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메테우스'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상업영화의 메카 할리우드에서도 작가로서 자기 색깔을 지켜 온 몇 안 되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 그는 SF 영화 '프로메테우스'(2012)에서 인간을 외계인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생명체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외계인의 피조물인 인류, 인류의 피조물인 안드로이드라는 삼자 구도를 통해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 물고 물리는 우연성의 연결고리를 길어 올린다.
니체의 그 유명한 표현을 빌리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근대 이후의 인류. '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유래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는 현대인의 상상력이 외계인 유전자 조작설로까지 뻗어나간 셈이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인류 문명의 초석이 된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는 인류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최신 고인류학에 뿌리를 둔 신간 '인류의 기원'(지은이 이상희 외·펴낸곳 사이언스북스)은 "정답은 없다"고 답한다.
어떻게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됐을까.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학자인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화에 유익한 형질, 적응에 유리한 형질은 우연의 작품입니다. 우연히 이루어진 환경 변화 속에서 마침 우연히 생겨난 형질이 유익했고, 유익한 형질을 가지고 있는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겼을 뿐입니다. 어느 한때 유익하다고 영원히 유익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수백만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인류의 진화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그렇습니다. (중략) 그렇지만 가까이 들어다보면 직선이 아닌, 꼬불꼬불한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고, 환경에 맞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가장 좋은 선택을 고민하기보다는 그때 적합한 선택을 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것뿐입니다.' (14쪽)
이 책은 지난 세기 내내 전 세계 곳곳에서 발굴된 다양한 인류의 화석과, 옛 화석 뼈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한 DNA 자료를 바탕으로 인류에 관한 22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한 예로 '짝짓기가 낳은 아버지'라는 제목의 장을 들여다보자.
'일부일처제에서, 남자는 아내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믿습니다. 아내가 낳은 아이들에게, 그는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아버지는 생물학적인 관계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믿음)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몸 역시 그에 맞춰 진화했습니다. 남자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갖게 되면 남성 호르몬이 줄어듭니다. 남성 호르몬은 생물학적인 수컷다움을 관장합니다. 이 말은 수컷 노릇의 사령부가 아버지 노릇을 위해 퇴진한다는 뜻입니다.' (48쪽)
◇ '큰 대가 치르고 얻은 소중한 인류의 모습'…"좀 더 큰 책임감을 느꼈으면"
인류의 기원ㅣ이상희 외ㅣ사이언스북스
앞의 인용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남성중심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색깔이 강한 생물학적인 인류 기원·진화설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대신 문화의 영향력을 대입함으로써 한발 더 나아간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이는 고인류학이 생물학적 이해뿐 아니라 유전학, 의학, 인문학이 만나고 어우러지는 융합 학문의 특징을 가진 덕이다. 그 틀로 들여다본 노년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다.
'예술과 상징은 추상적 사고와 연결됩니다. 또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실제적인 기능도 있지요. 예술과 상징이 늘어났다는 건 이 시기에 그만큼 정보의 전달이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노년은 바로 이렇게 정보가 늘어난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손주를 볼 때까지 살면 세 세대가 같은 시대를 공유하게 됩니다. 두 세대가 같은 시대를 사는 것에 비해 오랜 기간 정보를 모으고 전달할 수 있지요. 만약 두 세대가 50년 정도를 공유한다면, 세 세대는 75년 동안 일어난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이렇게 노년은 정보의 생산과 전달, 공유가 늘어나게 된 실질적인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술과 상징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13쪽)
'인류는 이렇게 해서 정보력(문화)에 의존해 살아남는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이런 정보력의 보고는 노인입니다. 쌓아 온 시간만큼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정보력을 전수 받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제 인류는 다른 어떤 유인원도 가 보지 못한 곳까지 적응해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인류는 처음에는 이런 정보력의 원천으로서 노인을 존중하고 도왔을 것입니다.' (160쪽)
이 해석은 곧바로 인류를 다른 동물들과 구분 짓는 보편적 특징인 협력과 이타심으로 연결된다.
'남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 생판 모르는 남과도 콩 한 쪽을 나눠 먹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거나 희생하는 능력, 제 힘으로 살 수 없는 이웃과 부족한 힘이나마 나누는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에 함께 참여할 기회를 나누는 능력입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한 이 능력을 바탕으로, 오늘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천하고 있습니다.' (161쪽)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진화에서 '우월'과 '이익'이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어쩌다가 갖게 된 특성(형질)이 우연하게 바로 그 순간의 환경에 적합하다면, 그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