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의 김원봉을 또다시 잊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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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제공)

 



-영화 <암살> 이후 큰 관심...서훈 재추진
-정부 북한정권 동조 이유로 서훈 두차례 거부
-북한정권 동조 증거 없어..김일성에 대항하다 사형당했을 수도
-일제강점기 목숨건 독립운동 자체로 평가할 수 있도록 법개정해야
-국가위해 목숨걸었는데 인정 못받으면 누가 나라를 지키겠는가?
-김원봉 서훈 100만 서명운동 동참해주시길

■방송 : 경남CBS<시사포커스 경남=""> (손성경PD, 김성혜 실습작가, 106.9MHz)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팀장)
■대담 : 최필숙 사무국장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사무국장)

 



◇김효영 : 영화 <암살>의 흥행과 함께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서훈 추진운동이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사무국장 만나보겠습니다. 최 국장님 안녕하십니까?

◆최필숙 : 네. 안녕하십니까?

◇김효영 : 영화 암살 이야기부터 안할 수가 없습니다.

◆최필숙 : 네.

◇김효영 : 그동안 오랫동안 김원봉 선생님에 대한 서훈 추진운동을 해오셨을텐데요. 영화 암살 이전와 그 이후를 비교해보시면 어떻습니까?

◆최필숙 : 밀양의 분위기는 정말 많이 달라졌죠. 암살에서 약산이 나오는 바람에 밀양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고요.

특히 약산이 김구보다 더 많은 현상금이 걸려있는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약산이 누군가라고 의문을 갖고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밀양에 오셔서 약산 생가나 약산의 첫번째 부인 박차정여사 묘를 찾는 사람도 굉장히 많고요. 특히 동생 분이 지금 생존해 계시잖아요. 그죠?

◇김효영 : 네. 여동생.

◆최필숙 : 네. 김학봉 여사님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영화 이전하고 영화 이후는 정말 많이 달라져서 저희들이 1천만이라고 보면 문화라고 하더니, 그것을 절실히 절감하고있는 상황입니다.

◇김효영 : 늦었지만 다행스럽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생가 말씀을 하셨는데요. 밀양 생가는 잘 보존이 되고 있습니까?

◆최필숙 : 지금 생가는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소유로 건물이 들어서있는 상태거든요. 옆에 석정 생가도 그렇고, 지금 저희들이 이것을 문화재로 지정을 해서 보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밀양시같은 경우에도 영화 때문에 많이 알려지고 하니까 이 생가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 이제서야 고민을 한다고요?

◆최필숙 : 할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약산이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어떻게 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상황이죠.

◇김효영 : 알겠습니다. 간략하게나마 약산 선생의 활약상을 요약해서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최필숙 : 네. 약산에 대해서는 아마 한번이라도 책을 보시면 아실거에요. 너무나 활동사항이 많아서 책이 거의 500페이지가 넘거든요. 약산 같은 경우에는 우리 나이로 22살때 일본 전체를 놀라게 했던 의열단을 창단하셨고요.

그리고 조선민족혁명당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서 중국관내에 있는 모든 독립단체를 만들어서 총 선임하셨고요. 그리고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선인만으로만 구성된 조선의용대를 38년에 만들어서 총 대장역할을 하셨고요. 그리고 그 일부를 화북지방에 일본과 직접 전투를 하기 위해서 화북지방에 보내고 자신은 남아있는 병력을 이끌고 한국 광복군에 참여하셨고요. 나중에는 임시정부에 군무부장, 지금으로치면 국방부장관이죠. 군무부장하시며 한국 광복군을 통솔하시다가 광복이 되자 고국으로 돌아오신 겁니다.

◇김효영 :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한 이유는 북한에 가서 북한정부수립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은 그것입니다. 북한에서 어떤 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까?

◆최필숙 : 네. 북한 정권이 들어설때 국가검열상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장관급입니다. 국가검열상을 했고요. 6.25전쟁 중에 노동상을 했고요. 그 다음에 국가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셨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정권에 동조를 했다고 보는 겁니다.

◇김효영 : 그것이 정부가 서훈을 주지 않은 이유로 납득이 되십니까?

◆최필숙 : 만약에 약산 선생이 북한에서 김일성 정권에 동조를 했다면 북한정권에서는 또는 북한 역사에서 그를 죽이는 작업들이 있어야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약산에 대해서는 58년에 조소앙선생님 장례식에 참여한 이후에는 전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많은 학자분들이 약산의 생존 혹은 그 자녀들에 대한 행방을 알기위해서 아무리 알아봐도 알 수가 없었고 특히 평양에 있는 애국열사릉에는 거의 흔적조차없다라고 얘기하거든요.

