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62년 만에 인정받은 '호국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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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2016년까지 생존 유공자 전원 발굴 계획"

6·25 참전 군인이 참전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다.

그 후 지난 2008년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6·25 참전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를 강화했다.

현재 추산되는 6·25 참전 군인은 90만명.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2만명이 국가유공자 미등록자로 남아있다.

이는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의 한계 탓이 컸다.

◇ 참전유공자 발굴 작업…현재까지 5천명 등록

이에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참전유공자를 직접 발굴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2,800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5,120명(대구 경북 지역 569명)의 참전 군인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지난 2014년 3월 6·25 참전 군인으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은 배능환 씨.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배능환(82) 씨 역시 지난 2014년 3월 국가유공자로 새롭게 등록됐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해군에 입대한 배씨는 참전 62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동안 국가유공자 등록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배 씨에게 보훈청 측은 "참전명예수당의 소급 적용이 불가하다"며 양해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배 씨는 "내가 해야 할 의무를 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국난 때 나라를 지킨 은인"이라는 인정이 그는 그 무엇보다도 더 값지고 귀하다.

◇ 참전 62년 만에 "호국의 은인" 인정받아

6·25 전쟁 발발 당시 배 씨의 나이는 18세였다.

"외모가 앳되다"는 이유로 징집에서 면제받은 뒤 한달음에 방위대에 가입해 징집 사무를 봤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방위대가 도중 해산되자 1952년 배 씨는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나라 지키는 일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군대 간 사람이나 안 간 사람, 피난민 모두 다 고생했어요. 내가 죽고 사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죠.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겠다는 욕심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62년만인 지난 2014년 3월 배 씨는 호국의 공을 드디어 인정받게 됐다.

그는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국방의 의무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찾아 인정해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는 휴전 이후 나라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 이역만리 독일의 지하 갱도에서 품을 팔았다.

요즘도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두고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코끝이 시큰해져온다.

손마디마다 박힌 그의 주름살엔 이처럼 한국의 굵직한 근현대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

후손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나라를 물려주는 것은 여전히 그의 소망으로 남아있다.

"오늘이 있는 것은 6·25 참전 용사들의 덕"이라는 말 한마디를 "억만금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한편 보훈처는 "앞으로도 국가유공자 발굴에 적극적으로 힘써 2016년까지 생존 유공자를 전원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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