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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고구려 패러다임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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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사진=자료사진)

 

- 조선은 고대로부터 중국 동북방의 거대한 문명세계를 가리키던 말
- 동북공정, 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좋은 자료 많이 나와
- 고려는 천자국
- 위화도 회군은 우리 역사 최대의 비극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5년 11월 18일 (수)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도올 김용옥

◇ 정관용> 오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을 찾아뵀습니다. 최근에 ‘도올의 중국일기’라는 책을 펴내고 계신데요. 1권부터 3권까지 나왔고 마침 오늘 제4권이 나왔네요. 중국과 고구려 이야기 앞으로 7권까지 나올 예정이랍니다. 무려 7건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 책을 펴내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최근의 역사교과서 논란 등등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 철학자로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어떤 것인지 말씀 듣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1권, 3권 나온 것도 제가 봤는데 진짜 일기 식으로 몇 월 며칠 이런 식으로 책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 책을 내시게 된 배경은요?

◆ 김용옥> 제가 작년 1년 동안 중국에 있는 대학 여러 곳에서 저를 초청을 했는데 그래도 연변자치주에 있는 연변대학이 저는 옛날에 독립운동사를 찍으면서부터 그 대학의 성립과정이나 이런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남들은 마치 그것이 동북에 있는 후미진 곳에 있는 대학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우리 역사의 핵심과 관련돼 있고 또 중국 역사의 상당히 어떤 중요한 흐름과 맥이 다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그 대학을 선택을 해서 정규과목 세 과목을 제가 학점강의를 했습니다.

◇ 정관용> 세 과목이나요?

◆ 김용옥> 네. 세 과목이나.

◇ 정관용> 한 과목은 일주일에 3시간 그대로고요?

◆ 김용옥> 한 과목이 3학점이니까 3시간이죠?

◇ 정관용> 그럼 1주일에 9시간?

◆ 김용옥> 네.

◇ 정관용> 그럼 국내 대학에 일반 교수님들이 하는 강의 똑같이 하신 거네요?

◆ 김용옥> 그러니까 중국말로 중국 학생을 대상으로, 물론 조선족 학생들이 몇 십 퍼센트 있지만 1, 20%밖에 안 돼요. 그런데 대부분이 중국말로 듣는 것을 그들이 원하기 때문에. 중국말로 강의를 했고 혹자들이나 ‘중국말이 좀 너희들이 듣기 어렵지 않냐’ 이러니까 산동 방언 쓰는 노교수가 와서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듣기가 좋다. (웃음)

그래서 하여튼 연변대학에 있으면서 제가 연변대학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경대학이나 기타 여러 대학에서도 초빙을 받는 대로 가서 얘기를 했고 심양에도 갔고 그러면서 그 지역이 저를 고구려라는, 그러니까 우리 고구려라든가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 마치 고대사 그러면 너무 국수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니까 국수주의의 생각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우파라는 느낌과 맞닿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전문 영역인 것처럼 이렇게 인지가 돼서 한국에서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사실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적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막연한 편견이 사실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지역에 살면서 보니까 자그마치 그 고구려의 옛 성터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그 지역에 한 200여 군데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규모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데를 틈틈이 나는 대로 가보면서 고대사로부터 역사를 생각하다 보니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도 다시 바라보게 됐고 나아가서는 인류의 역사, 총체적인 새로운 비전을 나는 획득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연변대학에서 1년 동안 강의를 했지만 그것은 나의 인식을 전환시킨 혁명적인 세월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정관용> 그걸 일기로 담아서 책으로 내겠다.

◆ 김용옥> 그래서 그걸 매일 원래 가면서 제가 매일매일 이것을 한 번 쓰는 것이,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중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데 중국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렇게 묘사를 하게 되면 어려워져요. 그리고 복잡해지고. 또 소설 형식으로 해서 상당히 좋은 작품도 있습니다만 저는 사상가로서 하루하루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것부터 해서 제가 체험하는 모든 것을 저의 언어로 얘기해줌으로써 사람들이 중국을 내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 그것은 최소한 내가 느낀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나같이 평생을 중국을 전공해 온 사람으로서 그 말과 역사와 풍습과 문화적 모든 것에 습관이 된 사람이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시각이기 때문에 우리 동포들과 이것을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일기 형식이 된 것이죠.

◇ 정관용> 대만에서 젊어서 공부도 하셨고. 그런데 물론 역사 전공이 아니셨잖아요. 철학 전공으로 거기에서 공부하셨던 것 아닙니까? 동양철학 쪽으로.

