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 70년, 본격적 탈북 20년을 맞는 오늘 탈북자들에게 대한민국은 더 이상 '따뜻한 남쪽 나라’만은 아니다. CBS노컷뉴스는 북녘을 떠난 이들에게 다가온 ‘새터’의 새로운 의미를 집중 조명하면서, 남북이 하나되기 위한 과제와 해법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경제이주민' 된 탈북자, '남조선 판타지' 깼다" ② 이미지 파는 탈북 장터… "막말해도 됩네까?"③'완장 찬' 탈북 1세대는 왜 '반기'를 들었나?"④ 남한 내 북북 갈등…탈북 동지간 분단선 긋다
탈북자 맞춤형 취업지원 박람회 자료사진 (윤창원기자)
탈북자들 사이의 북북(北北)갈등이 심상치 않다.
'믿었던' 탈북 선배는 후배 탈북자를 등치는가 하면, 탈북자 사이 양극화는 그들 사이 '분단선'을 긋고 있다.
특히 북한 고위층 출신의 탈북자와 옥수수 한토막으로 죽을 쒀먹으며 연명한 이들 사이에는 이질감을 넘어 적개심마저 흐른다.
북한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지난 2008년 탈북한 이모(67)씨는 "북한에서도 잘나가던 이들이 언론에서 주목받는 걸 보면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북한에서 힘들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비중이 늘고 있는 이른바 '꽃제비' 출신 탈북 청소년들을 향한 삐딱한 시선도 크다.
부모를 잃고 노숙 생활을 하다 남한으로 건너온 이들이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꽃제비 출신의 A(21)씨는 "평양 출신의 먼저 탈북한 아저씨들은 우리 같은 함경도, 양강도 출신 꽃제비들이 '고향 망신시킨다'고 말한다"며 "사상교육은커녕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한 우리에게는 와 닿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탈북자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박모(15)양도 "탈북자 아저씨들이 꽃제비 출신이거나 부모가 없는 친구들에게 '남의 물건이나 훔치던 것들'이라고 말하곤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북한군 장교 출신인 탈북자 B(58)씨는 "탈북자 밀집지역인 임대 아파트 안에서도 못 배우고 자란 탈북자들은 골칫거리"라면서 "내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걱정돼 그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 "북한말 쓰는 아버지와 말도 안 통해요"함께 사선을 넘나들며 남한에 도착한 가족들은 문화 적응 속도 차이 탓에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변화에 민감한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 음식 대신 '맛내기'(화학조미료의 북한말)를 찾거나 할리우드 영화보다 옛 중국 영화만 찾는 부모 세대가 답답하기만 한 것.
탈북자 대안학교를 다니는 이모(15)양은 "나는 북한어를 다 잊어버렸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남한 말이 익숙하지 않다"며 "그새 아버지와 말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북자 사이 가장 첨예한 인식차는 남녀 간 성별 갈등 지점에서 나타난다.
탈북 여성 김모(41)씨는 "남자와 달리 여자들은 금방 변해서 3~4년만 지나면 곧잘 남한 사람 흉내를 낸다"며 "남한 사회에 익숙해진 북한 여자들은 무뚝뚝한 북한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누가 경제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서도 불화가 빚어져서, 북한 정치를 연구한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는 "탈북 여성이 식당 서빙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지만, 자존심 강한 탈북 남성들은 직업을 잘 구하지 못해 갈등이 있다"고 밝혔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좌절한 탈북 남성의 분노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에게 향하면서 가정 폭력 문제도 심각하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같은 탈북자라 선뜻 투자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
심지어 탈북 신입생들을 먼저 온 탈북 선배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탈북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던 한모(49)씨가 탈북자 400여명에게서 160억원의 투자금을 챙긴 뒤 사라진 ‘한성무역 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