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다' 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박정범 감독이 20일 서울 상수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21일 개봉한 영화 '산다'(제작 세컨드윈드필름·(유)산다문화산업전문회사)의 연출과 주연을 맡은 박정범(40) 감독은 "서울 압구정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왔다"고 했다. '집이 잘 사는구나'라고 넘겨짚었다. 그런 그가 영화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처절한 겨울나기를 몹시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압구정에서 살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잘 산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형과 여동생이 있는데, 어머니가 저희 교육을 위해 18번이나 이사를 다니셨죠. 월세로요. 맹모삼천지교였죠. 그곳에서 살아남아야만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있으셨어요. 운이 좋았죠. 그런 부모님을 만난 덕에 대학도 가고 영화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20일 서울 상수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난의 고통을 뼈져리게 느꼈다"며 "압구정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곧 문제아가 된다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신은 왜 불공평할까' '극복하라는 건가'라는 질문을 내내 품고 살았어요. 부모님은 늘 가난하셨죠. 그건 어떻게 보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거잖아요.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것, 부모님이 나쁜 사람도 아닌데 가난하다는 것 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세상의 부조리에 눈뜰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물음은 지금도 그의 가슴 속에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답을 찾을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것에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있다.
"우리네 삶은 사건의 연속인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든 사건이 비슷한 속성을 띠고 있어요. 그것이 제 영화의 소재입니다. 그 비슷한 면을 함께 바라보며 생각해 보자고 던지는 거죠. 어릴 때 한 살 터울 형과 진지하게 얘기했던 '우리는 왜 가난한 걸까' '부모님이 열심히 사시는데 왜 행복은 오지 않는 걸까'라는 물음은 아직도 화두입니다. 그때 고민이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인데, 아마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겁니다."
▶ 일용직 노동자로 꽤 오래 생활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경험 없이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담아내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 2000년대 초반 서울의 한 주상복합 건물 공사현장에서 반년 정도 일했다. 강원도 평창 집에 가도 장작 패고 메주, 된장 나르는 일은 제 몫이다. 이후에도 2, 3개월 일해 번 돈으로 영화 찍고, 돈 떨어지면 다시 일하러 가고 하면서 꽤 오랫동안 지냈다.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일하시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저 역시 꿈을 위해 하는 일이었기에 노동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이 제게는 소중한 재산이다.
▶ 산다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주인공인 일용직 노동자 정철(박정범)이 한겨울에 힘겹게 나무를 자르고 돌을 깬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반복해야만 하는 시시포스처럼.= 제가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강원도 평창으로 가셔서 된장 공장을 하고 계신다. 영화 산다의 배경도 평창의 시골이다. 시골에서 겨우내 그러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미친놈"이라고 하신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일을 하지 못하니까.
영화 속 정철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얼어붙은, 병들어가는 시대를 살면서 그러는 건 바보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다 그런 거 아니냐"며 나쁜 것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으니까.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그때, 정철은 자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노동을 한다. 그렇게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 장면이 중요했다.
▶ 정신이 불안정한 정철의 누나 수연(이승연)의 자학도 같은 맥락이겠다. = 수연은 아무 남자와 잔 뒤 죄의식을 느끼고 자기 몸을 때린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힘든 환경인 세상에서 그녀는 그 고통을 통해 스스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희망을 꿈꾸는 건 죄가 아니다. 문화를 향유할 여유를 지닌 관객의 입장에서는 희망을 찾아가는 정철과 수연의 방법이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을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오만일 수 있다. 변두리에 사는 이들의 가족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안고 살기 때문이다.
영화 '산다'의 한 장면(사진=세컨드윈드필름 제공)
▶ 극중 시골 마을의 된장 공장을 주요 무대로 한 데는 세상 곳곳에 침투한 물질만능주의, 비인간적인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를 단순화해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탐욕과 이기심을 키울 때 잊어 버리는 것들을 전하고 싶었다. 막노동 현장에서 쫓겨난 정철은 자기 살겠다며 된장 공장 노동자들을 몰아낸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을 조장하는 자본가가 있다.