◆ 김용옥> 아. 이것이 우리나라 학문의 앞으로 이 과외문제라든가 이런 것도 다 변화가 와야겠지만 사실은 그 제가 철학전공이라는 말도 잘못된 말이고 철학 전공자가 왜 역사를 하느냐. 이것도 잘못된 말이고.

◇ 정관용> 왜가 아니고. (웃음)

◆ 김용옥> 이게 왜냐하면 ‘문사철’이라고 하는 것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라는 것이 우리 학문에서는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자다 하면 주자는 그 사람 자신이 시인이기도 하고 소동파다 하면 그 사람이 사상가이면서 대문호이기도 하고. 우리가 동양에서 공자다 하면 공자가 철학자가 아니라 사실은 그 사람은 거문고의 명인이었거든요. 대명인이었고. 실제로 시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노래를 전체를 편집한 작품이기 때문에 사실 문사철이라고 하는 것은 구분이 없죠.

◇ 정관용> 하나다.

◆ 김용옥> 하나이고. 역사를 역사가의 손에 맡긴다는 것처럼 비극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보통 우리나라 역사도 최근에 소위 말해서 향토사학자라는 말을 붙이는데 저는 향토사학이란 말도 상당히 잘못된 말이라고 보거든요. 비하된 성격이 있어요. 사실은 그들이 우리 역사를 훨씬 더 정확하게 보고 있을 때가 많아요. 서울대학 교수 가서 내가 물어보는 것보다 지방에서 사는 그 사람들의 향토사학자라는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 보면 건지는 것이 더 많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역사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항상 imagination. 하나의 상상력의 근원이지, 그게 무슨 사실의 체계에 대해서 엄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전문 영역에 있는 그 사람들만이 접근할 세계는 아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제가 철학 전공이라는 말씀 한마디 드렸다가 혼이 났는데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인생 전체에서 혁명적 시기였다는 표현을 쓰실 만큼 지난 1년 연변에 계시면서 중국사와 세계사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 기존에는 어떻게 바라보셨는데 이제는 어떻게 바라보게 되셨습니까?

◆ 김용옥> 정확하게 짚어서 질문을 하시니까 제가 참 어렵습니다.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는데. (웃음) 그 기간은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해서 불행하게도 가장 많이 접근할 수 있는 문헌이라는 것이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뭐니 뭐니 해도 근간입니다.

◇ 정관용>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웠습니다.

◆ 김용옥> 그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김부식이라는 분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토대로 했던 그 원 자료들이 남아있다면 분명히 어디엔가 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아있다면 참 행복하겠지만 그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고대사 전반에 걸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누구든지 일단은 의존을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을 일연선사께서 보충하셨다고 해서 빠진 일들을 적어놨다는 ‘삼국유사’라는 책이 있고. 그 이외로 우리가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한 부차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부식이란 사람은 우선 삼국사기를 쓰면서 그 자기가 쓰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발로 밟아봤느냐.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삼국사기라는 문헌은 기존하고 있던 중국 역사 자료들을 가지고 구성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쓰는 방식을 보면 우리가 예를 들면 고구려 건국설화다. 그러면 하백의 딸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알을 배게 돼서 잉태를 해서 난생설화가 나오게 되고.

◇ 정관용> 고주몽 설화 이런 거?

◆ 김용옥> 그렇죠. 그래서 알에서 깨어난 그 아기가 아주 영민하고 활을 잘 쏴서 주몽이 됐고 그러다가 그 전 부인의 소생들이 거기에 있는 원래 왕후 소생들의 왕자들에게 이제 미움을 받아서 어떻게 어떻게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런데 강에서 어떻게 건너려고 하는데 그 거북이가 떴다. 그런데 예를 들면 그러한 거북이고 떠서 건넜다 하는 것도 우리는 몇 사람이 겨우 말을 타고 가는데 그 거북이가 건너서 한 것하고 이런 것도 imagination할 때 우리가 예를 들면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고 할 때는 굉장히 장쾌한 그림을 그리는데.

◇ 정관용> 바닷물이 쫙 갈라지고.

◆ 김용옥> 쫙 갈라지고 그런데 거북이가 이렇게 뜨면서 몇 명이서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빠질 듯이 하면서 건너가는 사건. 그러면 서너 명이 건너가서 흘승골성이라는 데에 와서 도읍을 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이야기할 때 옛날 신화에서 알에서 깨어난 사람이 어디 가서 북부여에서 내려와서 무슨 건국을 했다고 한들 조그만 초가집 몇 채 지어놓고 건국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그 신화의 현장을 내가 가봤을 때 충격이라고 하는 것은.

◇ 정관용> 옛 성터들.

