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농림축산식품부는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국 국민 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라면을 먹는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4.1개. 2위인 베트남(60.3개)보다도 거의 14개가 많다.
이처럼 명실상부한 한국인의 '국민 간식' 라면은 어떻게 한국에 정착했을까.
일본인 저자 무라야마 도시오(村山俊夫)는 수십 차례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라면이 어떻게 시작돼 양국에 자리했는지 취재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에 동시 출간된 책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21세기북스)은 무라야마가 취재를 토대로 한국 삼양식품 고(故) 전중윤 회장과 일본 묘조식품 창업자 오쿠이 기요즈미의 라면 기술 전수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소설처럼 읽히는 이야기 방식으로 책을 적어내려 간다. 특히 1963년 오쿠이 창업자가 전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흔쾌히 무상 기술 전수를 결정하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오쿠이 창업자가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라면 수프 배합 기술을 전 회장에게 알려준 데는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선 두 사람의 뜻이 담겼다.
한국전쟁 이후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간편한 음식을 만들려고 한 전 회장의 열정이 오쿠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쿠이는 이탈리아 업체에서 파스타 제조 기술을 배우는 등 비슷한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어 전 회장에게 기쁘게 자기 노력을 전수했다.
이때를 시작으로 달고 느끼한 일본 라면과 강한 매운맛의 한국 라면이 서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정착했는지, 그 차이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두 나라의 문화적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라면에 얽힌 이야기를 쓴 데는 자신을 스스로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일본인"으로 부르는 저자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고 매료돼 1986년 말 서울로 건너와 한국어 공부를 한 무라야마는 서울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고 2007년부터 일본 교토에서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국민 배우 안성기 평전 '청춘이 아니라도 좋다'를 비롯해 한국어 학습서를 여럿 썼고 한국 문학 번역에도 참여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일본인"이다.
"두 나라의 봉지 라면을 양손에 들고 보니 왠지 꼬불꼬불하고 기다란 면의 끝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 오기 위해 바다를 건너올 때 느꼈던 묘한 일체감과도 통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라면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서부터 한국으로 들어온 역사를 살펴보기로 했다."(서문)
김윤희 옮김. 272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