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상류사회'에서 이지이 역으로 열연한 배우 임지연. (심엔터테인먼트 제공)
임지연이라는 배우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 '인간중독'에서였다. 분명 정석으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런데 흰 환자복을 입은 임지연이 창틀에서 돌아선 순간, 이상하도록 숨막히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렇게 충무로에 데뷔해 브라운관까지 당도한 임지연은 그 사이 또 한 걸음 성장해 있었다. 그는 SBS 드라마 '상류사회'에서 사랑스러운 백화점 직원 이지이 역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치명적 분위기, 노출 연기 등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특히 임지연은 극 중 재벌 3세 유창수 역을 맡은 제국의아이들 박형식과 신분을 뛰어넘은 로맨스를 보여주며 '창지 커플'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자칫 잘못하면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임지연은 '그냥 뻔뻔하게 하면 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물론 기존에 있던 신데렐라 스토리이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캐릭터라고 봤다면 진부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시작하기 전에 온전히 저로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지이만의 연기를 뻔뻔하게 하면 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우리만의 색깔로 만들어가자는 자신감이 있었죠."
아무래도 또래 배우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도 즐겁고 수다스러웠다는 전언이다. '우리끼리 친해져서 좋았다'고 말하는 임지연의 눈이 20대의 그것처럼 반짝였다.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박형식과 애프터스쿨 유이는 그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형식이가 동생인데도 오빠같은 면이 많아서 의지를 많이 했어요. 나중에는 쉽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공유하게 되니까 정말 편한 사이가 됐고요. 그게 연기에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열정적인 친구라서 후배라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죠. 유이 언니는 저랑 성격이 비슷해요. 털털하고, 대담한 면도 있고, 솔직하고. 드라마 현장이 처음이라 떨리고 적응하지 못했을 때는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그 때 언니가 얼마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는지 몰라요. 여자들은 또 여자들만 아는 그런 게 있잖아요."
그렇다면 실제 임지연과 이지이는 얼마나 비슷할까. 일단 이전까지 임지연이 연기해 온 캐릭터들 보다는 연령대나 성격 등이 훨씬 현실에 가깝다는 전언이다.
"이전에 맡았던 배역들은 저와 다른 면이 많아요. 신비하고, 베일에 싸여 있고, 진지하고, 차분하고, 상처가 있고. 지이는 제 나이 또래에 맞는 역할이기도 하고, 실제 저와도 성격이 닮았어요. 솔직하게 표현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이처럼 4차원스러운 매력이 있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지이보다 제가 좀 더 남성스럽죠." (웃음)
SBS 드라마 '상류사회'에서 이지이 역으로 열연한 배우 임지연. (심엔터테인먼트 제공)
딴에는 '비호감'이 될까봐 걱정도 했었단다. 신인임에도 불구, 워낙 강한 배역들을 많이 맡아 온 탓이다. 지금 임지연은 자신을 보는 달라진 시선을 느끼고 있다.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었죠. 너무 색깔이 다른 캐릭터여서 시청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았어요. '비호감'처럼. 그런 걱정이 있기는 있었는데 촬영하면서 다 내려놓고 했어요. 첫 데뷔가 강렬하다보니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기는 했죠. 그렇지만 기존 이미지를 희석시키거나 탈피하려고 이지이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그냥 저만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배우가 예전에 내가 봤던 그 배우 맞아?'라고 생각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롭고 재밌어요."
'그래도 그 동안 연기력 논란은 별로 없었다'는 기자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논란이요? 있었죠"라고 멋쩍게 웃어보인다. 타고나길 마음이 굳건해, 임지연은 웬만한 평가는 담담하게 넘길 정도가 됐다.
"연기력 논란이 없는 게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런 논란들은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된 것 같고요. 분명히 수용할 것들은 수용하고, 상처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흔들리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요. 댓글을 전부 보지는 않고 저를 응원하는 글이나 긍정적인 글만 봐요. 굳이 도움은 되지 않고, 상처만 주는 것들을 볼 필요는 없잖아요. 주변에서도 충분히 조언을 듣거든요. 데뷔 초반에는 궁금하고 신기하니까 보게 되더라고요. 처음 평가받는 자리니까 무섭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 상처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 걸 봐도 담담해요. 제가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큰 피해를 드린 것도 아니니까요."
