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기자수업'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책 말미에 "만약 독자 중에서 기자생활과 관련한 또 다른 궁금점이 있다면 본인의 이메일이나 SNS를 통해 연락주시기 바란다. 언제나 '소통'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적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궁금한 사항을 묻는 이메일이 오기도 합니다. 페이스북 댓글과 이메일(steelchoi@naver.com)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주]
아무리 '기레기'라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기자 사회에서 지켜야 할 금도는 있습니다. 타사 기자의 취재수첩을 훔쳐서 '특종'을 한들 그게 어디 본인의 특종이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해당 기자는 어떻게 될까요? 이 바닥에서 그냥 매장된다고 보면 됩니다. 왜냐면 더이상 해당 기자를 '기자'라고 불러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JTBC 손석희님이 지금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몇번의 사과 기회가 있었는데도 번번히 '딴소리'를 하는 걸 보니 결국은 사달이 날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JTBC 성완종 육성보도'와 관련해 기자에게 '특종'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한번 다뤄보려고 합니다. 기자윤리에 대한 얘기도 조금만 덧붙여보겠습니다.
제가 이 얘기는 하도 여기저기에서 해서 좀 식상합니다만, 기자에게 특종은 '보이지않는 무공 훈장'과도 같습니다. 특종을 하면 이상하게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도 않습니다. 다른 기자를 '물먹였다'는 쾌재가 아니라 "드디어 나도 어디가서 '기자'란 소리는 듣고 다니겠구나"하는 자기 위로의 느낌이랄까요.
예전에 법원을 같이 출입했던 타사 모 기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특종을 하려고 녹음기를 몰래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법정 안에 설치했다가 발각돼 법원이 '발칵' 뒤집어 진 적이 있었습니다. 특종에 눈이 멀어 '비상식적 행위'를 한 것입니다.
적절한 변명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해당 기자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거듭 용서를 빌어 사법처리는 되지 않았습니다.
손석희님도 이런 욕심과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손석희님은 경향신문의 성완종 회장 녹취록 전문공개를 불과 몇시간 앞둔 시점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확보한 것도 아닌 녹취파일을 자사 방송을 통해 내보냈습니다.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습니다. 사실 반칙보다는 '절도'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는 JTBC의 절도 방송 직후 페이스북에 "열받아서 잠이 안온다"고 썼더군요. 그 글은 이미 '성지순례'수준으로 네티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를 손석희님은 제대로 알고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 손석희님이 이번 '성완종 육성보도'와 관련해 해명한 것을 옮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전인수'식 얘기여서 좀 당황스럽습니다.
손석희 사장의 오프닝, 클로징 멘트 |
- 15일 녹취록 보도 전 손석희 오프닝 멘트 -
JTBC 취재진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던진 날 새벽,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한 녹취록 전체를 입수했습니다. 지난 10일부터 경향신문이 지면을 통해 보도하고, 녹취 내용을 일부 공개해왔습니다. 이 녹취파일을 JTBC 취재팀이 입수했는데요.
저희가 1부에서 잠깐 예고해드렸습니다만 경향신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것을 여러분께 공개해드리는 이유, 특히 대부분의 분량을 공개해드리는 이유는 또 다른 녹취록에 대한 오해를 가능하면 불식시키고 지금까지 일부만 전해져 왔던 것에서 가능하면 전체 맥락이 담긴 전량을 전해드려서 실체에 접근해보자, 이건 시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부분이니까요. 다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전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분석을 통해서 그가 남긴 이야기가 어디까지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이 내용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16일 클로징멘트 전문 -
뉴스를 마치기 전에 보도책임자로서 어제(15일) 성완종 씨 녹음파일 방송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입장을 밝혀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뉴스룸을 마치겠습니다.
당초 검찰로 이 녹음파일이 넘어간 이후, 이 녹음파일을 가능하면 편집 없이 진술의 흐름에 따라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이 파일이 검찰의 손으로 넘어간 이상 공적 대상물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들은 경향신문이 전문을 공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자로 전문이 공개된다 해도 육성이 전하는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봤고, 육성이 갖고 있는 현장성에 의해 시청자가 사실을 넘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경쟁하듯 보도했느냐 라는 점에 있어서는 그것이 때로는 언론의 속성이라는 것만으로 양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저희들은 고심 끝에, 궁극적으로는 이 보도가 고인과 그 가족들의 입장, 그리고 시청자들의 진실 찾기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입수경위라든가 저희들이 되돌아봐야 할 부분은 냉정하게 되돌아보겠습니다.
저나 저희 기자들이나 완벽할 순 없습니다마는 저희들 나름대로의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
기자는 누구보다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져야하는 존재입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기자는 남에게도 떳떳한 기사를 내 보일 수 없습니다. 처신이 부끄러운 기자는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란 명목으로 그 뒤에 잠깐 숨을 순 있어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손석희님, 더 늦기 전에 변명이 아닌 사과를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그간 손석희님이 JTBC를 변화시킨 일을 상기하며 "그래도 손석희를 믿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손석희님이 옳은 일을 한 건 절대 아닙니다.
이번 건과 관련해 손석희님을 비난하지 말라고 하는 분들에게 CBS노컷뉴스 구병수 사회부장이 명쾌한 답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성경 읽겠다고 은촛대를 훔친 것과 뭐가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