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화염병, 돌, 쇠파이프 등 극렬시위 상황을 가정해 모의 상황별 대응 진압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자료사진)
지난달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은 농민 백남기(69)씨가 중태에 빠진 가운데, 과잉 진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경찰은 차벽 설치는 가급적 피하겠다고 밝혔으나, 광화문광장에 시위대가 채 모이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차벽을 설치해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지하철 일부 구간에서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키고 역내 출입문을 봉쇄하는 등 일상적인 통행까지 차단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곳곳에서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현장을 지키는 진압 경찰들은 책임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 경찰의 '無최루탄 원칙' 덕분…"선제적 긴장 완화해야"
그렇다면 경찰과 시위대의 대립이 현재보다 훨씬 격렬했던 1990년대엔 이같은 갈등을 어떻게 풀었을까?
지난 1998년 1월 경찰은 '무최루탄 원칙'을 내세우고 이를 지켜, 시위대가 스스로 집회 현장에서 화염병을 꺼내지 않도록 유도했다. 이에 따라 1997년 172건에 달했던 화염병 시위는 1998년 2건으로 급감했다.
당시 이무영 서울경찰청장은 "경찰이 먼저 최루탄을 포기함으로써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빌미를 없앨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다시 고조되는 경찰과 시위대간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려면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선제적으로 긴장 완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서보학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는 "과거의 사례에서 효과가 확인됐듯이 경찰이 선제적으로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으로는 '물대포는 포기하겠다'거나 '차벽은 최후의 상황에만 설치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또 "최근 평화적 집회시위를 요구하는 게 압도적인 여론의 요구"라고 덧붙였다.
최근까지 경찰청 인권위원을 역임했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경찰이 먼저 일부 양보할 필요가 있다"며 "시위대 측에는 그 조건으로 자율적 질서유지대를 구성하라는 협상 카드를 제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 조끼로 가린 이름표…과잉 진압 우려도지난 14일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복면을 쓴 시위대에 대해 '익명성에 기댄 폭력시위꾼'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에게 원칙적으로 실형이 선고되도록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익명성은 '합법적 폭력'을 용인받은 공권력에 적용될 경우 더 큰 폐단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진압 경찰관이 입은 기동복에는 이름과 계급 등이 표기돼 있으나, 이는 그 위에 덧입은 조끼나 진압 장비 등에 의해 가려진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집회 참가자에게 신원이 노출되지 않아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 소재를 피할 수 있었고, 이는 과잉 진압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9년 국제앰네스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권고사항에서 "책무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일반경찰과 특히 진압경찰이, 제복에 이름표나 식별번호를 항상 착용하게 하라"고 밝혔다.
앰네스티 측은 이후 여러 차례 추가 성명을 냈지만, 최근까지 경찰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예산상의 이유로 진압 장비를 여러 대원들이 공유하다 보니 표식 부착에 어려움이 있다"며 "개인정보가 노출된다는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 '광화문광장' 집착은 시위대 자극으로 이어져
대규모 집회 때마다 광화문광장에 마련되는 경찰의 공격적인 1차 저지선이 오히려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12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1차 민중총궐기에 앞서 "광화문광장까지 가겠다는 것의 본질은 결국 청와대에 진출하겠다는 것"이라며 "도로를 점거하고 광화문광장 진출 시도가 있다면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을 차벽으로 틀어막아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는 길목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