만약에 북한정권에서 온전하게 동조를 했다면 북한정권에서 기리고 있을것인데, 그렇지 않다면 김일성 정권에 반대하다가, 대항하다가 결국은 사형을 당했거나 혹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북한정권에 온전하게 동조를 했다고 볼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김효영 : 북한에서 약산선생이 마지막까지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입증할 구체적인 근거자료는 없는 모양이군요?

◆최필숙 : 네. 없습니다.

◇김효영 : 그동안 우리정부에 서훈을 요청하신 것이 몇 차례나 됩니까?

◆최필숙 : 제가 소속되어있는 단체가 사단법인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인데요. 저희들 단체이름으로 두번을 신청을 했었고요. 이번에 지금 또 세번째 신청을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두번 다 국가보훈처로부터 대답은 북한정권에 동조를 했고 그리고 그 법이, 우리 국회에서 재정한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서훈을 줄 수 없다라는 대답만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김효영 : 국회의 법을 어떻게 고쳐야 서훈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최필숙 : 지금 현재 제가 알고 있기로는 광복 이전의 사회주의 활동까지는 인정을 해서 그들에게는 서훈을 해준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 부분은 북한 정권에 동조했다 안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법이 다시 재정되어야 될 것 같고요.

제 좁은 소견이지만 북한 정권에 동조한 것은 그 이후의 문제고 일제강점기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독립운동한 부분에 대한 서훈 신청이기 때문에 독립운동한 부분만 가지고 서훈을 할 수 있는 그런 법이 재정되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제 바람입니다.

◇김효영 :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하겠군요?

◆최필숙 : 네.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죠. 국회에서 법을 다시 고쳐주는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김효영 : 혹시 정치인들 중에 김원봉 선생 서훈에 적극적으로 나선 분이 계신가요?

◆최필숙 : 네. 최근 문재인 대표께서 약산에 대해서 서훈을 주고 싶다 말씀을 하신 적 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줬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합니다.

◇김효영 : 김원봉 선생이 서훈을 받야되는 이유, 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최필숙 : 만약에 약산과 같이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다 내놓은 사람도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 가족들도 너무 숨죽이면서 고통 속에 자랐는데 이런 일이 반복이 된다면 누가, 지금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이 또 다시 우리나라에 강하게 침략을 한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를 지켜내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를 하고 그 후손에 대한 그리고 그들에 대한 대접을 확실하게 해야 이 나라를 또다시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김효영 : 네.

◆최필숙 : 우리 역사 속에서 약산을 비롯해서 사회주의활동을 했던 어쨌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서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그 분들에 대한 예우는 우리 후손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효영 : 독립운동을 한 후손들은 힘들게 살고, 친일 부역자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이 많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최필숙 : 저는 멀리 볼 것 없이 약산의 동생 분이 옆에 계시기 때문에 항상 뵙고 있잖아요. 2000년이 될 때까지 광복이 되고 50년동안 한 말씀도 하시지 못하고 가슴졸이며 사셨거든요.

실제로 약산의 친동생 4분과 사촌동생 5분이 한꺼번에 6.25전쟁때 총살을 당하셨어요.

그런과정들을 지켜보셨기 때문에 아무 말씀 하시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정말 오래 광복 70주년이긴 하지만 암살이라는 영화 덕분에 많이 언론인들이 찾아와주셔서 이제야 말씀을 하시게 된 거죠. 그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 오빠가 독립운동을 했다라고 말도 하지 못할 상황이면 그 나머지 부분들은 말씀을 안드려도 알지 않습니까. 그 분은 자녀를 키울 수 없어서 고아원에 맡겨놓고 편물을 하시면서 생계를 유지하셨거든요. 너무나 어렵게 크셨습니다.

◇김효영 : 그렇군요. 서훈 결정 언제쯤 됩니까?

◆최필숙 : 저희들이 연말까지 서명을 받고요. 내년 초에 저희들이 서훈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김효영 : 서명을 하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최필숙 : 서명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다음 아고라에서 청원에 약산치시고, 김원봉 치시면 아마 될 겁니다. 서명을 해주시면 되고요. 아니면 저희한테 연락하시면돼요. 서면용지를 보내드립니다. 그래서 서명신청을 받으셔서 저희 단체에 보내주시면 저희들이 그것을 전부 다 취합해서 내년에 국가보훈처에 제출하려고 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김효영 : 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필숙 : 네. 감사합니다.

◇김효영 : 지금까지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사무국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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