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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연합' '인문학 카페'…홍자매 '용기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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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춘천 '인문학 카페 36.5도' 홍승은 대표

강원도 춘천에 있는 '인문학 카페 36.5도'에서 새해 첫날 내건 입간판(왼쪽)과 청년사회예술가 홍승희 씨(사진=인문학 카페 36.5도 페이스북·노컷뉴스 자료사진)

 

"박 대통령은 참 열심이다. 열심히 해외순방 다니고 열심히 노동개혁하고 열심히 옷 갈아입고 열심히 산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새해에는 '무조건 열심히' 대신 '왜'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자. 아니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자!"

최근 SNS를 통해 접한 사진 속 빨간 입간판에 적힌 인상적인 문구다. '왜' '무엇을'이라는 성찰적 물음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를 향한 통렬한 한 방. 이 입간판을 내건 곳은 강원 춘천시 강원대학교 인근에 있는 '인문학 카페 36.5도'다. 사람의 체온만큼이나 따뜻한 온기를 품었을 것만 같은 이름의 카페. 이곳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홍승은(29) 대표와 8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카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홍 대표는 '대한민국효녀연합' '소녀부대' 등을 꾸려, 우리 사회 근간의 부조리를 비판해 이목을 끈 청년사회예술가 홍승희 씨의 친언니다. 이날 카페 앞에 내걸린 입간판은 '대한민국효녀연합을 대하는 오빠들의 자세'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너네는 얼굴도 어여쁘고 마음도 예쁘니 우리가 지켜주겠다. 너네는 '바람직한 사회운동'하는 개념녀이니 지켜주겠다.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돼"라는 내용과 함께. 홍 대표는 "동생이 벌이는 행동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또 다른 폭력이 만들어지는 분위기"를 우려했다.

인터뷰 기사임에도 홍 대표의 사진은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그의 요청이 있었던 까닭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든 '평범한' 청년들의 얼굴이 곧 홍 대표의 얼굴이리라. 이 점이 인터뷰를 통해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 인문학 카페 36.5도는 어떤 곳인가.

= 지난 2013년 12월 12일 협동조합 형태로 문을 열었다. 이제 2년 조금 넘은 셈이다. 학교 다닐 때 독서모임 등을 통해, 의미 있는 청년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갖고 활동하던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만의 일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 온 활동들을 이어가자는 마음이었다.

소중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계기, 공간이 없었다는 게 항상 안타깝고 힘들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을 우리가 일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데 뜻을 모은 결과다.

▶ 소중한 가치라면 어떤 것인지.

= 우리 카페 주변이 대학가임에도 불구하고, 참고서를 파는 곳은 있어도 대학생들이 문제 의식을 갖거나 자기 삶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형편이다. 굳이 카페 이름 앞에 '인문학'을 붙인 것은 사람다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는 의미였다. 우리 사회는 질문이 없는 사회라는 생각에서였다.

'중고등학교 나와 좋은 대학을 가고, 졸업하면 직장을 잡아 결혼하는 식의 짜여진 생애주기가 바람직한가' '정말 돈이 전부일까' '행복이 뭘까' 등 다양한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든 사람이 지녀야 할 삶의 태도라고 본다.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 삶의 자세를 추구하고 있다.

▶ 카페 운영 주체가 '감성노리협동조합'으로 돼 있던데, 조합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 청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조합원은 5명이다. 여성이 4명, 남성이 1명. 회원제로 운영 중인데 150명의 청년들이 가입해 모임,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함께 움직인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은지 1년 정도 됐는데, 카페 직원이 3명 있다. 뜻을 같이 하는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 카페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 먼저 인문 예술 프로그램이 있다. 예를 들어 '미술 소통 그림'이라는 프로그램의 경우 그림을 잘 따라 그리는 것을 배우는 모임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공요하는 식이다. 2년 전에는 위안부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공부하고 질문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활동이라고 보면 된다.

강연회의 경우 매달 1회 이상 여는데, 지역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부족하니 전국의 다른 목소리를 내는 분들을 초청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립출판물을 내놓는 것도 주요 활동이다. 의견을 모아 공론화할 수 있는 작업이 독립출판물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활동에 대한 성과물로 8권의 출판물을 냈다. '계간 진지'의 경우 지난달 12일 첫 호인 '꼰대 콘테스트'가 나왔다. 우리는 '꼰대'라는 개념이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일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적 문제라고 보고 있다. 각자 느끼는 개인적인 불편함이 결국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획을 해 나갈 것이다.

▶ 입간판은 어떻게 내놓게 됐나.

= 개점 이후 계속 해 오고 있다. 학생 때 대자보를 통해 답답함을 표출하던 것의 연장선이다. 요즘 학내에서 '미화' 등을 명목으로 대자보까지 검열하고 있지만…. 부산의 '헤세이티'라는 카페에서 입간판을 활용해 시민과 소통하던 모습을 예전부터 눈여겨봐 왔다. 우리 카페 문을 열기 전에 그곳을 찾아 취지를 설명 드리고 입간판을 차용했다. 거의 매일 쓰고 있다. 가끔 글감이 막힐 때는 예전 걸 쓰기도 한다. (웃음)

▶ 문구는 어떻게 선정하고 있는지.

= 그때 그때 신문을 보다가 느낀 것을 쓰기도 하고, 함께 모여 서로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고른다.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 안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혼자 앓고 있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으면 한다.

▶ 기억에 남는 입간판 문구를 꼽는다면.

