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국의 위안부'를 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박유하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가 2일 오전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책 '제국의 위안부'를 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박유하(세종대 국제학부) 교수는 "제 책이 위안부 할머니를 비판하거나 폄훼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2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서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원래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 일본정부·지원자들의 방식과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책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지은이 박 교수를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날 박 교수는 성명서를 통해 "2013년 8월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제목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 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춰 고찰해 보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찰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다"며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 책은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관여해 온 주체들을 모두 조금씩 비판하고 있다"며 "이는 다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세월이 20년이 넘은 이상, 각 관계자들이 그 원인을 자성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데 힌트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저 역시 이 책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말했다. 똑같이 전쟁터에 동원하면서 조선인 일본군에게는 했던 보장, 생명과 신체가 훼손되는 데 대한 보장 제도를 일본인 여성을 포함한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서는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근대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적 사고, 매춘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것은 근대국가의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런 인식에 입각해 사죄와 보상의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저의 책이 고발당한 것은 무려 10개월 후이다. 제 앞에 던져진 것은 로스쿨 대학생의 조악한 독해로 가득한 고발장이었다"며 "이들의 해석은 오독과 곡해로 가득했지만 이들이 읽은 대로 한국 사회에는 '박유하 책은 허위'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고 말했다.
회견문 낭독 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박 교수는 '검찰의 기소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는 시각이 어떠냐'는 물음에 "검찰에서는 '공공질서에 반한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문장을 썼는데, 저는 공공질서에 반하는 책을 쓰지 않았기에 동의할 수 없다"며 "또한 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말하면, 책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아무 이야기나 다 써도 되냐'고 말할 수 있기에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로 보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 문제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맥락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 현재 정부가 대외적으로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기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기소로 세종대 교수 직을 내놔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그러한 학칙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아직은 학교 측으로부터 특별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구하는 물음에 "한국과 일본이 양극으로 대립한 상황에서 양국이 정치적인 타결을 한다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양국 국민간 앙금이 풀어지기 어렵다"며 "기존 학술담론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접점을 찾기 위해 양국의 대립하는 학자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실현 가능한 해결방안"이라고 답했다.
이하 박 교수의 성명서 전문.참담한 심경으로 이 기자회견에 임합니다.
<집필배경>
저는 10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2007년에 위안부문제를 위해 조성됐던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이 해산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갔습니다. 2010년, 한일합방 100주년이 돼 간담화가 발표되고 문화재 반환이 있었지만 위안부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일본매체에 쓴 칼럼에서 이 해에 꼭 해야 할 일은 위안부문제 논의를 위한 해결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정부조차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여름, 2006년에 위안부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발당했던 외교부가 소송에 패소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정황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같은 해 겨울, 수요시위라는 이름이 붙은 위안부문제해결 1000회를 기념하는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지면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때 다른 책을 집필 중이었는데 그 중에는 위안부문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헌법재판소에서의 외교부 패소와 소녀상 문제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론자'라고 하는 일본인터넷잡지의 의뢰를 받고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원래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일본정부와 지원자들의 방식과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쓰인 책입니다.
그런 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책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젠더이론에 입각해 여성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 온 사람입니다.('내셔널아이덴티티와 젠더-소세키/문학/근대>참조)
2012년 봄, 민주당정권이었던 일본에서 사죄와 보상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원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법적 책임'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향해 다시 한 번 위안부문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때입니다. 지원단체에게 패소해 한국정부는 지원단체의 주장대로 움직이게 되었지만 그 지원단체의 주장은 처음에 "군인이 강제로 11살짜리 소녀를 끌고 갔다"고 생각했던 때와 비교해 한 치도 달라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정황에 의문을 품고, 지원단체의 주장에 과연 문제가 없는지 검증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13년 8월, 저는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라는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 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찰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의 책은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관여해 온 주체들을 모두 조금씩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세월이 20년이 넘은 이상, 각 관계자들이 그 원인을 자성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데 힌트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해를 위해서'도 '제국의 위안부'도, 발간 직후에는 저의 책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리뷰와 인터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드러난 '소녀상'과는 다른 위안부상과, 한일관계에서 주요발언단체가 되기까지 성장한 지원단체 비판을 불편해 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저의 책이 고발당한 것은 무려 10개월 후입니다. 이 기간 동안 나눔의 집에 계시던 한 할머니와 친해졌고 그 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나눔의 집 소장에게 경계당하고 배척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지만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주일 만에 저는 고발을 당했습니다. 제 앞에 던져진 것은 로스쿨대학생의 조악학 독해로 가득한 고발장이었습니다. 이들의 해석은 오독과 곡해로 가득했지만 이들이 읽은 대로 한국 사회에는 '박유하 책은 허위'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습니다.
