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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국가에 학살당하며 "이승만 만세"…구제역과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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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 나무가 담담하다 못해 염세적으로 지켜본 국민보도연맹 사건

 


[CBS 라디오 주말 시사자키 윤지나 ]
■ 방송 : 6일 CBS 라디오 FM 98.1 (토 16:00~18:00)
■ 진행 : 윤지나 기자
■ 대담 :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박건웅 작가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이라는 그래픽노블로 그린 박건웅 작가는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심지어 자신이 충성할 것이라 맹세했던 국가로부터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저 쌀과 비료를 받는 게 좋아 연맹에 가입했던 농사꾼들도 상당수였다. 박 작가는 총알이 몸을 뚫고 피구덩이가 생기는 와중에도 "이승만 만세!"를 외쳤던 사람들의 모습을 '한명 한명' 그렸다고 한다. 당시 이승만 정부가 '체계적으로' 보도연맹원들을 살해한 배경과 관련해서는 한때는 좌익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이 전쟁 통에 북한군 편을 들 거라는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구제역 파동을 오버랩했다. 전염됐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 지역의 돼지를 도살하는 장면말이다.

■ 제주43사건, 노근리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이런 얘기들을 그려왔다. 직접 잘 알고 작품으로 소화하다보면 워낙 아픈 이야기다보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 국군통합병원 옆에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후문 쪽에 할아버지가 시신을 만지고 계셔서 "시신 안무서워요? 겁 안나세요?"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뭐가 겁나니.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손수 꿰매고 씻어주고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건데… 이 사람들이 나한테 감사할거야"라고 하시더라. 무거운 근현대사를 다루는 작업도 이렇게…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것이 그들에게 위로의 의미가 되는 행복한 작업이다, 라고 생각한다.

■ 어느 물푸레나무의 이야기, 얘기해보자. 나무가 일종의 화자다. 초반에 나무가 보고있는 형제가 있다. 형은 농부고 동생은 대학생이다. 형이 문제의 보도연맹증을 갖고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 정부에서는 좌익사범이라고 해서 사상범 중심으로 가입을 독려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많은 실적을 남기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명단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쌀이나 비료 같은걸 준다고 해서 가입한 평범한 농민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 분들이 억울하게 희생이 됐다. 원래 원작에는 없었지만(원작은 최용탁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역시 물푸레나무가 화자다) 원작이 워낙 짧다보니 서사가 부족해서 앞 부분에 형제 인물 얘기도 넣고 후반부에 가족을 찾는 어머니의 이야기도 배치했다.

■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지나면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 심해지고,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자, 사회주의자들을 전향시킨다는 목적으로 모집했던 게 보도연맹이다. 만화 속에는 그 연맹 모집의 목적에 맞는 인물인 사회주의자, 좌익사상가 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 설사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보도연맹자체가 대한민국 지지하는 단체였다. 가입했을 땐 이미 전향을 한 것이다. "나는 잠깐 좌익생각을 갖고있었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살겠다"고 확인한 단체이다. 그런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 당시 정부는 무엇이 그렇게 겁이 났을까?

□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 같다.

■ 한땐 좌익이었던 사람이 전쟁 통에 어떻게 변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

□ 구제역 때 돼지 도살 모습 보며, 전염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어느 한 지역에 있는 돼지를 싸그리 죽이지 않았나. 당시 이승만 정부도 그런 관점으로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구제역 장면과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됐다. 사람에서 가축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상황이다.

■ 보도연맹 때 학살된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자면, 나를 보호해 줄거라고 믿었던 경찰과 군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게다가 보도연맹증을 받을 때 "나는 나라에게 앞으로 충성할거에요!"라고 외쳤을텐데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싶은 사람인데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 희생됐다는 점이 충격적... 오늘(6일) 공교롭게도 현충일인데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한 훌륭한 분도 많겠지만 한편으론 정부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도 이렇게 많다는걸 꼭 알았으면 좋겠다.

■ 보도연맹이 단지 하나의 역사적 비극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끔찍하다. 책을 직접 보면 끌려가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목숨을 잃는 장면까지 자세히 묘사돼 있다.당시 이사람들이 어떤 심정일지도 굉장히 잘 전해진다.

□ 학살이 관념적으로 다가오지 않나. '20만명 죽었다'고 하면 수치상으로만 남고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시각적으로 보일 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만화에서 200명이 산으로 끌려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거 작업할 때 200명을 하나하나 다 그렸다. 숫자를 세어가며. 시각적으로 사람 수를 대했을 때 감정이 다르게 전해지는 것 같다. 200명의 이야기가 하나 하나씩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듯.

■ 책 속에서 나무가 아주 담담하게 말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에 철사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런 이는 몹시 괴로운 듯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소 울음소리를 내었다. 내가 보기엔 남을 웃기려고 소 흉내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우습기도 하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고통받고 있는 그림 속 인물들과 대조적이다.

□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느꼈을 감정을 처참하고 끔찍하지만 나무는 담담하다 못해 인간사회에 대한 조롱같은 게 있다. 이런 데서 오는 묘한 충돌들이 상황을 더 충격적으로 느끼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무로서는 정말 이해안되는 상황이지 않겠나.

■ 학살장면도 생생히 묘사돼 있다. 말씀하셨듯이 한명 한명에 집중한 듯한데, 죽는 순간에 자기들에게 학살명령을 내렸을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이승만 만세"라고. 저도 그 상황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

□ "나는 빨갱이가 아니다, 좌익사범이 아니다"라는 표현이었다. "난 지금 당신들의 정부를 숭배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제스처. 이것도 역시 살아남은 자의 증언에 의한 실화다.

■ 학살이 일어나기 직전 "너 좌익사상자지?"라고 묻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학살이 일어나는 현장, 피가 튀고 시체를 밝고 도망가고 그런 상황에서 외친 말이라는 게 가슴이 아프다. 만화에서는 그 장면에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등장시키더라.

□ 당시 명령을 내린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오히려 빨갱이 가족이라는 멍에 속에 60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가해자가 오히려 떵떵거렸고 피해자는 숨어야 했다.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오히려 우익활동을 했다. 세월호 사건도 비슷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피해자가 오히려 각종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한국현대사의 압축판이다.

■ 나아졌을까. 회의적이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잘 보여주는 게...당시 민간인학살사건에 참여했던 지시받고 이행했던 국군이 "난 그저 시켜서 한 일 한거다. 지금도 그게 애국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 함양산청사건의 박물관 조사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국군이 학살참여 때 30세도 채 안됐다. '난 시켜서 한거고 애국이다' 이게 뭘까 생각이 들더라. 그들이 생각하는 애국이 뭘까? 국가라는 개념이 뭘까? 국가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고 국민을 희생하도록 하기위한 건 아닌데. 잘못된 지시와 명령에 의해서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런 걸 시키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50년대 뿐 아니라 잘못 채워진 첫 단추처럼 잘못된 역사가 지금 역사에까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 애국이란는게 뭔지, 애국을 통해서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국가가 무언인지, 마침 현충일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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