그런 꿈이 있다.
딸을 안고 있는 윤기진 씨. (사진=영화 '불안한 외출' 스틸컷)
▶ 현재 사회 운동이나 집회 활동은 자유롭게 하고 있나? 얼마 전에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기도 했는데.◇ 윤> 민중총궐기 현장은 아내랑 함께 갔다. 거기에 직접 뛰어든 건 아니고, 그냥 인도로 따라 다녔다. 인도로만 다닌지 몇 년 됐다. 예전에 세월호 집회 때도 제 사진이 찍혀서 '종북 인사' 윤기진이 집회의 배후에 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났었다. 현재 재판 중이기도 하고, 소환장도 두 번이나 나왔다. 이게 한 번 굴레가 씌워지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사실 너무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크다. 통일이든 노동이든 인권이든 어떤 사회 운동 활동을 구체적으로 마음껏 해본 적이 없다.
◇ 황> 이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10만 명 정도가 움직이는 그런 판을 기획할 능력도 안 된다. 만약 자기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불안한 외출'을 14만 명이 보게 할 거라고 그러더라. 그랬으면 개봉 비용을 '텀블벅'으로 모으고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 1년 간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부터 수저론, 헬조선 등 사화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윤> 일단 세월호 참사가 너무 처참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확실히 바뀌는 것들이 있더라. 댓글 같은 걸 보면 예전에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 일색이었는데 요즘에는 나라가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자연스러운 연대감이 있다. 동지 같은 느낌? 1년 전이랑은 다른 세상 같다. 그 때는 저희에게 '뭐가 있으니까 저렇게 됐겠지'라는 시선이 대다수였다면 요즘은 정부가 하도 그러니까 그렇게 보는 시선이 많이 줄었다.
◇ 황> 운전사의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들을 좌편향 시킨다. 이 말이 현 시국에 딱 맞는 말이다. 대학 시절을 모두 투자해서 스펙을 쌓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과 행복의 조건을 갖춘다고 해서 내 삶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사회의 구조 자체가 비정규직 이상의 삶을 꿈꾸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달리라고 하는 방향으로 달려도 결국 '헬조선'을 벗어나기 힘들다.
▶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면 오히려 '국가'에 의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박탈당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민'인 셈이다.
◇ 윤> 생각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보장 되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제 생각을 묻는다. 너는 '종북이냐'고 묻지 않나. 그 질문을 공권력이 나서서 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어떤 진일보한 꿈조차도 꿀 수 없는 사회이고, 꿈 자체를 규제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내가 왜 이걸 확인 받아야 하는지 생각한다.
◇ 황> 독일에 있는 교포에게서 망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냥 여행은 가고 싶다. 우리가 돈이 없지 여권이 없나. (웃음) 그렇지만 이 땅에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또 정말 비정상의 정상화를 해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도망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두 사람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국가보안법'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여전히 폐지와 존속을 두고 논쟁 중인 법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황> 폐지말고는 답이 없다. 10월 쯤에 유엔에서도 폐지 권고가 있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에 형법이 만들어지기 전, 공산주의자들을 막기 위해 한시적 특별법으로 제정한 법안이다. 형법 안에도 내란죄나 간첩죄 등은 모두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때로는 형법보다 위에 존재해왔다. 민주 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제 사회에서 비인권국으로 비난당할 여지를 주는 이런 법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도 충분히 형법으로 각종 우려에 대해 담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