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전에서 두고 보자' 11일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 뒤 "깨끗하게 승부하자"며 작심 발언을 쏟아낸 넥센 염경엽 감독.(자료사진=넥센)
두산과 넥센의 뜨거운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PO). 스산한 가을비로 기온은 뚝 떨어졌지만 이들 두 팀의 열전이 펼쳐진 잠실벌 그라운드는 오히려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연이틀 1점차 접전. 가을야구다운 쫄깃한 명승부가 펼쳐졌습니다. 연이틀 오락오락한 비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만원을 이루진 못했지만 2만여 팬들이 포스트시즌의 묘미를 만끽하며 열띤 응원을 펼쳤습니다.
여기에 두 팀의 심리전, 혹은 신경전까지 더해져 승부는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염경엽 넥센 감독은 11일 2차전 뒤 기자회견에서 "야구를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 두산에서 계속 자극을 한다"며 작심한 듯 쏟아냈습니다.
평소 신중한 염 감독의 성격을 감안하면 수위가 꽤 높은 발언입니다. 이를 전해들은 김태형 두산 감독이 다소 당황하면서 "중요한 경기다 보니 너무 예민해 있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설 정도였습니다. 과연 염 감독은 왜 2차전 뒤 폭탄 발언을 하게 된 것일까요?
▲2차전 조명-벤치클리어링 상황일단 상황은 이렇습니다. 8회초 넥센 박동원의 타석 때 비가 굵어져 경기가 33분 동안 중단된 뒤 재개되려던 즈음이었습니다. 넥센 벤치는 조명탑을 가리키며 "라이트를 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강철 수석코치가 나와 구심에게 의견을 전했습니다. 당초 어둑해진 하늘에 우천 중단 이전 켜져 있던 라이트가 경기 재개 순간 꺼져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넥센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비쳐 밝아지면서 경기 관리요원이 조명을 끈 겁니다. 이에 경기 후 염 감독은 "공격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어둡다"면서 "공격하는 팀에 우선권이 있는데 라이트를 켜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심판들이 양쪽을 공정하게 하겠다고 했지만 수비에 방해된다고 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다만 김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경기 후 김 감독은 "라이트를 켰는데 햇빛까지 다시 비쳐 반사되는 부분이 컸다"면서 "수비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꺼달라고 했는데 타자 입장에서는 어두워서 켜달라고 하더라"고 해명했습니다. 공수의 입장 차가 있었던 겁니다.
'어차피 한번 일어날 일?' 11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8회 그라운드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는 두산-넥센 선수들.(잠실=두산)
여기에 염 감독은 8회 벤치 클리어링을 야기한 상황도 언급했습니다. 무사 1, 2루에서 서건창의 희생번트 때 두산 2루수 오재원이 취한 베이스 커버 동작입니다.
3루수의 송구를 받기 전부터 오재원은 타자 주자가 오는 방향으로 1루 베이스를 두 발로 가렸는데 때문에 서건창이 위협을 느껴 전력질주를 하지 못한 원인이 됐습니다. 포구 후 곧바로 발을 빼긴 했지만 서건창은 이에 불만을 드러냈고, 오재원도 더 크게 반응하면서 양 팀 선수단이 그라운드 대치 상황을 벌였습니다.
물론 오재원의 동작은 의도는 없었겠으나 앞선 5회말 팀 동료 김현수가 당한 부상 때문일 수 있습니다. 2-2로 맞선 당시 김현수는 3루에 있다가 오재원의 중견수 뜬공 때 역전 결승 득점을 올리는 과정에서 다쳤습니다. 포구하려던 상대 포수 박동원과 부딪혀 그라운드에 쓰러져 한동안 일서나지 못했습니다.
