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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한국교회②]교회, 약자들의 피난처.."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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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8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드 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그 시대, 교회의 모습은 어땠을지 돌아보는 내용을 지난 시간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당시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조혜진기잡니다.

1988년 도시산업선교회가 지원했던 대한광학 노동자 시위(사진=도시산업선교회)

 


[기자]

1988년 우리사회는 88서울 올림픽과 민주화운동,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등으로 분주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과제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했을까?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른바 '88선언'으로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해, 통일논의가 쉽지 않던 당시 우리사회에서 통일담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민간에 의해 작성된 이 최초의 통일선언은 그해 7월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통일 원칙인 ‘7.7선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녹취]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이 선언으로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 그 해 노태우 정권이 '7.7선언'을 하게 되는데 '7.7선언'의 배경이 바로 이것(88선언)입니다"

진보적 교회의 통일운동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교회협의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선으로 1986년에 이어 1988년에도 스위스 글리온에서 북한교회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남북은 공동으로 ‘글리온 선언’을 발표하고 매년 8월 15일을 공동기도주일로 지키기로 합의했습니다.

1988년은 노동조합 결성과 이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시기기도 했습니다.

진보적 교회는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섰습니다.

1988년 당시 주보에는 노동자들이 힘겨운 삶을 토로한 기도문과 당시 노동현안과 관련된 신문기사 스크랩 그리고 노동조합 개설 교실 안내 등이 담겨있습니다.

산업선교회는 노동자들이 소모품이 아닌,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임을 깨닫도록 도왔습니다.

[인터뷰] 진방주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단결권이나 단체교섭권이나 그런 것이 헌법으로 노동 3권으로 명시가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존귀한 생명을 지닌 인간임을 스스로 자각 하게 하고.."

88서울 올림픽 준비로 분주했던 당시 보수적 교회들은 올림픽 선교활동에 집중했습니다.

그 해 8월 여의도광장에서는 나흘 동안 '88복음화대성회'가 열렸고, 당시 25개 교단으로 결성된 ‘88서울올림픽전도협의회는 해외 선수단이 올림픽 기간에 예배드릴 수 있도록 대형교회에 동시통역시설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 한국교회는 고난 받는 이웃의 피난처이자 민족의 화해자였으며, 동시에 외형적 성장을 이루기도 했던 시기였습니다.

[영상취재/채성수 영상편집/이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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