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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조선왕조실록] 돈으로 벼슬을 사는 공명첩 남발을 우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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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19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백성들에게 돈이나 곡식을 받고 벼슬직함을 주었던 공명첩(空名帖)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공명첩은 말 그대로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임명장입니다. 원래 나라에 공을 세우거나 흉년이나 전쟁때 곡식을 헌납한 사람들을 치하하기 위해 발행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 등으로 나라 재정 상태가 어려울때 돈많은 양민들에게 돈과 곡식을 받고 공명첩을 팔기 시작하면서 본질이 훼손됐습니다. 비록 허울뿐인 자리였지만 양반의 수가 늘어나면서 양민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또 돈으로 산 벼슬을 과시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신분제도도 문란하게 됐습니다.

1620년(광해 12)에 수천장의 공명첩이 발행될 예정이었는데 우부승지 정광성이 이의 폐단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정광성은 특히 정부인과 숙부인 칭호를 주는 '부인첩'의 남발을 우려했는데, 그는 "최근들어 공명첩을 내어 쓰는 것이 많았지만 부인의 직함을 파는 적은 없었다"며 부인첩 만큼은 발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 세종 5년 (1423) : 명나라 사신이 가져온 물건을 무역하다
⇒ 중국 사신이 가져온 개인 물품을 이틀 안에 유통시켰는데 이것은 당시 주요한 무역 경로였다

■ 광해 12년 (1620) : 우부승지의 부인첩 남발에 대한 걱정을 듣고 다시 논의케 하다
⇒ 돈으로 명목상의 벼슬직함을 얻는 '공명첩'이 남발되면서 돈많은 여성들이 너도 나도 정부인과 숙부인이라는 칭호를 받게될 우려가 제기되자 당시 우부승지가 이의 폐단을 지적하고 나섰다

■ 정조 6년 (1782) : 제사용 양을 관서 고을에서 기르자는 청을 허락함
⇒ 제사에 쓸 양을 매번 중국에서 사왔는데 암양과 수양을 사와서 관서지방 고을에서 키우라고 했다

■ 정조 20년 (1796) : 수원성이 완성되다
⇒ 정조의 역작 중 하나인 수원 화성이 완성되었는데 둘레가 4,400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고종 20년 (1883) : 혜상공국을 설치해 보부상들을 관할하게 하다
⇒ 보부상을 관리 감독할 혜성공국이라는 기관이 설치됐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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