치료 뒤 부축을 받은 뒤 6회초 수비를 소화했지만 왼 무릎과 발목 통증으로 7회초 결국 교체됐습니다. 오재원의 동작은 주자의 진로를 막은 듯한 박동원의 포구에 대한 불만의 의미가 혹시 섞여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두산-넥센, 서건창 부상 악연일견 단순히 2차전 상황 때문에 염 감독이 과민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 전체, 더 폭을 넓혀 2년 전 준PO까지 거슬러 올라가 두산과 인연을 떠올리면 염 감독의 다소 과감한 발언의 배경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넥센은 올해도 PO 직행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NC의 고공행진으로 두산과 막판까지 팽팽한 3위 경쟁을 펼쳤습니다. 염 감독은 시즌 막판 "5위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을 치르는 4위와 준PO에 직행하는 3위는 차이가 엄청나다"면서 "어쩌면 선발 로테이션상 우리는 3위가 가을야구에 더 유리할 수 있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넥센은 0.5경기 차로 두산에 밀려 3위를 내줘야 했습니다. 사실 강정호(피츠버그)가 빠져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약화된 넥센으로서는 4위도 나름 의미있는 성과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해 MVP였던 서건창의 부상 공백이 적지 않았습니다. 서건창은 시즌 초반 오른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2개월 넘게 재활에 힘써야 했고, 붙박이 톱타자를 잃은 넥센은 힘겨운 순위 싸움을 펼쳐야 했습니다.
'이제 무릎 괜찮지?' 지난 9월9일 대결에서 두산 김현수(왼쪽)가 넥센 서건창의 무릎을 만져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자료사진=두산)
서건창이 부상을 당한 경기가 바로 두산전이었습니다. 지난 4월9일 잠실 원정에서 서건창은 9회 무사 1루에서 땅볼을 친 뒤 병살을 막기 위해 전력질주했습니다. 그러다 상대 1루수 고영민과 충돌해 쓰러진 뒤 실려나갔습니다. 당시 고영민의 오른 다리가 베이스를 완전히 가려 서건창은 걸려 넘어져 한 바퀴를 굴렀습니다.
복귀 후에도 한참 컨디션 회복에 애를 먹은 서건창은 올해 85경기 타율 2할9푼8리 93안타 52득점 37타점 9도루로 정규리그를 마쳤습니다. 지난해 서건창은 128경기 전 경기에 나와 역대 한 시즌 신기록인 201안타 135득점에 타율 3할7푼(1위), 48도루(3위)를 기록했습니다. 염 감독은 "강정호보다 서건창의 공백이 훨씬 크다"고 아쉬워 한 이유입니다.
이런 가운데 준PO 2차전에서 나온 오재원의 동작은 자칫 지난 4월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주장으로서 팀 동료의 부상을 염려한 경고의 의미일 수 있었겠지만 힘겨운 재활 과정과 공백 메우기를 해야 했던 서건창과 넥센을 자극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순한 성격의 서건창조차 불만을 드러낸 이유입니다. 여기에 염 감독까지 "(서)건창부터 시작해서 조금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 두산에서 자극을 한다"고 지적한 까닭일 겁니다.
▲1, 2차전의 석연찮은 판정들여기에 염 감독의 발언에는 그동안 쌓였던 피해의식도 적잖게 읽힙니다. 1, 2차전 승부처에서 나온 석연찮은 판정입니다.
넥센은 1차전에서 3-2로 앞선 9회말 수비에서 1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특히 1사에서 조상우가 내준 몸에 맞는 공이 뼈아픈 동점 실점으로 연결됐습니다. 4구째 몸쪽으로 붙인 공이 김재호를 스친 것으로 판정이 났는데 그러나 중계 화면에는 맞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김재호는 구심에게 물은 뒤 사구 판정이 나자 1루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흔들린 조상우는 볼넷 3개를 잇따라 내주며 밀어내기 실점했고, 넥센은 연장에서 끝내기 패배를 안았습니다.
염 감독은 2차전에 앞서 "김재호가 잘못한 것은 없고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면서도 "포수 박동원도 몰랐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라고 진한 여운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향후 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습니다.
