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이병기 국정원장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를 시사한 뒤 27일 이병기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하기까지는 무려 46일이 걸렸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과 특보단 인사, 설 연휴, 취임 2주년 등 수 차례의 인사 시점을 뒤로 하고 선택한 비서실장 인사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 등의 하마평에 오른 사람이 20여명을 넘는다. 이병기 실장은 하마평에 한 차례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사실 국정원장 직책이 대통령 비서실장보다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현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차출한 데에는 그만큼 집권 3년차 국정 운영이 중요하다는 위기 인식과 현 시점의 특수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총리와 개각 카드가 인적쇄신의 맥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해, 후임 비서실장 인사에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 추동력 확보를 위해 국정원장을 차출하는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인사 배경으로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은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과 주일대사, 국가정보원장 등을 거친 분"으로 "국제관계와 남북관계에 밝고 정무적인 능력과 리더십을 갖춰 대통령 비서실 조직을 잘 통솔해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을 원활히 보좌하고 국민과 청와대 사이에 소통의 길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가 집권 3년차로 국정과제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시점으로 여기서 헤매며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답이 없다"며 "이병기 실장의 임명으로 대내외 원활한 소통이 기대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을 두고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는 "합리적인 성격으로 소통에 능하다"는 것이다.
김기춘 전 실장이 '권위'와 '카리스마'로 상징되는 '관리형 비서실장'이였다면, 이병기 신임 비서실장은 정무적 능력을 갖춘 '소통형 비서실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통이 기대되는 이유는 이 신임 실장이 박 대통령도 잘 알고 새누리당의 신임 지도부와도 오랜 인연과 신뢰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이 신임 실장은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 지난해 대선 때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박 대통령을 도운 적이 있어, 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신인 실장은 또 2001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 안보특보, 2002년 이회창 대통령 후보 정치 특보로 일할 때,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이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 비서실장, 유승민 현 새누리당 원내대표이자 당시 여의도 연구소장 등과 호흡을 맞추며 두터운 신뢰관계를 맺어왔다고 한다.
여기에다 박 대통령이 김성우 사회문화 특보를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발탁하고, 주호영 윤상현 김재원 의원 등 정무특보단을 구성한 것도 결국 전방위적인 소통과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현 시점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8개월 만에 아무런 과오도 없는데도 국정원장을 교체해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돌려막기 식 회전문 인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이 강하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도 "국정원장 한 지 얼마 안 된 분이 가서 유감스럽게 생각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이 신임 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자리를 3번이나 옮기게 됐다" "여러 번 사양했다"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옮기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 소통과 거리가 먼 회전문 인사", "사상 유례없는 잘못된 인사"라고 강력 비판하며 "비서실장에 현 국정원장을 임명, 정보정치와 공안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에 청와대와 내각, 새누리당의 소통은 몰라도 새정치연합 등 야권과는 보다 날카로운 대치 전선이 조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무튼 박 대통령은 이번 인사를 통해 청와대 조직개편, 이완구 총리와 4개 부처 개각 등 청와대 문건 파동 이후 진행된 기나긴 인사작업을 모두 마무리했다.
박 대통령은 다음 달 1일 3.1절 기념식 참여와 중동 4개국 순방에 나서며 집권 3년차 국정운영을 본격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