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의 미나리 농장에서 일한 중국인 노동자 이모(45)씨 등 3명은 최근까지 농장 측으로부터 임금 7천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이주민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부산의 한 미나리 농장에서 일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임금 수천만 원을 받지 못해 거리로 내몰렸다.
수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한 이들은 오히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구금되는가 하면 추석을 앞두고도 고향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 못 받은 임금만 '7천만 원'…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구금'평일 낮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 아파트 앞.
한 남성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돈도 안 주는 악덕 사장'이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이 남성은 중국인 노동자 이모(45)씨.
이씨는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또다른 중국인 증모(40)씨 등 2명과 함께 부산과 울산의 미나리 공장에서 일했으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미나리 농사는 주로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겨울철에 이뤄지기 때문에 이씨는 논에 살얼음이 얼고 칼바람이 치는 환경을 견디며 일해야 했다.
이씨를 포함한 중국인 노동자 3명이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임금은 모두 7천만 원.
이씨는 "지난 2012년 울산에 있는 새로운 미나리 농장에서 일하라는 제안을 받아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했다"라며 "폭우가 내리치고 논에 얼음이 얼어도 참고 일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임금 체납"이라고 토로했다.
임금을 받지 못한 중국인들은 결국 제대로 된 주거지도 갖지 못해 인근 교회 쉼터에서 머무르는 처지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고향에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씨 등 세 명은 지난해와 올해 설에도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 고향에 가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지난 3월에 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7월에는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농장 측이 이들을 불법 체류자로 신고하면서 울산출입국관리사무소로 신변이 인계됐고, 결국 전남 여수에 있는 외국인보호소에서 2개월 동안 구금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에 대한 구금은 관련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일시 해제된 상태다.
중국인 노동자의 주장과 달리 농장 측은 이들의 급여가 잘못 산정됐다며 주지 못한 임금은 퇴직금 명목의 1,700만 원 상당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민 관련 시민 단체들이 결성한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임금 체납은 농장주의 명확한 횡포라는 견해다.
(사)이주민과 함께 김그루 상담실장은 "미나리 농사는 일이 힘들기로 유명해 한국인 노동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농장 측이 불법 체류 상태인 중국인들의 약점을 악용해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 등 횡포를 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진정 접수한 고용노동청, 6개월 동안 사건 진척 없어…'근거자료 불충분'
중국인 노동자와 시민단체들은 조사를 의뢰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고용노동청의 사건 진행 상황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인 노동자 증씨는 "3월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면밀한 조사를 의뢰했지만, 아직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사업주가 조사 때마다 말을 바꾸고 있는데 노동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는 결국 진정서를 접수한 고용노동청에도 문제가 있다며 지난 18일 항의 방문했다.
또 사건 해결을 위해 농장 측과 고용노동청 등 관계 기관을 규탄하는 집회와 항의 방문을 계속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청은 근로계약서 등 객관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조만간 검찰의 지휘를 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청 부산동부지청 김동욱 감독관은 "고소인들이 불법 체류 신분으로 일하다 보니 근로계약서나 월 급여 명세서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없어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라며 "현재 검찰에 사건 지휘를 요청해놓은 상황이며 조만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꿈을 품고 고된 노역을 견딘 중국인 노동자들이 오는 추석에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