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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이 죽 끓듯 하는 ''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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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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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시간이 가지 않던 지루한 시기가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그게 언제냐고 물으면 10중 9명은 군복무 할 때라고 할 것이다.

국방부시계는 거꾸로 걸어놓아도 잘 돌아간다는데 나도 이런 지루함에 항복을 한 적이 있다. 더구나 근무지가 병원이라 야근은 얼마나 많은지 할 수 없이 시간을 보내려고(killing time) 시작한 것이 일본어이다.

물론 처음부터 일본어 문법책을 붙잡고 본 것은 아니다. 아니 그 후에도 한번도 일본어 문법책은 보지 않고 바로 TEOIC과 비슷한 JPT시험문제를 푼 기억이 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만화 ''슬램덩크''덕분이다. 그림을 보고 한자실력을 동원해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이 지금 유창하게 일본어가 가능하게 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런데 영어를 상대로 이런 시간죽이기 놀이를 해 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일본어와 달리 큰 걸림돌이 영어에는 존재해서다. 바로 ''동사''라는 변덕쟁이 아가씨가 그 장애요소다. 영어의 동사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읽을 가치가 없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동사의 어미만 변하면 목적어를 가지는 타동사, 목적어가 필요 없는 자동사, 남에게 무언가를 당하는 수동형 동사, 남이 뭔가를 시키면 따라 하는 사역동사까지 될 수 있다.

물론 ''가다'', ''오다''나 ''때리다''와 ''맞다'', ''낳다''와 ''태어나다'' 등과 같이 형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극소수의 예일 뿐이다.

반드시 목적어를 갖든지 아니면 절대 목적어를 동반해서는 안 되는, 제한된 기능만을 가진 동사들을 나는 ''바보동사''라고 부른다. 서양언어에는 이런 바보동사가 상대적으로 많다.

''손을 떨다''와 ''손이 떨리다''의 의미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의식적으로 손을 떠는 것이고 후자는 무의식 중에 손이 저절로 떨린다는 의미이다.

우리말에서는 ''떨다''라는 동사의 어미만 변하면 이렇게 큰 차이를 낼 수 있다. 이 문장을 영어로 바꾸면 ''I shake my hands''와 ''hands tremble''이 되는데 완전히 다른 동사가 쓰인다. ''떨다''라는 의미의 shake는 목적어로 ''hands''를 갖지만, hands가 주어가 되면 ''떨리다''라는 의미의 tremble이 동사가 된다.

그런데 ''떨다''를 ''떨린다''로 표현하기 위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능동태 문장을 수동태로 바꾸게 되면 아주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다. 문장을 수동형으로 바꿔 ''Hands are shaken''이라고 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손을 흔들어줘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손이 떨리는 상황이 된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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