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정으로 승리할지는 12일이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채권단이 제시한 협상안을 거부한 국민투표 결과에 아니요라는 뜻의 '오히(OXI)' 함성이 쏟아졌던 그리스에 긴장된 분위기가 다시 감돌고 있다.
유로존(유로그룹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8일 회의를 열고 오는 12일을 시한으로 협상을 한다는 반응을 내놓아 일단 채권단의 즉각적인 거부는 넘겼지만 최종 결과에 대해선 불안감이 여전하다.
아테네 주재 코트라에서 일하는 그리스인 존 씨는 8일(현지시간) "국민투표 이후 언론 보도들을 보면 '반대'에 투표한 사람들이 같은 생각으로 '반대'에 투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전했다.
그는 "유로존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긴축을 거부하려는 사람,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람 등 '반대' 투표에 담긴 표심은 다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표심들은 '반대'라는 투표 결과 하나에 담겼고 이번 국민투표를 유로존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성격으로 몰고 간 유로존에 던져졌기 때문에 투표 결과가 받아들여질지 불확실했다.
그러나 채권단이 일단 협상을 벌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제 그리스 국민들의 시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최종 협상 결과로 쏠리고 있다.
과연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어떤 협상을 해낼지 지켜보는 시선에 기대와 불안감이 섞였다.
8일(현지시간) 오후 아테네 중심가 신타그마 광장 앞 번화가 엘무의 한 카페에서 만난 드미트리 씨는 "누가 진정으로 승리할지는 12일이 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프라스 총리가 '반대' 투표 결과로 얻은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면서 불안감을 표시했다.
영국 런던에서 유학 중으로 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 돌아온 한 대학생은 "채권단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받은 이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친구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반대 표를 던졌다"면서 "그러나 유로존이 우리 생각을 듣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가난한 주(州)가 있으면 도와주는데 유로존은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가난한 국가를 그냥 놔두려 한다"는 불만을 표출했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의 환호 분위기가 다시 냉엄한 현실에 다소 가라앉는 것 같다.
한편으론 10일째 계속된 은행 영업 중단과 자본 통제에 따른 불만에도 점점 지쳐가는 듯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늘어선 사람들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엘무의 상점들도 여름 세일에 들어가 손님들을 맞고 있지만, 가게들은 전체적으로 한산한 편이었다.
또 엘무에 텅 빈 상점들이 여럿 눈에 띄었고, 중심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철문을 내렸거나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이 많았다. 수년째 지속된 경기침체를 보여주는 듯싶다.
아울러 밀가루나 쌀, 파스타 등이 텅빈 진열대 사진과 함께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다만 아테네 시내에 있는 중대형 마트 두 곳의 진열대에는 아직 이런 사재기 현상이 확산되지는 않은 듯 파스타, 쌀, 설탕 등이 눈에 띄게 부족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가 가공식품과 공산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수입대금 결제를 제한한 자본통제가 이어지면 재고 소진에 따른 물량 공급 부족은 시간 문제다.
유로존 정상들이 협상 시한을 불과 나흘 뒤로 정한 것은 영업중단과 자본통제 속에서 쌓여가는 위험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