◆ 김용옥> 최초의 흘승골성의 성터의 규모가 아주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맨날 등산 가는 북한산성이 규모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 북한산성을 지으려면 그걸 몇 명이 가서 내려와서 지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럼 이걸 내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실제로 가보니까 왕 궁터가 다 있고 그 주변에 자그마치 이집트의 초기 피라미드와도 비견할 수 있는 무덤들이 무덤 대가 자그마치 2만기가 있다고 하는데. 2만기가. 그럼 그 장쾌한 신을 봤을 때 그걸 우리가 몇 사람이 알에서 깨어나서 어떻게 뒤뚱뒤뚱 걸어서 초가집 몇 집 지어놓은 걸로. 우리가 고대사를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왜곡했다, 이런 문제를 떠나서 너무도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단지 신화적 표현에 의해서 망각해버렸다. 그리고 전혀, 칼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그야말로 그 신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의 하부구조. 그게 몇 수십만 명이 동원된 성터며, 그리고 그걸 짓기에 얼마나 비옥한 땅이 필요하며 그 생산량이 어땠는가 하는 것을 현지에서 내가 보면서 와. 이건 내가 역사를 너무 나이브하게 잘못 알았다.

◇ 정관용> 그럼 기존에 우리가 의존했던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런 것들은 결국 현장을 보지 않고 중국 역사서에만 의존해서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다? 그러면 중국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려고 했다, 이렇게 보세요?

◆ 김용옥> 그러니까 제1의 문제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어떤 당대로서는 별 부담 없는 표현양식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걸 그 신화적 양식을 비신화화해서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되는데. 그 신화의 우리가 신화로써 받아들이고 속는다고. 그게 가장 큰 문제죠.

◇ 정관용> 그리고요?

◆ 김용옥> 그리고 현지를 가보지 않은 사가들의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부정확하다는 거죠. 예를 들면 단재 신채호 선생도 저보다 꼭 100년 전에 가셨는데.

◇ 정관용> 현장을.

◆ 김용옥> 현장을, 제가 가서 본 자리를. 그런데 그 양반도 거기에 딱 서서 하는 말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광개토대왕까지의 대수하고 광개토대왕비에 있는 대수가 다르다. 그럼 이런 것 제대로 규명하려면 건국은 무슨 한 200년 올려야 된다. 그 현장에 와서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러한 일들이 고구려의 건국이 그러한 식의 건국. 그러니까 흘승골성만 아니라 한 40년 있다가 국내성으로 옮기게 되고 거기에 환도성을 만들어지고 그 주변에 뭐 평양이란 것도 있고 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이 역사,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규모가 아니라고 할 적에는 그 지역이 이미 고구려가 생으로 와서 건국한 것이 아니라 그런 건국을 가능하게 하는 고구려 이전의.

◇ 정관용> 토양이 있었다?

◆ 김용옥> 토양이 있었다. 그것을 막연하게 우리가 고조선이라는 말로 깔아놓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니까 이것은 고대사의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말하는 하부구조의 문제라는 얘기죠.

◇ 정관용> 그렇군요. 그런데 심지어 우리는 신화를 신화로서만 치부해서 이것은 역사 이전의 것. 이것은 역사가 아닌 것. 이렇게 한 경향도 있었지 않습니까?

◆ 김용옥> 그게 아주 가장 큰 문제죠.

◇ 정관용> 그래도 사실은 신화는 그 당시 신화적으로 표현됐을 뿐, 분명한 역사였을 수 있다, 이 말씀.

◆ 김용옥> 역사죠.

◇ 정관용> 역사다.

◆ 김용옥> 아주 그건 엄연한 방대한 민족이동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북부여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자기들이 비문에도 얘기를 하니까. 그러면 지금 광개토대왕비라고 하는 건 지금부터 정확하게 1601년 전의 것인데. 제가 갔을 때 1600주년 기념이거든요. 여기서 1600년에 바로 그 자리에 장수왕이 세운 그 자리에 여태까지 있습니다. 그건 참 기적이거든요.

일본 사람들이 그걸 왜곡을 하기 위해서 시라토리라는 동경대학 교수가 그걸 옮기려고 함대까지 대놓고 그런 짓을 했었는데 결국 못 옮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있는데 그러면 최소한 광개토대왕비만 해도 우리가 그걸 전체를 읽어야지, 거기서 일본이 ‘도해파백잔’이니 이런 몇 개 줄을 놓고 아무리 싸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광개토대왕의 비라고 하는 것은 중국 역사상 그렇게 방대한 비가 없고 자수가 그렇게 많은 고대 석비는 없는데. 그 전체를 우리가 하나도 모르잖아요. 몇 구절에 대해서 무슨 논란이 있다. 이런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이 전체를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 정관용> 그 말씀은 결국 신화로 존재했던 고조선도 실체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역사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보자. 이 말씀이고.

