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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조선왕조실록] 황구첨정-백골징포의 폐단을 없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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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5월 22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던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의 폐단을 없애도록 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1678년(숙종 4년)에도 올해처럼 가뭄이 심각했습니다. 숙종이 "아! 금년의 가뭄처럼 참혹함은 옛날에도 없었다"고 한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민생이 어려웠습니다. 이 와중에 백성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폐단이 있었는데 바로 황구첨정과 백골징포였습니다.

입대를 하지 않는 장정에게는 일종의 병역세를 물렸는데 세포(稅布. 옷감)과 세미(稅米. 쌀)을 바쳐야했습니다. 그런데 5살 미만인 황구유아(黃口乳兒)나 14살 이하의 어린이까지 군적에 등록시켜놓고 세포와 세미를 강제로 징수했습니다.

이를 황구첨정이라고 합니다.

백골징포는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것처럼 등록해놓고 가족들에게 군포를 강제로 내도록 했던 폐단을 말합니다.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는 조선후기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숙종은 "어린 아이가 군적에 오르고 죽은 이에게 징포하는 등의 일은 내가 깊이 민망하게 여기니,속히 명확히 조사해서 폐단을 제거하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 세종 19년 (1437) : 한 해에 두 번 익는 기장(올기장)을 각 도에 나눠 주다
⇒ 세종은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 숙종 4년 (1678) : 황구첨정, 백골징포의 폐단을 없애도록 하다
⇒ 어린아이를 군정에 포함 시키고(황구첨정), 죽은 사람에게 징포(백골징포)하면서 백성들을 괴롭히던 폐단이 조선 중기부터 나타났다

■ 정조 18년 (1794) : 화성 공사에 한 명의 백성도 강제로 노역시키지 말라고 지시
⇒ 화성을 쌓는 일에 동원된 백성들은 공짜로 일을 시키지 말고 모두 임금을 주라고 지시 했다

■ 정조 19년 (1795) : 호남 암행어사가 나주에서 64명이 굶어 죽었는데 시신들이 제대로 매장되지 않았다고 보고. 이 사건으로 전라감사가 유배를 갔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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