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보훈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국가보훈처가 5.18민주화 운동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으로 부르기로 하면서 5.18기념식이 두 곳에서 열리게 됐다.
정부 기념식은 망월동에서 열리지만 5.18유족회 등 관련단체 등은 이에 반발해 금남로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갖는다.
제창이나 합창은 창법의 차이일 뿐 여럿이 부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정부가 보수단체의 논리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되레 국론분열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대신 합창으로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이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특히 작사자(소설가 황석영, 북한 작가 리춘구) 등의 행적으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는 점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보훈처가 내세운 이런 이유는 정치권이나 국민 일반의 정서와는 전혀 배치된다.
(자료사진)
국회는 지난 2013년 6월 여야 합의로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고,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4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은 광주정신이며, 5.18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게끔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참석자들이 다 함께 부르는 제창은 안 되고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은 된다는 것도 억지스럽다"며 "보훈처가 이 노래로 색깔론 같은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 통합을 오히려 해치고 있는 박승춘 보훈처장에 대해 해임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즉시 보훈처장을 경질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광주시의회도 성명을 내고 박 국가보훈처장의 해임을 공식 요구했다.
김정현 수석부대변인도 "관습헌법상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인 것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도 5·18노래"라며 "두 개의 5.18기념식을 끝까지 방치한다면 후대 역사는 박근혜 정부가 5.18을 의도적으로 폄훼했다고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반응은 새누리당에서도 일찌감치 나온 것이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해 4월 보도자료를 내고 보수단체들의 '색깔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자료사진)
당시 하 의원은 "이 노래를 작사한 황석영 씨의 밀입북은 1989년 이뤄졌고, 해당 북한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1991년에 제작됐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사자의 8년 뒤 입북과 10년 뒤 제작된 북한영화에 억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인과관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황석영씨가 몇 년 후 친북행위를 했다 해 이 노래를 부르지 말자는 주장은, 안익태 씨에게 친일 의혹이 있으니 애국가를 불러선 안 된다는 일부 좌파의 주장과 같이 잘못된 논거에 기초한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우파 일각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에서 만들어져 남쪽으로 확산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북측에서도 부르는 노래이며 그 통일은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니 부르지 말자고 하는 것과 같이 터무니없는 망상"이라고 덧붙였다.
하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주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알지 못하고 부르지도 못한다"며 "허락되지 않은 노래이기 때문에 부를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도 "형식은 합창이지만 다같이 부를 수 있어 제창과 마찬가지"리며 "이런 형식적인 이유로 5.18기년식을 두 쪽으로 갈리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 기념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불참할 예정이어서 '반쪽 기념식' 논란도 일고 있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 이후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은 기념식에서 제창 방식으로 불렸지만 보수단체들의 문제 제기로 2009년부터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