◆ 김용옥> 고조선이란 말도 우리가 잘못 쓰는 건데 조선왕조에 대해서 ‘고’자를 쓰는 것이지, 옛날에는 그걸 그냥 조선이라고만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마천의 사기에도 조선조가 있고 그러니까 뭐냐면 조선이란 이름은 중국 역사서에 항상 저쪽으로 동북방 아니면 이쪽으로 조선반도에 걸쳐서 동북방에 있던 거대한 문명세계라고 하는 전제가 항상 있는 겁니다, 그게.

◇ 정관용> 아. 그런데 우리는 중국 중심의 역사관 내지 역사서에 의존해서인지 게다가 또 이중으로 일본의 어떤 식민사관으로 덧칠이 돼서인지 그걸 애써 부정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있었다.

◆ 김용옥> 네. 그것이 뭐냐면 일본 사람들이 쓰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의 대부분이 경성제국대학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은 서울대 학파들 그리고 그래서 위에서 흘러나온 오늘의 대체적인 역사학파들은 일단 소위 말해서 조선왕조가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정착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를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반도로 우리가 꼭 쳐놔버렸다, 이거죠.

◇ 정관용> 한반도만으로?

◆ 김용옥>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 당태종이 고구려하고 싸울 때만 해도 조선 지금 우리가 말하는 조선 반도가 아니고 방대한 요동지역이란 말이에요.

◇ 정관용> 전쟁터 자체가.

◆ 김용옥> 전쟁터 자체가 백암성이고 안시성이고 요동성이고 모조리. 그러면 지금 그리고 중국에서 여기 한반도까지는 너무 멀어요. 그러니까 누구를 책봉하든 사신을 보내든 대개 사람이 넘어오면 바로 있는 나라를 대상으로 했겠지, 여기까지 올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상식적인 얘기를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다 하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뭐냐면 한국 사람들은 진취성이 없고.

◇ 정관용> 가둬놓으려고 그런 거죠.

◆ 김용옥> 진취성이 없고 이 조그만 데 붙어서 큰 것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사대’라는 말이 나온 거죠. 그리고 그저 당파싸움해서 그 속에서 오글오글 서로 싸움박질 하고 분열하고. 지금도 사실 야당, 여당이서 싸움박질 하는 것만 부각시킬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더 건강한 미래를 만들도록 우리가 모든 이 사태를 볼 수도 있는 건데. 일본 사람들은 왜 당파싸움도 그저 너희끼리 싸움박질 한다.

그런 것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간에도 그저 서로 대립관계로만 봤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민족적인 거대한 동질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거시적인 흐름에서 일어나는 전체적인 그림을 안 봤을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뭐냐면 대체적으로 북부여라고 하는 것은 이 고구려는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오는데 북부여라고 하는 것은 대흥안령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함석헌 선생이 ‘뚜벅뚜벅 젊은 층들이 돌도끼를 손에 들고 우뚝우뚝 불끈 쥔 팔뚝을 저 하늘을 박차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다! 그러고 대흥안령 꼭대기에서 만주벌판을 내려다보면서 아마도 우리의 역사의 시작은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렸을 때 함석헌 선생이 이 구절을 내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었을 때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거대한 대흥안령 이래로 조선반도에까지 뻗치는 전체 영역을 우리 역사는 축으로 하고 있었다. 이 명백한 사실은 왜곡하지 말자.

◇ 정관용> 그리고 그걸 현장에서 느끼시고 이 책에서는 고구려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단어로 표현을 하셨더라고요.

◆ 김용옥> 그 고구려 패러다임의 중요성은 뭐냐 하면 예를 들면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광개토대왕이란 분의 일생은 연도가 정확하고 주변의 모든 것은 실존인물이란 말이에요. 도올 김용옥같이 그냥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써놓은 것이 광개토대왕비지. 왜를 숭상하기 위해서 왜를 치적해서 세워놓은 것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주어가 광개토대왕이 되고. 이런 거 해석할 때 너무 명백한 전제들이 있는데 그 당시 중원의 끊임없는 모용 씨라든가 선비족이니 이런 사람들과 끊임없는 교섭이 있었는데. 전투도 있었고. 그런데 광개토대왕비에는 하나도 그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광개토대왕비 전체에 언급이 되는 것은 전부가 백제, 신라 그리고 동부여가 나오고 하여튼 그런 가야 비슷한 것도 나오고 하여튼 이쪽으로만 그 방대한 업적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다음에 장수왕 때에 세워진 뒤로 우리가 충주 비라는 것이 그 동시대 비들이거든요. 그래서 중원비도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본다면 이들은 바로 저 바이칼 호로부터 대흥안령을 거쳐서 백두산을 거쳐서 이 한라산까지 뻗치는 이 어떠한 지세로 말한다면 이 전체 지역이.

