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조사 광경 (사진=위덕대학교 박물관 제공)
울진군(군수 임광원)은 울진 성류굴 입구 압벽에서 삼국시대 신라 금석문이 발견됐다고 16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신라 명문은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의 입구 바로 위 바위 면에 새겨져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에 고대의 금석문이 발견된 것은 국내 처음이다.
이 명문은 지난 6일 성류굴을 관람하던 박홍국(59) 위덕대 박물관장(고고학)에 의해 발견됐으며, 이후 3차에 걸친 조사결과 543년(진흥왕 4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류굴 명문(사진=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명문은 성류굴 출구의 위쪽 가로 30㎝, 세로 20㎝되는 석회암면에 세로 7행 38자가 새겨졌으며, 글자의 크기는 가로 3㎝, 세로 4㎝ 정도로 음각돼 있다.
글자는 예서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해서체이며, 새겨진 연대를 말해주는 첫째 줄은 비교적 또렷한 편이다.
그 밖의 명문들은 석회암 특유의 종유(鐘乳)가 흘러내려 새겨진 글자 획의 일부를 덮고 있거나, 표면 박락된 곳이 있어 판독을 어렵게 하는 가운데 현재까지 30여자가 읽혀진다.
명문의 후반부는 해석이 어렵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신라 진흥왕 4년(543년) 3월 8일에 △축부(△丑付) 대나마(大奈麻, 신라 시대 17관등 중의 10번째에 해당하는 경위〈京位〉)가 울진 성류굴에 왔다가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명문 탁본 (사진=위덕대학교 박물관 제공)
이 명문은 신라 중고기 금석문의 기재방식인 직명(職名)+부명(部名)+인명(人名)+관등명(官等名) 순에서 아직까지 출신 부명이 확인되지 않지만, '대나마(大奈麻)'의 관등명이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 524년)와 동일한 글자로 돼 있는 점과 간지(干支)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 명문을 조사한 학자들은 명문의 첫 부분인 '계해년(癸亥年)'이 543년과 603년(진평왕 25년) 및 663년(문무왕 3년) 중에서 543년에 해당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성류굴 입구 주변 암벽에는 이번에 발견된 명문 외에도 종유에 덮이거나 마모된 문자들이 보이는데, 이에 대한 추가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까지 판독(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심현용 울진봉평신라비전시관 학예연구사 공동판독)된 글자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