<문제된 부분에="" 대해="">
원고 측은 특히 '매춘'과 '동지적 관계'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매춘부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직종에 어린 소녀들이 동원되기 쉬운 것은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지만, 나이·매춘 여부와 상관없이 그 고통은 노예의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위안부를 단순한 매춘부라면서 책임을 부정하는 이들이나 매춘부가 아니라면서 '소녀'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들은 매춘에 대한 격한 혐오와 차별감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허위'라고 부정하는 심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당하고 고통 속에 신체를 훼손당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또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을 쓴 첫 번째 이유는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동원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런 틀 안에서 있을 수 있었던 일본군과 조선인여성의 또 다른 관계를 쓴 것은 우선은 총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그런 모습마저 보아야 표면적인 평화 안에 존재했던 차별의식, 제국의 지배자의 차별의식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조선인 위안부를 징병되었던 조선인들과 같은 틀로 간주하게 되면, 즉 '제국'에 성과 신체를 동원당한 개인으로 간주하게 되면 일본에 대한 사죄와 보상요구 이유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들에게조차 보장됐던 법의 보호가 없었다는 것을 일본을 향해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그들이 말하는 단순한 '매춘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또 하나의 개념 '업자'의 문제를 말한 것은 우선은 국가정책을 빌미로 협력하며 이득을 취하는 경제주체의 문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사실은 그런 '협력과 저항'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조선인업자만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규모가 큰 업자는 일본인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국가가 아무리 나쁜 정책을 써도 국민들이 저항하는 한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업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을 구매하고 때로 강간한 것은 군인이지만, 착취하고 폭행하고 감시하고 때로 납치와 사기에 관여한 것은 업자였습니다. 그리고 빚을 지워 지배하며 '노예' 상태로 둔 것은 업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죄와 책임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저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그러한 인간착취의 문제와, 그런 업자를 이용하는 국가와 제국의 문제, 그리고 나쁜 '국가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싶어 업자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협력자를 직시하지 않고 또 다른 추종과 협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적은 연구자와 지원 단체를 불편하게 만든 듯합니다. 이들은 다른 정황을 보는 일은 그저 '일본을 면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정치공동체만을 죄와 책임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저 역시 이 책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똑같이 전쟁터에 동원하면서 조선인일본군에게는 했던 보장, 생명과 신체가 훼손되는 데 대한 보장 제도를 일본인여성을 포함한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서는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근대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적 사고, 매춘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근대국가의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런 인식에 입각해 사죄와 보상의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과분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을 저는 이러한 생각이 받아들여진 결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제 책이 위안부할머니를 비판하거나 폄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대부분 '매춘부취급'을 했다고 그들이 단정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매춘부 취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매춘부라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부분마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제가 한 말로 환치시켰습니다. 물론 언론은 대부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1차적 책임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부분의 앞뒤 문맥을 알 수 있도록 책을 복사한 자료를 준비하였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고가 처음에 지적한 109곳에 대한 반박문 150매의 반박문, 검찰 조사에 응해 작성한 53곳에 대한 간략반박문, 그 밖의 재판자료들을 조만간 홈페이지를 개설해 공개할 생각입니다.
원고 측은 처음에 '허위'라고 했던 주장을 바꾸어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공공선'에 반하는 책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발 당시의 주장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쓴 책이라는 보도는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저를 공격하는 자료로 사용되곤 합니다. 특히 고발, 가처분, 기소 때 도합 세 번 저는 전 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야기하고 방치하고 조장해 온 원고 측 주변인들과, 저의 책을 삭제토록 조치한 가처분재판부와 그리고 검찰의 비인권적인 조사와 기소에 강력 항의합니다. 원고 측이 이제라도 자신들이 만든 위안부할머니들의 오해를 푸는 역할에 앞장서 소송을 기각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문제된>집필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