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포 벤데타 그래픽노블 표지와 영화 포스터
◇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V fot Vendetta)'역사속 인물인 가이 포크스를 현대의 대중문화 속으로 다시 불러낸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의 창작자들은 '워치맨' 등 수많은 '명작' 그래픽 노블을 발표한 작가 앨런 무어(Alan Moore,영국, 62세)와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비드 로이드(David Lloyd, 영국, 65세)다.
이들은 1982년부터 85년까지 영국의 만화잡지 '워리어'에 이 작품을 연재했고, 88년에 단행본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이를 출간했다.
왼쪽부터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이 작품은 연재 당시의 시점으로부터 15년후인 1997년 영국이 핵전쟁을 겪은 뒤 파시스트 정당이 집권해 종교와 미디어를 통제하며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돼 있는 것으로 설정한다.
유색인종과 성 소수자, 사회주의자 등은 사회에서 제거되거나 생체실험소로 보내지고, 일반 국민들에겐 '굶거나 죽을 자유'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CCTV로 국민들을 감시하는 부서인 '눈', 도청을 통해 감시하는 부서인 '귀', 매스컴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입' 등의 국가 부서를 통해 국민들은 완벽하게 통제되고 이 모든 업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운명'이라고 부르는 슈퍼컴퓨터다.
이런 사회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청교도(puritan) 복장을 한 수수께끼의 사나이가 홀로 봉기에 나서며 혁명을 이끈다. 그는 '브이(V)'라는 코드명으로만 자신을 소개하지만 사실은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은 무정부주의자로, 해커다.
(사진=영화 '브이 폰 벤데타' 스틸컷)
그는 런던의 국회의사당과 중앙형사재판소(대법원 격인 건물)를 차례로 폭파한 뒤 TV 방송국에 잠입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방송을 내보낸다. 국가를 회사에 빗대 설명하면서 '경영진이 최악'이지만 "누가 그들을 선택했느냐? 바로 당신이었다"고 질타하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이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 '브이'는 슈퍼컴퓨터를 해킹해 파시스트 정부를 무력화시키는 파괴자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브이'는 최후의 행동에 나서면서 그에 의해 자유인으로 거듭난 소녀 '이디'에게 "무정부 체제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창조자와 파괴자의 얼굴. 파괴자는 제국을 붕괴시키고 그 잔해 위에 깨끗한 캔버스를 만들어 창조자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이디'가 숨진 '브이'의 뒤를 이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나서는 것으로 이 작품은 끝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두의 행동이 필요하지만, 모두가 행동에 나서기를 낭만적이거나 낙관적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셈이다.
반면에 2006년 미국의 워쇼스키 남매가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고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이 연출해 개봉된 동명의 영화(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주연)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수천 명의 시민들이 국회 의사당으로 몰려드는 것으로 마무리돼 결말이 '안이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참고, "<브이 포 벤데타>, 영화보다 만화를 추천한다", 오마이뉴스 허진무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51583&CMPT_CD=SEARCH)
또 영화에는 '운명'이라는 슈퍼컴퓨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개봉 이후 어나니머스 그룹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기 시작했다. 가이 포크스의 영웅적 이미지와 '브이'라는 그래픽노블의 캐릭터가 해커들의 적극적 행동주의(activism)과 결합해 저항의 아이콘으로 바뀐 것이다.
(사진=영화 V 포 벤데타 스틸컷)
◇ 앨런 무어의 예언원작자인 앨런 무어는 영국 중부의 노샘프턴(Northampton) 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가이 포크스와 그 동료들은 바로 이 지역에서 화약음모를 논의했다고 한다.
앨런 무어는 2012년 3월 영국 BBC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인 1950년대에 이 지역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이 포크스 얘기를 들려줄 때 감탄하는 어조를 깔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앨런 무어의 글 - 'Viewpoint : V for Vendetta and the rise of Anonymous', http://www.bbc.com/news/technology-16968689) 그래서 당시 아이들이 가이 포크스를 영웅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극악무도한 인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썼다.
그는 80년대 초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밀어부친 마거릿 대처 정부(1979년부터 1990년까지 집권)에 대해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외국인 추방 등을 주장하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National Front)이 득세하는 영국의 상황이 '브이 포 벤데타'의 아이디어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 포크스의 '잠재적 혁명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묘하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자신들의 작업실에는 있었고, 가이 포크스 가면을 작품에 쓰자고 제안한 사람은 그림을 그린 데이비드 로이드였다고 그는 밝혔다.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한 앨런 무어는 대처리즘에 반대하는 속내를 이 작품에 반영했고, 따라서 헐리웃에서 제작된 동명의 영화에 대해 대처리즘하의 영국상황이나 미국의 네오콘 등장 등 현실적 문제를 제대로 지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매우 싫어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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