◇ 정관용> 하나의 세력권이다?

◆ 김용옥> 세력권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중원이었고 이들에게서 이것이 중추였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하, 은, 주의 이쪽, 중국의 중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변방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지도를 놓고 볼 때는 항상 거꾸로 여기가 중심이고 하북성, 하남성 지역 이쪽으로가 중심이고 여기에는 어디 작고 후미진 데.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보면 중국 지도를 이 지형으로 놓고 보면 사실은 이 동북지역이라는 것의 이 광활한 땅이 중원 땅보다 오히려 더 넓거든요, 실제는.

◇ 정관용> 저도 그 지도를 지금 보고 있습니다만 만주벌판을 중심에 놓고 거기서 한반도로까지 지도를 거꾸로 그려놔서 거기가 중원이요, 중심이다. 지금 중국이 자기들이 중심이라고 말하는 그쪽은 오히려 만주벌판 중심으로부터 오른편의 변방일 뿐이다. 그런 시각의 전환이로군요.

◆ 김용옥> 그러니까 지금 이게, 우리 듣고 계시는 청취자 분들한테는 이게 안 보여서 참 유감인데.

◇ 정관용> 이건 등고선을 표현한. 높이까지.

◆ 김용옥> 높이로 표현한 지도인데 입체감이 있는 지도인데 동베이를 이전처럼 말해요, 여기에서.

◇ 정관용> 한반도와 북부는.

◆ 김용옥> 중국이 아무리 커도 실제로 이것밖에는 없어요.

◇ 정관용> 평야지역으로 보면 그러네요.

◆ 김용옥> 네. 그러니까 이거하고 이거는 대등한 관계지. 이게 무슨 여기가 우리는 마치 저 동토고 아무 쓸모없는 땅인 줄 아는데. 훨씬 더 수확량이 많아요. 인구도 더 많고. 그러니까 이거를 갖다가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너무 역사가들이 나이브하게 현지를 밟아보지 않는 데서 생겨나는 오류들이라는 거죠.

◇ 정관용> 방금 이 지도는 제가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조금 설명을 드려야겠는데. 그러니까 한반도 북부인 만주 벌판이 아주 평평한 초록색입니다. 그리고 중국 대부분의 지역은 아주 높은 고원이나 산맥지대, 사막지대고. 지금 상해나 이쪽, 중국의 동남부지역만 일부 평야지대인데 지금 도올 선생님께서는 중국의 동남부 평야지대보다 만주벌판 저쪽의 평야지대가 더 넓고 수확량도 크고 인구도 많았다. 저게 중심이었다. 그 말씀이군요. 갑자기 막 가슴이 통쾌해지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신라가 통일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또 그 후에 고려 그 후에 조선. 이렇게 되면서 우리의 역사는 자꾸 한반도 쪽으로 내려왔단 말이에요. 이것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 아니겠습니까? 그건 어떻게 합니까?

◆ 김용옥>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에서 이제 함석헌 선생님이 하버드 대학에 노벨상 후보로 추천이 돼서 오셨을 때 우리 집에 머무셨는데 원래 함석헌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씨알농장을 천안에서 하셨기 때문에 우리 집이 천안에서 큰 병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뵀던 분이라서. 그런데 그때도 함석헌 선생님 모셔놓고 거기 하버드대학의 유학생들끼리 모여서 우리 집에서 대토론회를 했었거든요. 그때 토론회의 주제가 뭐였냐면 함석헌 선생은 고구려를 잃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또 많은 학생들이 그래도 만약에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조선 반도가 이게 그냥 산동성과 같은 고려성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을 중원으로, 더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여태까지 그 민족들은 살아남은 민족이었습니다. 이 중원이라는 중광로 속에서 전부 녹아서 자기 아이덴티티를 상실합니다. 그러니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 정관용> 그렇게 됐을 거다?

◆ 김용옥> 오히려 조선이 사라졌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고. 그렇기 때문에.

◇ 정관용> 저도 지금 비슷한 질문이에요.

