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한국' 일본과 프리미어12 개막전에서 완패를 당한 한국 야구 대표팀에 대해 일본 언론은 아쉬움과 함께 날카로운 지적을 내놨다.(자료사진=윤성호 기자)
'영원한 라이벌' 일본과 6년 만의 진검승부에서 완패를 안은 한국 야구. 지난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개막전에서 0-5 패배를 당했다.
경기 이틀 전에 출국, 현지 적응 훈련이 부족한 원인이 컸다. 한국은 전날 J리그 축구 경기 탓에 삿포로돔 그라운드를 밟지도 못한 채 실전을 치렀다. 결국 2회 선실점의 원인은 넓은 파울 지역과 다소 뻑뻑한 인조 잔디 등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컸다. 반면 상대 선발 오타니 쇼헤이(니혼햄)는 익숙한 홈 구장에서 괴력을 뽐냈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에도 실력의 차이는 엄존했다. 타선은 오타니의 시속 161km 강속구와 최고 147km로 오다 뚝 떨어지는 포크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미네소타로부터 1285만 달러(약 147억 원)에 포스팅에 응찰된 박병호(넥센)의 2루타로 힘으로 밀어냈지만 행운이 섞인 타구였다. 6회까지 삼진을 무려 10개나 당했고, 2안타 2볼넷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일본 언론이 개막전에서 드러난 한국의 약점을 집중 조명했다. 분하지만 남은 경기를 위해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강한 구위만 유지하면 韓 무서울 게 없다"일본 스포츠전문지 '데일리 스포츠'는 9일자에서 "한국의 '가장 찔리고 싶지 않은 약점' 찌른 일본 오타니의 필연이었던 10탈삼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일본과 개막전은 한국 타자들의 성향상 부진은 필연적이었고, 약점이 고스란히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오타니의 투구는 최고였고, 일본 타자라도 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어 "그러나 강속구와 포크볼이라는 단순한 공략법이 한국의 '가장 찔리고 싶지 않은 약점'이었다"고 꼬집었다.
일본과 프리미어12 개막전에서 나름 제몫을 해준 국가대표 거포 박병호. 그러나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자료사진=윤성호 기자)
한국 타자들은 대체로 투구 높낮이 변화가 약하다는 것이다. 속구로 윽박지른 뒤 낙차 큰 공으로 공략하면 당한다는 지적이다. 이 매체는 "한국 타자들은 원바운드로 떨어지면 헛스윙을 하고 포크볼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승부하려고 높은 공에 손을 대 뜬공을 친다"고 설명했다.
'한국 타자들이 변화구보다 빠른 공에 강하다'는 속설도 뒤집었다. 데일리스포츠는 "원래 적극적인 타격과 속구에 대한 강점이 한국의 특징"이라면서도 "하지만 같은 속구라도 구속과는 다른 '강한 구위'에는 대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오타니의 공격적 투구는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에는 강한 구위의 선수들이 갖춰져 있다고 자랑했다. 한국은 오타니 이후에도 최고 155km를 뿌리는 노리모토 다카히로(라쿠텐)에게도 2이닝 무실점으로 막혔다. 데일리스포츠는 "이 '강한 공'을 던지는 자세만 무너지지 않으면 지금의 한국 타선은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면서 "한국의 10삼진은 필연이었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동기 부여의 상실이런 징조는 지난 4, 5일 한국과 쿠바의 '2015 서울 슈퍼시리즈'에서도 나타났다는 의견이다. 데일리스포츠는 "4일은 한국의 6-0 완승이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쿠바 투수진은 너클 커브 등 변화구 위주의 투수로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쿠바 마운드는 아마 최강답지는 못했다. 선발 요에니스 예라가 ⅔이닝 3피안타 3볼넷 3실점으로 무너졌고, 이후 다니 베탄쿠르트 등 투수들도 구속이 140km 남짓에 불과했다. 경기 후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상대 투수들이 전부 변화구 80% 이상이더라.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터 세 가지가 80%였다"고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데일리스포츠는 "2차전에서는 한국이 1-3으로 졌는데 쿠바 선발 요스바니 토레스는 직구가 140km대였어도 포크볼이 잘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강한 구위와 포크볼에 약하다는 것이다.
오는 11일 도미니카공화국과 프리미어12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한국 야구 대표팀.(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여기에 동기 부여 등 다소 정신적인 해이도 약점으로 꼽혔다. 이 매체는 "한국 선수들은 훈련과 실전에 대한 의식이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이번 대회는 2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처럼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사를 쓴 해당 기자의 개인적인 견해도 곁들였다. 해당 기자는 "KBO 리그 분위기가 살아나 선수들도 만족하고 있다"면서도 "외국 기자의 트집일 수 있으나 한때 한국을 알았던 사람으로서 어딘지 부족함을 느낀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한국의 지인으로부터 '개막전이 한일전이라 프리미어12 분위기가 살았지만 지면서 달라졌다"는 소식이 들렸다"고 덧붙였다.
기사는 말미에 "한국이 일본전 굴욕적인 콜드 패배로 약진했던 2009년 WBC처럼 될 것인지, 대만에서 예선 탈락한 2013년 WBC를 반복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어 "한국은,이런 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아니 생각하게 했으면 좋지만"이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일단 개막전은 오타니의 초인적인 괴력에 당한 게 맞다. 한국은 물론 메이저리거들도 쉽게 칠 수 없던 공이었다. 사실 이 매체의 기사는 너무 뻔한 얘기였다. 160km가 넘는 강속구의 묵직한 구위와 날카로운 포크볼은 누구도 치기 어렵다. 비판 대상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 쿠바가 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식상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임하는 자세를 질타하는 일본 언론의 지적은 허투루 넘기기에는 날카로운 부분이 적잖다. 병역 혜택이 없어진 WBC 등의 국제대회는 동기 부여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은 부상 선수들이 빠졌다. 또 '도박 스캔들'로 주축 투수 3명이 낙마하는 악재로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과연 한국이 2009년을 재현할지, 2013년을 답습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