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과오에 대한 지나치고 일방적인 단죄에 합류하지 않는 것은 어떤 정무적 판단보다 진실과 사실관계를 존중코자 하는 창비의 입장이요, 고집이었습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50년 만에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 자리를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백 교수는 25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비 문학상 통합시상식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연단에 올라 폐회인사와 함께 퇴임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는 "내년 초 계간 '창작과 비평'이 창간 50주년을 맞는다"며 "(저는) 창간호의 편집인이었고, 그 후 더러 끊김이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 편집인 자리를 지켜왔다"고 운을 뗐다.
백 교수는 몇 년 전부터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결심했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퇴임이 소설가 신경숙 표절 논란의 파급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지난 8월 표절 의혹을 불러일으킨 신경숙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여론에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백 교수는 "저는 올해를 넘기지 않고 물러나기로 두어 해 전에 이미 결심했고, 주위 몇 분에게 알리기도 했다"며 "(저의 퇴임은) 작년 11월에 창비 확대편집회의 석상에서 공지됐고, 올해 5월 초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책다방'에서도 공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비 50년은 시련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특히 저의 퇴임을 준비하던 최근 반년 남짓은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위기와도 또 다른 시련의 기간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창비가) 새로운 각오로 제2의 50년을 출발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기에 원망보다 감사가 앞선다"고 덧붙였다.
백 교수는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창비는 신경숙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가 곧 입장을 바꿔 사과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창비의 대응에 대해 자성하고 자탄할 점이 많다"며 "특히 독자와의 소통능력이나 평소 문학동료와의 유대 형성, 사내 시스템의 작동 등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기본을 지켜낸 것은 창비의 정신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백 교수는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어떤 '기본'을 어렵사리 지켜낸 것만은 자부할 수 있다"며 "바로 '기본'을 고수하는 그 자세가 많은 비판자의 맞춤한 표적이었고, 창비를 염려하는 분들이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기신 대목이었다"고 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더 큰 뭇매를 자초하기는 했지만 한 소설가의 인격과 문학적 성과에 대한 옹호를 넘어 한국문학의 품위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백 교수는 "저는 이것이 창비의 50년을 이어갈 후진들에게 넘겨줄 자랑스러운 유산 일부라고 주장한다"며 "표절문제 등 여러 과제를 두고 한층 다양한 관점에서 본격적인 토의가 벌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창비를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분발하여 날로 새로운 창비를 만들어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백 교수와 함께 김윤수 발행인, 백영서 주간도 이날 동반 퇴임했다. 창비는 내년 초 50주년을 맞아 백 교수의 후임 편집인과 발행인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창비 통합시상식에는 300여명이 모여 백 교수의 퇴임식을 지켜봤다. 도종환, 신경림, 현기영, 염무웅, 은희경 등 문인들도 다수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