◆ 김용옥> 삼국통일이라는 것이 귀한 것 아닙니까? 함석헌 선생님한테 그런 질문을 던진 거죠. 그래서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그래도 신라가 지킨 겁니다. 어떻게 됐든 다른 나라를 끌어들였든 뭐했든 다시 당을 몰아냈고 그렇게 해서 그 명맥이 그래도 조선왕조까지 와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이거 참 좋은 논쟁인데. 저도 그래서 이 고구려 통일론에 정면과 부면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들에 관해서 저도 여러 가지 고민을 했는데 이제 이번에 가서 살면서 이 문제를 푼 거예요. 왜냐하면 역사라는 것은 반드시 우선 영토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 하면 역사의 전승을 누가, 우리가 계승하고 있고.

◇ 정관용> 정신적으로.

◆ 김용옥> 그렇죠. 예를 들면 로마 정신을 지금 루마니아가 다 갖고 있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로마의 그 정신이란 건 예를 들면 로마법이라는 것이 사실 로마문명의 최고인데 그러면 서구문명에 내려왔기 때문에 예를 들면 미국의 유명한 사가가 로마사를 쓸 적에 그거를 자기 역사로 쓰지, 무슨 이상한 남의 나라 역사를 쓰지는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과거사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한 사람들이 우리라는 것이죠. 신라가 통일했든 뭐가 됐든지 간에 그 정신의 기승은 우리지, 중국에서는 아무도 고구려를 말하는 사람이 없고. 동북공정을 말하는 사람조차 ‘우리 조상님들인데’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동북공정은 아무리 해봐야 할수록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하면 할수록 우리한테 좋은 자료들이 많이 나오니까 우리한테 이득이에요.

◇ 정관용>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우리한테 이득이다.

◆ 김용옥> 그러니까 문제는 제가 이제 거기 가서 깨달은 것은 뭐냐면 거기 가면 미천왕의 능이 있어요. 그게 고국원왕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모용 씨들한테 당해서 아버지 무덤을 파헤침을 당하는 비극을 당하는데. 그게 파헤쳐진 대로 지금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에 대한, 그 중원에 대한 악랄한 복수를 하지 않고 이분이 축을 평양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광개토대왕이 이쪽으로 개척을 하고, 장수왕이 이러면서 뭐냐 하면 평양으로 이 지도를 놓고 보면 이 조선 이쪽으로 후퇴를 한 것이 아니라 진출을 한 거예요.

◇ 정관용> 평양 쪽으로 더.

◆ 김용옥> 평양 쪽으로 더 진출을 하고 자기 영역을 넓힌 거죠. 망할 때까지 요동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든지 예를 들면 이 평양 천도라는 사실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게 고구려 정신을 남기는 위대한 사건이었다는 거죠. 그럼으로써 집 안에서 있다가 집 안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중국인들이 우리 변방의 역사일 뿐이라고 얘기를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이 백제, 신라와 이미 접합을 하면서 거기다가 자기 아이덴티티 핵을 삼았기 때문에 이것이 아마 고조선의 영향인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한국인의 가슴 속에 고구려를 심어주고 사라진 거예요. 그럼 그 사라지는 과정도 이 당나라로 볼 적에 왜 당태종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친정을 감행하며 30만 대군을 이끌고, 그러면 100만, 200만의 치중대까지 다 동원하는 친정인데. 친정이라고 하는 것은 당태종과 같은, 소위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성군인데. 친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으로 하면 의정부 자체를 옮기는 겁니다. 자기 아들한테 다 왕위를 다 물려주고 가야 되고. 그러니까 친정이라는 것은 규모가 다릅니다. 그런데 왜 구태여 그렇게 친정을 감행해서 안시성까지 와서 양만춘한테 화살을 맞고 가느냐. 그 중요한 이유는 뭐냐 하면 당태종이 아무리 수양제도 마찬가지고 수문제도 그렇고 중원을 자기들이 통일했다면 그때 자기들 통일한 중원은 빈약한 중원이에요.

◇ 정관용> 생산량도 적고.

◆ 김용옥> 그것을 통일했다는 걸 가지고 중국을 통일했다는 말을 못 하는 겁니다. 고구려를 쳐야만.

◇ 정관용> 더 큰 것을 먹어야 된다?

