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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한파 속 농성 사연들 "세상, 이렇게 엉망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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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파견노동자', '삼성 반도체 노동자', '하이디스 해고 노동자'

지난 8월 13일 기아자동차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64일째 고공농성 중인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세밑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구 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고공농성을 벌인 지 200일째를 맞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조원 최정명(46), 한규협(43)씨가 영하 8도의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앞에 섰다.

'기아차 비정규직 고공농성 200일 준비위원회'는 전날 오후 2시부터 18시간 동안 최씨와 한씨를 응원하고 기아차의 파견노동을 규탄하는 시위와 거리행진, 야간집회를 진행했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묻어났다.

50여명의 참가자들은 옥상을 향해 "이 땅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최정명, 사랑합니다, 한규엽, 힘내세요"란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지난해 9월 법원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468명이 기아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며 불법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사측에 통보했지만, 사측은 항소심을 준비하며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어 지난 5월 기아차 측과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가 사내하청 노동자 465명만을 정규직화하는 데 합의하자, 최씨와 한씨는 6월 11일부터 생사를 건 고공농성을 벌이기 위해 지상 75m 높이의 철판 위에 올랐다.

200일을 넘긴 고공농성에 양 발뒤꿈치가 동상에 걸려 벌겋게 부어올랐다는 한씨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엉망인 줄 몰랐다"며 "집시법 위반이라고 수백명을 구속하면서 십수년간 임금착취와 불법파견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없다"고 개탄했다.

고혈압 증상이 심해진 최씨도 "법원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3~5개월 정도만 (고공농성을) 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사측에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2심 선고도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노사가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자들의 몸부림은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7월 23일 오후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회의 (사진=황진환 기자)

 

31일 현재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는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두 달 넘게 농성·투쟁 중이다.

비닐로 덮인 천막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펼 수조차 없고, 찬바람을 이겨낼 방한도구라고는 침낭과 핫팩이 전부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뒤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유명을 달리 한 고(故) 황유미(향년 23세)씨의 아버지 황상기(60)씨는 "삼성전자 사옥에서 화장실이라도 이용하면 좋겠는데 이마저도 막고 있다"면서 "자동차 소음과 가로등 불빛 때문에 잠도 설친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일방적인 보상을 추진한다고 주장하며, 협의를 통해 합의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200일을 넘어선 농성장도 있다. 대만 대사관이 있는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는 하이디스 공장 해고 노동자들이 216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금천구 가산동의 한 철근 구조물(하이텍RCD코리아 노동자 구자현, 신애자)에서도 고공농성이 진행되는 등 갖가지 사연을 지닌 노동자들은 서울 시내 10여곳에서 시린 겨울을 맞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2교 북단 광고탑에서 차량 도색 유지 서약서 폐기 등을 요구하며 68일째 농성을 이어갔던 풀무원 화물노동자 연제복씨와 유인종씨는 30일 오후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스스로 농성을 해제했다.

이화여대 이승욱 교수는 "노사정 사이에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형태로 노동자들이 저항하는 것"이라며 "문제 해결보다도 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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