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 서구의회 파행 사태에 반발해 주민들이 의회 주변에 내건 현수막이 '불법 현수막'이라는 이유로 철거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우후죽순 걸린 정당 홍보 현수막에는 보장되는 '정치활동의 자유'를 주민들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일고 있다.
지난 7일 대전 서구의회 주변에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붙인 현수막.
◇ '불법'이 된 주민들의 분노
'서구주민 분노했다! 파행을 즉각 중단하라!'
'감투싸움, 정당싸움, 창피해서 못 살겠다'
'싸움도 일인가요? 한 일 없이 받는 337만원, 좋겠어요'
지난 7일 대전 서구의회 주변에는 '성난 현수막' 수십장이 나붙었다.
지난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서구의회 파행사태와 관련해 주민들이 자비를 들여 설치한 현수막들이었다.
지난해 출범과 동시에 의장 자리를 두고 '전국 최장기 파행'이라는 기록을 남긴 대전 서구의회는 최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난투극까지 벌이는 등 또 다시 파행을 빚고 있다.
의회 정상화에 나서야할 의장은 파행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고,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의원들 모두 매달 337만원의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 주민들의 분노를 더했다.
수십장의 현수막은 이런 서구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 현수막들은 설치 하루 만에 철거가 됐다.
'불법 현수막이라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선 지정게시대가 아닌 장소에 설치한 현수막은 불법이다.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둔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서구 주민들은 적용받지 못했다.
문창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주민들이 조항에 따라 '합법적으로' 현수막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각자 집회신고도 해야 하는데, 집회신고가 된 장소에는 같은 시간대에 또 할 수 없게 돼있다"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 사무처장은 "불법이긴 하지만 서구의회 사태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고려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말과 함께 "하루 만에 철거가 됐지만 현수막을 붙이고 싶다는 문의가 100여건 이상 온 상태"라며 성난 민심을 전하기도 했다.
실제 철거된 이후에도 또 다시 주민들의 이름을 건 현수막들이 서구 곳곳에 붙고 있다.
불법 현수막 신고는 일반 주민이 아닌 지역 정치권의 인사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전 곳곳에 게시된 정당 홍보 현수막.
◇ 아무리 도배해도‥정당 현수막은 '자유'
13일 대전 서구의회 인근의 한 교차로.
'10년간 54000여개 일자리 창출', '집권 여당의 힘'과 같은 문구가 적힌 붉은색 정당 현수막이 여러 개 붙어있었다.
서대전네거리 등 다른 교차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주민 성모(48)씨는 "많아도 너무 많다"며 "저런 건 단속 안 되나"라고 물었다.
역시 지정게시물이 아닌 곳에 걸려있지만, 정당들은 현수막을 이용한 홍보 행위를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하는 정당법 제37조를 든다.
이를 두고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가에서도 "법을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만큼 정당에는 유리하게, 또 정치인에게 칼날이 될 수 있는 주민의 의사표시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돼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문창기 사무처장은 "지방자치시대에 지방의회 파행을 성토하고 정상화를 요구하는 주민의 행동을 일반 상업 현수막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지방자치 본질을 고민하는 측면에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