◆ 김용옥> 더 큰 걸 먹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러한 중국의 어마어마한. 고구려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중국은 통일되지 않는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신라가 편승했을 뿐이지, 신라의 힘으로 통일한 건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러한 우리나라가 그 당시 그러한 이 국제적인 역학 속에서 신라가 현명하게 기운을 잡은 것은 사실이나, 무슨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고구려라는 것은 성 중심의 연합체계였기 때문에 그렇게 망할 수가 없습니다. 평양에 있는 왕들은 잡혀갔지만 그대로 그것이 발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통일신라라는 말을 쓸 수가 없는 거고, 어떤 면에서는 남쪽과 북쪽 발해에 남북극 시대로 우리가 재정립을 해야 된다. 그러고 나서 그 발해가 멸망하면 고려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서는데 이 고려부터는 이제 어떤 우리가 말하는 아이덴티티가 보다 구체화되는데. 고려만 해도 그 고려 역사라는 게 고려사란 말이에요. 그런데 고려사라는 것은 정인지 이런 사람들이 전부 뭐냐 하면 조선왕조 초기에 만든 책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들은 완전히 고려를 조선 이조화했던 조선왕조화시켰어요.

◇ 정관용> 고려를?

◆ 김용옥> 고려를 이씨 조선화 시켰다니깐. 그러니까 완벽하게 뭐냐 하면 이 고려라는 것도 그 당시로는 거란, 요나라, 여러 여진, 말갈 이런 수없는 북송 남송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였기 때문에 고려는 천자국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그냥 제국처럼 쓴단 말이에요. 자기가 조선왕조가 명조에 대해서 주원장에 대해서 인식했던 것처럼 우리 역사의 최대의 비극은 위화도 회군이다.

최영 장군이 최소한 요동을 치자고 했을 때 요동까지 슬쩍 돌아 나오시기라도 했더라면, 조선왕조도 세우시고, 요동도 끌어안고 이렇게 해서 될 것을 왜 위화도까지 갔다가 압록강 변까지 올라갔다가 그냥 한 발짝 뛰면 될 것을 왜 거기에서 돌아오냐. 그건 무슨 얘기냐면 우리는 과거의 고구려에 있겠다는 얘기에요. 그 패러다임 포기하고 이제 조선왕조의 이남에서 우리 안착해서 살 테니까 우리 보호해 달라.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우리 역사에 끊임없이 있어왔고 이러한 멘탈리티가 조선왕조를 유지한 가장 주축 세력이 나중에 당파에서 노론으로 쭉 연결이 되면서 그 노론세력들이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학자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상업계 모든 데에 사실은 알고 보면 이 노론계열이 우리나라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선생님의 그 해석을 그대로 다 따라도 옛날의 영화일 뿐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게.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위화도 회군 이후로도 그 이씨 조선만 해도 500년이고요. 그리고 일제한테 뺏겨서 식민지 그리고 분단 그리고 지금의 현대 중국은 저렇게 G2로 다시 부상을 하고 있고 우리는 지금 쪼그라진 반도에서도 반만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고 있는. 즉 고구려 패러다임 가슴은 뜁니다만, 옛날 옛적에 영화일 뿐인. 제 말이 잘못된 겁니까?

◆ 김용옥> 아니, 참 정확한 지적을 하고 계시고 우리 현주소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데. 문제는 여기 지도를 놓고 보시면 이 세계지도에서 한국만큼 대중국, 러시아, 일본, 알라스카는 미국에 와 있고 유럽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 3개의 주요 열강이 직접 엉덩이를 맞대고 방구를 뀌는 동네는 이 쓰레기통밖에 없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김용옥>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지정학적 위치가 전 세계에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비록 작다고 하지만 이것은 핵이에요. 원자탄의 핵이라고요. 핵. 여기서 빵 터지게 되면 세계가 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비록 작지만 남북한이라는 게 어떤 자세를 취하냐 에 따라서 다시 고구려 패러다임 아닌 고구려 패러다임 할아버지도 여기서 생겨납니다.

◇ 정관용> 생길 수 있다?

◆ 김용옥> 생길 수 있어요.

◇ 정관용> 회복할 수 있다?

◆ 김용옥> 어떻게 살고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선 남북한이 이렇게 분열된 상태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김용옥> 그러니까 만약에 힘을 합쳐서 열강을 갖다가 우리가 대적하자. 지금 중국 대중 문제, 이슬람 스테이트, IS 문제, 모든 것이 한국 반도에 안 걸리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문제에서 한국은 굉장히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위치로 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고구려 패러다임은 유효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노래를 부르는 애는 노래만 조금 잘 불러도 세계를, 그 누구지? 싸이인가? 싸이라는 그 친구는 그렇게 세계를 뒤흔들잖아요. 기업가들도 하여튼 지금 텔레비전만 해도 우리나라 텔레비전이 제일 좋다고 하고.

◇ 정관용> 삼성, LG, 현대...

◆ 김용옥> 하여튼 이 세계를 조그만 나라인데도 뭔가 움직였다 그러면 글로벌하다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류든 뭐든 대장금 하나도 중동에서 대인기라고 그러고. 그러니까 이런 모든 문제가.

