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로 통하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가 고객정보 불법 판매 등으로 얼룩진 홈플러스에서 강연을 한다?
언뜻 떠올리기 어려운 그림이다. 하지만 4일 아침 서울 역삼동 홈플러스 본사에서 임직원들은 협력사와 수익을 제대로 분배하라는 장 교수의 따끔한 충고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안그래도 대형마트가 갑질 논란에 단골로 출연하는 상황에서, 홈플러스는 최근 고객정보를 불법판매한 것까지 드러나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과연 회생할 수 있을까 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에 홈플러스 도성환 사장은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장사의 맨 처음부터 고민을 해보자"면서 회사를 추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 교수 초청 강연도 그 일환으로 '면전에서 욕을 먹더라도 고칠 것은 고치겠다'는 심정으로 추진한 일이다.
문제는 장 교수가 쉽게 강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장 교수는 기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지 않는다. 그간 두 차례 선례가 있긴 했지만 작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장 교수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재벌개혁에 앞장 서 왔던 것을 감안하면 유통 빅3 중 한 곳이자 각종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던 홈플러스 임직원을 상대로 강연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홈플러스는 열심히 매달렸다. 장 교수와 대학 선후배 사이인 도 사장을 비롯해 임원들이 나서서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고 실천할 것이다"라고 장 교수를 설득했다고 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우리가 변화의 의지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면서 진정성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강연 자리에서 홈플러스의 그간 문제적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평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정의로운 분배가 없으면 스스로 소멸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기업의 생존에 정의가 필수 요건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장 교수는 특히 대형마트들이 시장에서 만나는 최종 소비자에게만 집중하다 협력회사의 출혈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면서 "행복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협력회사와의 분배를 바로 잡는 게 키포인트"라고 말했다.
앞서 홈플러스는 도성환 사장이 대주주인 영국 테스코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설도원 부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경영진 교체가 마무리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장 교수를 '모셔 오다시피' 한 강연은 모기업 테스코의 분식회계, 매각설, 경품추첨 비리, 고객정보 불법판매까지 그간 악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홈플러스는 내부적으로 직원 윤리의식 제고를 위한 교육 및 내부점검 시스템 강화, 개인정보 보안을 위한 내부 시스템 강화, 일상적 개인정보 활용업무 개선, 기존 제휴사업에 대한 원점 재검토 등에 들어갔다.
도성환 사장은 "우리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고객과 협력회사, 지역사회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행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