단순히 "자본가는 나쁘고, 노동자는 선하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힐 때는 피라미드의 위에 자리한 사람들이 유리하고 행동의 파급효과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만큼 그 사람들에게는 보다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쌍용차 사태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한 그들의 선택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한다.
▶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저변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 희망이 깔려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선하다고 믿는다. 전작 '무산일기'(2011)는 주인공인 탈북자 승철(박정범)을 통해 그러한 믿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번에는 자기 행복을 위해 남의 행복을 가로채는 정철과 그 주변인들의 행동을 통해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 내 행복을 위해 남의 행복을 빼앗는, 물고 물리는 악순환의 무한고리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시선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소비도 가치 있는 소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놓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 배려를 고민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시스템이 소수를 위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왜 누군가는 스러져가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보고 강요하고 있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답은 나온다. 부조리한 세상에 길들여져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영화가 가진 임무라고 보는 이유다.
박정범 감독(사진=황진환 기자)
▶ 극중 겨울을 나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은 처절하다. 의도적으로 겨울을 배경으로 삼았나.
= 겨울에는 모든 것이 멈춘다. 성장도 자연도 모든 것이. 겨울은 얼어붙어 있는 동안, 봄을 기다리는 순간으로 견디는 계절이다. 그것이 견디고 인내할 수밖에 없는 정철네 가족이 지닌 현실로 다가왔다.
▶ 영화 속 앵무새를 키우는 한 인물은 "배가 고파야 말을 잘 듣는다"며 먹이를 주는 정철의 어린 조카 하나(신햇빛)를 나무란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대하는 시선에 대한 은유로 여겨지던데.= 가축을 길들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상으로 먹이를 주거나, 벌로 매를 들거나. 사람이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되는데, 이 세계는 인간에게도 그 방식을 쓴다. 일 잘하면 성과금, 못하면 해고라는 식으로 가축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과만 따지고, 과정에 관심 없는 세상에서는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 "왜 난 하나도 가질 수 없는 거냐"고 절규하던 정철이 극 말미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에서 영화 산다는 성장담으로도 읽힌다.= 정철은 스스로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살아갈 이유를 갖고 있다. 그걸 깨닫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조건의 일부라는 것 말이다. 자기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커다란 힘이다.
어린 시절 먹을 것 하나를 두고도 형과 많이 다퉜는데, 여동생은 그 싸움에 끼지 못하고 겁에 질려 지켜봤다. 그런데 형이나 저 누가 먹을 걸 차지하더라도 불쌍한 여동생과 나눠 먹었다. (웃음) 결국 그렇게 함께 먹을 거면서 싸웠다. 안 싸워도 되는 문제인데…. 그걸 깨닫는 게 어려운 것 같다.
▶ 정철의 조카인 하나의 때 낀 손톱에서는 대물림되는 가난의 낙인을 엿볼 수 있었다.= 저 역시 어릴 때 손이 그렇다고 선생님께 한소리 들은 기억이 있다. 극중 하나에게는 어쩌면 그러한 손톱이 자연스러운 것일 텐데,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는 "너는 왜 손톱이 까맣니?"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어서 씻고 와"라고 한다. 이는 쓰러진 사람을 앞에 두고 "어디 아프니?"라고 묻지 않고 "너 이상하구나"라고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만 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영화 '산다'의 한 장면(사진=세컨드윈드필름)
▶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50여 차례나 고쳤다고 들었다.
= 그런데도 완성도가 이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게 큰 문제다. (웃음) 제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 것 같다. 담대한 사람이라면 '이거 아니다' 싶어도 그냥 찍을 텐데 말이다. 배우, 스태프들 앞에서는 내색할 수 없지만 찍으면서도 계속 고치고 의심한다.
계속 고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게 진짜일까?' '실제로 가능한 건가?' '내가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만 고민한다. 진짜 세상을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크다. 뭔가를 영상으로 담아내면 그 자체로 가짜가 되지만, 그럼에도 가장 근접한 것을 찍고자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그게 없으면 공허하다. 질문 없는 영화가 있을까?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지켜가야 할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