= 먼저, 세월호 참사 직후 썼던 문구다. '출산율을 높이자고 하면서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뒀다'는 내용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는 입점 초기에 썼던 '돈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떤 활동, 어떤 의미 있는 예술 작품을 보더라도 돈으로 환산한다. 누군가의 꿈을 듣고는 밥 벌어 먹겠냐고 하는 사람은 이 카페에 출입금지'라는 문구다. 다소 건방졌을 텐데도 많은 이들이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내 주셨다.

마지막은 개점할 때 썼던 문구다. '대학가에 서점이 없다. 영어나 자격증 공부 대신 우리에게는 배울 게 너무 많다. 삶, 사람, 사랑, 관계, 정의, 역사, 나 자신, 우리….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공부해 보자'고 호기롭게 썼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 카페를 운영하는 데 기둥처럼 서 있다.

▶ 동생 홍승희 씨가 최근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 어떻게 다가오나.

= 안 그래도 어젯밤 그와 관련해 SNS에 글을 썼다. 저는 당연히 동생의 행동이 멋있다 생각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언론의 시선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있는 모양새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 속 가부장적인 억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인데도, 가부장적 폭력의 연장선에서 '미소녀' '개념녀' 등 또 다른 폭력을 가하고 있다. 우려가 크다.

인간 고유의 행위에 개념녀 등의 이름을 붙이고, '오빠부대'가 나오는 식으로 폭력에 의해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본다. 사실 진보진영 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는 분위기다. 비상식적으로 편을 가르는 정권과 싸우면서도 남성으로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시선이 있다.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필요하다.

(사진='인문학 카페 36.5도' 페이스북)

 

▶ 동생이 벌이는 활동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까.

= 사람으로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지하는 활동인데, '영웅' 이미지를 덧씌운다고 해야 할까. "저 친구가 있으면 우리 진영에 도움이 된다"는 사고는 가해자적인 위험한 발상이다. 어제와 오늘 동생과 통화를 했는데, 언론 등에서 그렇게 이름 붙이는 것이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행위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동생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 경계해야겠다는 말을 하더라.

"응원한다"는 말은 자신이 지닌 가부장적인 사상에 대한 성찰이 아니다. "네가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너는 선수, 나는 관객"이라는 생각은 무서운 것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 한목소리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동참이 중요해 보인다.

▶ 그대와 동생으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동력은 무엇이라 보는지.

= 결국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관계 속에서 느끼게 된 사람들. 우리 사회는 개인의 능력, 성격을 내세우면서, 개인이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탓하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같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분노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깨닫는 것이 많았다.

우리 자매는 둘 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부모님께서 학원을 강요하시지 않으시면서 우리를 믿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어머니께 사람에 대한 감수성, 공감도 많이 배웠다. 동생과 함께 일기를 쓰고 공유해 왔다. 일기라는 형식의 글을 통해 감정을 정리해 온 덕에 제 안의 욕망, 불편함 등을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다가오나.

= 혐오와 공포가 만연해 있다. 너무 억눌리고 겁먹으면서 사는 모습. 이런 공포심 탓에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혐오가 번지고 있다. 몹시 우려된다. 욕망의 분출구를 약자에서 찾는 모습, 폭력이 폭력을 낳는 셈이다. 좋은 의미로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갖고, 감수성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우리 카페의 새해 문구처럼 다들 열심히는 사는데 '왜'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한나 아렌트(독일의 철학자·사회학자, 1906~1975)가 나치에 대해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저 역시 그런 모습을 갖게 될까 경계하고 있다. 성찰을 위한 글을 계속 쓰는 이유다. 글을 잘 쓰려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이 어떤 것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글로 솔직하게 쓰면 삶이 정돈되는 게 있다. 작가뿐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내다보면 우리 모두 같은 문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 카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36.5도처럼 공익성을 지닌 카페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 문을 열 당시 많은 분들이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냐"는 말씀을 하셨다. 실제로 우리 카페 주변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넘쳐난다. 우리 역시 처음에는 "안 되는 건가"라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돈을 잘 버는 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는 기존 프레임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돈의 개념을 바꿔가는 발칙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게 우리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최근에 적자를 많이 줄였는데, 우리는 그 적자를 두고 '풍요로운 적자'라고 부른다. 돈은 결국 목적이 아니라,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회계지표상으로는 적자운영이기에 많은 분들이 걱정하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돈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도 잘 살 수 있는 것' '풍요와 은행계좌의 잔고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고 행동하고 있다.

협동조합으로서 민주적 운영도 중요한 부분이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과 가치를 지향할 때 얻어지는 것이지 않나. 경험 없는 청년들이 모여 운영하다보니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여성을 열등하게 보는 등 잘못된 인식을 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함께라는 의미가 뭘까'에 대해 공부하고 사례를 찾고 선배들도 만나면서 합의를 이루고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다.

▶ 공익성을 지닌 카페들이 살아남는 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정부, 대학 등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이러한 지원사업을 보면 "얼마 지원해 줄 테니 2, 3년 뒤 자립하라"는 식이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는데, 자립하라고 떠넘기는 것은 모순이다. 동생이 '예술가들에 대한 기초수급'을 강조하고 있는데, 모든 국민에 대한 기초수급 역시 계속 논의돼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지원금을 받는 데 더욱 당당해져야 한다고 본다. 4대강 사업이 그렇고, 가까이 춘천에서도 연말이면 아스팔트를 새로 깔고 하는데, 이러한 세금을 새로운 청년 문화를 만드는 데 써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청년 일자리는 물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원을 수혜로 여기지 않고 권리로서 책임감 있게 받아 쓸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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