'이게 스트라이크라고요?' 넥센 박병호가 11일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6회 삼진 판정을 받자 아쉬움을 드러내는 모습.(잠실=넥센)
2차전에서도 난해한 판정이 나왔습니다. 넥센이 2-3으로 뒤진 6회 1사에서 나온 박병호의 삼진입니다. 풀 카운트에서 박병호는 두산 선발 장원준의 몸쪽 슬라이더에 방망이를 멈췄습니다. 그러나 구심은 삼진을 선언했고, 1루로 걸어나가려던 박병호는 억울함을 참지 못했습니다. 구심의 판정은 스윙이 아닌 스트라이크 삼진이었던 겁니다. 박병호 몸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의 궤적이라고는 하나 누가 봐도 볼에 가깝던 공이었습니다. 이에 매너가 좋기로 유명한 박병호도 구심에게 항의했고, 불만섞인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만약 박병호가 볼넷으로 걸어나갔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당시 장원준의 투구수는 100개에 근접한 상황. 유한준, 김민성, 윤석민 등 힘좋은 타자들이 넥센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차전 뒤 염 감독은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하더라"면서 "어차피 상황이 넘어갔고, 번복될 수 없어서 항의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라이트 점등 여부와 관련해 심판의 공정성을 언급한 것은 이 판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두산 심리전에 넘어간 걸까
어쩌면 염 감독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할 승부의 세계에서 먼저 평정심을 잃은 것일 수 있습니다. 불리한 상황과 상대 도발(?)에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할 사령탑 대결에서 밀린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김태형 감독은 초보 사령탑임에도 노련하게 첫 가을야구를 치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지난 9일 준PO 미디어데이에서도 만만치 않은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절실함을 강조하며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였던 염 감독과 달리 김 감독은 적절한 농담을 섞어가며 오히려 가을야구를 즐기는 듯했습니다.
'아싸~, 넘어갔어!' 두산 김태형 감독(오른쪽)이 9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능청스러운 입담을 펼쳐내자 염경엽 넥센 감독이 웃는 모습.(자료사진=두산)
이는 교묘한 심리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 필승 불펜 조상우를 두고 염 감독을 살짝 도발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김 감독은 7일 SK와 WC 결정전에서 3이닝 역투를 펼친 조상우에 대해 "굉장히 좋은 선수고 어린데 저렇게 많이 던져도 되나 걱정이 된다"면서 "(염경엽) 감독이 선수의 미래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에 염 감독도, 조상우도 웃었습니다. 김 감독은 여세를 몰아 "어리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감독이 시키니까 죽어라고 던진다"면서 "나중에 아마 후회할 거야. 무리하지 마"라고 조상우에게 능청스러운 충고까지 던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상우는 다음 날인 1차전에서 다소 부진했습니다. 3-2로 앞선 8회 등판, 1이닝은 막아냈지만 9회를 넘지 못했습니다. 우연이겠으나 김 감독의 경고(?)가 먹힌 모양새입니다.
김 감독은 2차전 뒤 인터뷰에서도 평점심을 유지했습니다. 준PO 2연승으로 들뜰 만한 상황임에도 김 감독은 "3차전에서도 똑같이 하던 대로 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염 감독의 발언에도 김 감독은 "너무 예민해 있어 서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며 신중하게 넘겼습니다.
염 감독은 "두산의 자극이 오히려 3차전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대반격을 별렀습니다. 이어 "2년 전 상황을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다짐했습니다. 2013년 준PO에서 넥센은 두산에 먼저 2연승했지만 내리 3연패하며 PO 진출이 좌절된 바 있습니다.
독 오른 넥센의 반응에 두산은 "예민한 상황에 생긴 오해"라며 능수능란하게 심리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두 팀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3차전은 13일 오후 6시 30분 넥센의 홈인 목동에서 펼쳐집니다.
'안지만, 넘어갔어~!' 지난해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때 삼성 박한이, 안지만, 류중일 감독과 넥센 염경엽 감독, 강정호, 이택근(오른쪽부터) 등 양 팀이 우승컵에 손을 얹어 승리를 다짐하는 모습.(자료사진=삼성)
P.S-사실 가을야구 심리전은 지난해 넥센도 한 바 있습니다. 2014년 삼성과 한국시리즈(KS) 미디어데이에서 주장 이택근이 먼저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이택근은 동석했던 삼성 필승 불펜 안지만에게 "강정호와 대결에서 초구 직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느냐"고 내기를 건 겁니다.
이에 안지만은 "자존심 싸움인 것 같은데 무조건 던지겠다"고 응수했습니다. 그러나 1차전 승부처에서 안지만은 담 증세로 강정호와 대결 상황에서 나오지 못했고, 삼성은 차우찬으로 승부를 하다 강정호에게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낸 바 있습니다. 이후 삼성 우완 윤성환은 2차전 승리 뒤 "안지만이 이택근에게 당했다고 하더라"면서 심리전에 넘어간 점을 시인한 바 있습니다.
다만 승부에서는 삼성이 넥센에 4승2패로 KS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과연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고 있는 올해 가을야구 승자는 누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