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사진=사진공동취재단)
#장면1
지난 2010년 6월 29일. 10개월여 동안 논란이 계속됐던 '세종시 수정안'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찬반토론을 위해 단상에 섰다.
그는 "세종시를 성공적으로 만들 책임과 의무가 정부와 정치권 모두에게 있다"며 수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요청했고 결국 표결 결과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세종시 수정안은 폐기처분됐다.
당시는 정권 중반기로 살아있는 권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개(?) 의원에 불과했던 박 대통령이 정면으로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 것.
박 대통령 뿐만 아니라 친박계 의원들도 똘똘뭉쳐 세종시 수정안 부결에 앞장서는 등 당시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소위 '여당내 야당'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장면2
지난 4월 8일.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의원이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을 위해 본회의장 단상에 섰다.
유 의원은 이 자리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 비판했고 심지어 야당 의석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개혁적 보수'를 표방한 유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국회법 논란으로 청와대, 그리고 친박계와 갈등을 빚다 원내대표 자리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당시 유 원내대표의 축출에 반대하던 비박계 중심의 재선의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기도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
#장면3
지난 10월 12일.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발표했다. 의원총회를 통한 당론채택 등 새누리당내 의견수렴 절차도 없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화 추진에 총대를 맺다.
정두언, 김용태, 이재오 의원 등 당내 비박계를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나왔지만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한 의원들은 어디까지나 일부에 불과했다.
물론 이들 외에도 수도권 의원들은 사석에서 "현행 역사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는 심각하지만 국정화는 과거회귀"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공개발언 요청에는 꼬리를 내렸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새누리당은 국정화 행정고시 국민의견수렴 기간 20일이 끝날 무렵이 되자 "역사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자"며 국정화 논란에서 은근슬쩍 발을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자료사진/윤창원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확실한 당내 차기 대권후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나 자신이 직접 살아있는 권력이 된 현재, 살아있는 권력에 겁없이 반기를 든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축출은 물론 차기 총선 공천까지 걱정해야 할 신세가 됐다.
유 의원 사태를 두 눈으로 목격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감히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지난 정부에서 스스로 '여당내 야당' 역할을 하며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앞장서 비판 목소리를 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뒤에는 현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커녕 쓴소리조차 용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 패기 없는 국회의원들, 자리보존에 급급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야 익히 알려졌다는 점에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다.
흔히 새정치민주연합은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 새누리당은 말이 너무 없어서 문제라는 평가가 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집안싸움이 너무 심해서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덕분에 새누리당은 상대적으로 내분이 적어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쉽다. 최근 몇년간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한 비결도 여기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에는 모범생들이 많아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잘 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는 바꿔말하면 당내 민주화가 그만큼 더디다는 의미다.
선거승리, 정권재창출을 위해서 하나로 뭉치는 것도 좋지만 한명 한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여당 의원이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고 하소연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지금은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