◇ 정관용> 뿌리는 고구려 패러다임이다.

◆ 김용옥> 고구려 패러다임이 우리 민중 속에 그대로 고구려는 살아 있는 건데.

◇ 정관용> 살아 있다?

◆ 김용옥> 네. 신라의 삼국통일 정도가 아니에요. 지금 우리는 이 대륙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피 속에. 그런데 유독 정치만 쪼그라든 고구려 패러다임의 인간들만 왜 정치를 하느냐?

◇ 정관용> 그거 왜 그렇습니까?

◆ 김용옥> 난 그 현상을 가지고 되게 고민을 내가 한 사람이에요.

◇ 정관용> 왜 하필 정치에는 그런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까?

◆ 김용옥> 그 고민의 첫째 문제가 도올 김용옥의 책임이다. 나 같은 학자가 제대로 된 고구려 패러다임을 안 가르쳤지 않느냐. 이거예요, 우선. 안 가르쳤다, 나는 몰랐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한 거죠.

◇ 정관용> 반성하셔야 되겠네요. (웃음)

◆ 김용옥> 이걸 학자들이 고구려 패러다임을 빨리 깨닫고 나 엊그저께도 Searching for Sugar Man이라는 영화를 보고 로드리게즈(Rodriguez)라는 어떤 멕시칸 출신의 가수 이야기인데 그런 거를 보고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는데. 나는 그런 영화를 보면서도 ‘아, 저게 고구려 패러다임이다’ 이런 감이 오거든요.

무슨 얘기냐면 이 고구려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동북동 베이라고 하는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시국에서 거대하게 놀 줄 아는 그 인식구조. 그리고 자기를 희생할 줄 알고 여민동락할 줄 알고 이러한 어떤 가치관이거든요. 그걸 우리가 너무 못 가르쳤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그리고 이런 것을 역사교과서를 조작한다고 하는 이런 발상까지 지금 조잡하게 흘러가고 있고. 그러니 이것은 내 생각으로는 우선 우리나라의 학문이 새롭게 깨어나야겠다. 그래서 정치인들을 제대로 길러야겠다라고 하는 반성이 있지만 지금 내가 길러서 반성해서 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급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이 깔려 있을 것이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우리나라 문제는 사소한 문제라도 우리 국내 문제로 해결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까 말한 지정학적 이유기 때문에. 작은 국내 문제 하나라도 이것은 글로벌 비전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글로벌 비전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 정치를 해야 되는데 정치적 리더십이 우리는 너무 저열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패러다임은 크게 양방향인데요. 하나는 대륙의 중심이었다고 하는 자부심, 자긍심과 글로벌 비전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조금아까 잠깐 언급하신 여민동락하는 영혼. 그런 것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 김용옥>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에 끊임없이 그런 게 있잖아요. 이순신 같은 분만 해도.

◇ 정관용> 백성과 함께.

◆ 김용옥> 이게 이런 분만 해도 예를 들면 마지막에 노량대첩이라고 하는 것에 돌아가시는데 그전에 명량에 관해서는 영화가 국민들에게 많이 봤으니까 그런데 왜놈들이 물러나가는데 군인으로서 그냥 간다고 하면 ‘빨리빨리 꺼져’ 그러면 됐지 왜 싸우냐 이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이 그야말로 거시적으로 생각하시는 분의 생각이죠. 왜냐면 이놈들이 여기에 들어와서 이렇게 7, 8년 이 나라를 국토를 개판을 내놓고 가는 이 날강도들이, 내가 죽을지언정 앞으로 몇 백 년 후손들에게 다시 이런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그 맛을 보여줘야 된다. 그러니까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본때를 보여주는 겁니다.

◇ 정관용> 쐐기를 박는다?

◆ 김용옥> 쐐기를 박는 거죠. 역사를 보시더라도 단순한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역사를 항상 보시고 계신 거고. 그러니까 역사라는 것은, 항상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크게 봐야 된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것이 뭐냐면 아무리 이놈들이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보급품이 와야 되는데 보급품이란 건 바다를 통해 가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호남만 잡고 있으면 이놈들은 결국 다 꺼진다. 위대한 그런 비전들이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되는 거예요.

◇ 정관용> 그와 같은 비전, 그와 같은 리더십 그런 것이 바로 고구려 패러다임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하나의 증거다. 이런 말씀이시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 아래에서 오늘날 우리가 닥치고 있는 모든 문제도 풀어야 한다. 이 말씀까지 오늘 듣고요. 내일 마저 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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