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에는 우승 감독이었지." 1990년 2월17일 국민은행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끈 김태환 현 해설위원의 SK 감독 시절. (자료사진=KBL)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어느덧 여자농구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미 '봄 농구'를 할 세 팀이 모두 결정됐는데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KB스타즈가 챔피언을 놓고 다툽니다. 25년 전인 1990년 2월17일은 이 세 팀 중 하나가 농구대잔치 정상에 오른 날인데요. 바로 KB스타즈, 당시 이름으로는 국민은행입니다.
당시 농구대잔치는 1~3차 대회를 거치면서 하위 팀들이 차례로 떨어지고, 3차 대회 종료 후 합계 성적(순위 점수제)으로 상위 두 팀이 최우수팀 결정전에 올라 챔피언을 가렸습니다.
국민은행은 2차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1, 3차 대회 우승을 차지한 삼성생명과 최우수팀 결정전에서 맞붙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단연 4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생명이었습니다.
그럴 만 했습니다. 삼성생명에는 농구대잔치 여자부 최다 득점 기록(3939점)을 보유한 국가대표 슈터 최경희, 센터 성정아(수원 영생고 교사)에 무려 1억~1억5000만원(추정치)의 계약금과 함께 입단한 '루키' 정은순(현 해설위원)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184cm 성정아와 188cm 정은순의 더블 포스트로 1, 3차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국민은행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김태환 감독은 1차전에서 센터 조문주(181cm)와 함께 4명의 단신 선수를 넣는 승부수를 띄었는데요. 정은순을 파울 작전으로 막아냈습니다. 결국 정은순은 전반에 얻은 자유투 8개 중 5개를 놓쳤고, 후반에는 단 2점에 그쳤습니다.
특히 박정숙(현 삼천포여고 코치)이 3점슛 3개를 포함해 31점을 퍼부었는데요. 특히 최경희를 15점으로 막아 67-61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25년 전인 2월17일. 최우수팀 결정전 2차전이 열렸습니다.
2차전에서도 박정숙의 활약은 계속 됐는데요. 박정숙은 2차전에서도 26점을 넣으면서 국민은행 공격을 이끌었고, 수비에서도 최경희를 13점으로 틀어막았습니다. 덕분에 국민은행은 64-58로 승리하면서 5년 만의 우승을 맛봤습니다.
박정숙은 우승과 함께 잠시 농구 코트를 떠나 은행원으로 일했는데요. 사실 당시에는 은퇴 시기가 지금보다 빨랐습니다. 27~28세가 되면 여자 선수들은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창일 나이인데 말이죠.
잠시 코트를 떠난 박정숙은 1997년 모교인 삼천포여고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농구 코트로 돌아왔고, 1998년부터는 삼천포여고 정식 코치로 활약 중입니다. 그리고 곽주영(신한은행), 정미란(KB스타즈), 박혜진(우리은행), 강이슬(하나외환) 등 숱한 제자들을 프로로 보냈습니다.
'까치' 조문주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성정아를 맡으면서도 정은순에게 공이 가면 부지런히 도움 수비를 갔으니 혼자서 둘을 막은 셈입니다. 당시 국민은행의 상징이었던 '까치'란 애칭으로 불렸으니 말 그대로 국민은행의 대들보였죠. 은퇴 후 대학에 진학했고, 2007년에는 박사 학위까지 땄습니다.
당연히 김태환 감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당시 김태환 감독은 40세의 젊은 감독이었습니다. 동대문상고 졸업 후 곧바로 은퇴한 김태환 감독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1986년 임영보 감독의 부름을 받고 국민은행 코치를 맡았습니다.
임영보, 진가일 감독을 거쳐 국민은행 지휘봉을 잡았는데요. 하루 9시간의 강훈련을 통해 취임 10개월 만에 농구대잔치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후 남자농구 중앙대와 LG, SK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현재는 해설위원으로 시원한 입담을 과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