흔히 '유명세'라는 것이 있다. 인기가 높아지고 얼굴을 널리 알릴 수록, 연예인의 사생활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임지연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그는 자연스럽게 그런 변화들을 받아 들이려고 한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있고, 책임감도 생겨요. 그 전에는 그냥 평범한 학생처럼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하면서 돌아다녔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대중들 앞에서 평가 받는 자리니까…. 앞으로도 배우로서 신중해지려고 해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생겨요."
'일과 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임지연. 그는 벌써 다음 작품 캐릭터에 빠져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잠시 쉬는 동안에는 평범한 20대처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친구들은 그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존재들이다.
"어디 여행을 가기는 힘들고, 짧게 쉬는 시간이 나면 집에 있거나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닌다거나 맛있는 것도 먹고, 친구들도 보고 그래요. 아무래도 일에 치여서 개인적인 시간이 많지 않아서 소소한 재미가 없거든요. 그런데 밤에 친구들과 잠깐 만나면 힐링도 되고, 약속을 정해놓거나 그러면 그 날이 되길 기다리면서 일도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SBS 드라마 '상류사회'에서 이지이 역으로 열연한 배우 임지연. (심엔터테인먼트 제공)
20대 초반까지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일을 하면서 연애 사업은 쉽지가 않다. 친구들은 '너처럼 멋있는 남자를 많이 만나는 직업이 어디있느냐'고 타박하지만 말이다.
"제대로 한 연애는 오래됐어요. 하고 싶어도 기회가 많지 않고, 조심하게 되는 것도 있고…. 아무튼 만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친구들은 '멋있는 남자가 주변에 많은데 왜 연애를 못하느냐'고 하지만 데뷔하고 일하다 보니 그럴 틈이 전혀 없었어요.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임지연은 아직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재학 중이다. 그가 연기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사람은 유명 연예인이 아닌, 교수님이나 학교 친구들이다.
"저희 학교가 워낙 단결력이 좋아요. 교수님이나 친구들이 응원해주는 것 자체가 도움이 많이 되고, 함께 연기하는 친구들이 힘든 상황이어도 서로 이해해 주는 게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첫 상업영화 '인간중독'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임지연은 한 번도 주연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데뷔 전 출연했던 독립영화에서도 단 한 차례, 주연 같은 조연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그런 스스로를 임지연은 '운이 좋았다'고 평한다.
"운이 좋은 것도 있었죠. 기회가 정말 금방 찾아왔고, 너무 과분한 주목을 받았어요. 사실 이렇게 빨리 작품을 하게 될 즐도, 이렇게 빠른 나이에 데뷔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그 자체로 감사하게 생각해요. 겸손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고요."
어렵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지만, 해보고 싶은 작품은 너무나 많다. 임지연은 적성에 맞는 역할만 고집하기 보다는 전혀 낯선 역할에도 도전하고 싶어했다. 단 하나, 노래 실력 때문에 뮤지컬은 힘들겠다고 웃어보였다.
"실제 저와 비슷해도 솔직히 어렵지 않은 연기는 없어요. 다 어렵고, 모르는 것도 많죠. 그렇지만 어울리는 역할, 적성에 맞는 역할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 얼굴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고요. 물론 그러려면 연기력이 바탕이 되어야 겠죠?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커서 스펙트럼을 하나 하나 넓혀 가고 싶어요. 연극은 기회가 되면 정말 하고 싶죠. 뮤지컬은 보러다니는 건 좋아하는데 제가 노래를 못해서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OST를 부른다거나, 그런 민폐는 끼치지 않으려고요." (웃음)
임지연은 스스로를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뜻 '망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얼굴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전형적으로 예쁜 얼굴은 아닌 것 같아요. 제 나이 또래 젊은 여배우들을 보면 정말 미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