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교향악단의 해체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교향악단1985년 3월의 마지막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역사적인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교향악단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으로 시작된 공연은 피아니스트 신수정과 함께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으로 청중을 사로잡았으며, 마지막 곡인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코리안심포니의 앞으로의 미래를 선언하듯 빛나는 무대로 마무리되었다.
코리안심포니의 탄생은 1981년으로 거슬러올라가게 된다. 그 해 8월 국립교향악단이 해체되며 KBS로 이관됨에 따라 당시 상임지휘자였던 故홍연택이 함께 사임한 단원40여 명과 신입 단원들을 모집하여 한국의 민간오케스트라 탄생을 주도하게 됐다.
민간오케스트라의 탄생은 화려했다. 1986년 9월 개최한 86아시안게임기념 서울국제음악제에 아시아 5개국 6개의 오케스트라와 정상급 음악가들이 참여한 음악축제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1989년에는 5000명 대합창 연주회를 기획하여 전국 5000명의 연합합창단원과 200명의 관현악단이 모여 국내 최대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오명철 기자는 당시의 공연에 대해 “이날 합창연주회는 5000여 명의 합창단과 200여 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단 등 건국이래 최대규모로 청중들을 압도, ‘듣는 음악회’로서는 물론 ‘보는 음악회’로 주목됐다… 7000여 관중으로부터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성공적인 공연에 힘입어 90년 제2회 5000명 합창연주회가 또 한 번 이루어지면서 코리안심포니의 공연을 통해 국민 화합의 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90년대 코리안심포니의 역사 가운데 주목할만한 일은 찬송가 대전집의 출시이다. 한국 찬송가집이 발간된 지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반된 이 대전집에는 찬송가 558곡 전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찬송가 전곡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출반한 것은 세계적으로 첫 시도이기도 하다.
준비기간만 3년 반, 리허설 5000여 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디지털 시스템의 도입 등으로 최상의 소리와 음질을 자부하는 음반의 출시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국내 유일의 오페라, 발레 전문 오케스트라의 탄생하지만 교향악단이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정충당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당시 코리안심포니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특별회원제도를 운영하고, 연 90회 이상의 외부 연주회를 통해 재정적자를 해소하려고 노력하였지만 87년 당시 1회의 정기연주회마다 700여만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존폐여부까지 의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민간교향악단의 현실이었다.
이때 손을 내밀어준 곳이 국립극장과 쌍용그룹이다. 국립극장은 1987년부터 코리안심포니와 전속계약을 맺고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의 공연을 전담하게 하여, 국내 유일의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를 탄생시켰다.
재정적인 도움은 쌍용그룹의 후원으로 가능해졌다. 89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쌍용그룹에서 문화사업지원을 추진하면서 매년 3억 원씩 5년간 조건없이 코리안심포니에 예산지원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쌍용그룹의 지원을 통해 89년부터 미국 보스턴 심포니의 탱글우드 음악제에 버금가는 국내음악제를 개최하자는 취지로 ‘용평하계음악캠프’를 시작한다. 하지만 첫 회에는 폭우로 인해 계획된 야외무대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500여 석밖에 되지 않는 강당에서 연주하게 되었다.
1회의 이런 악운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용평하계음악캠프는 이 후 1995년 7회까지 성공리에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코리안심포니의 재난피해는 이후 두 번이 더 일어났다. 2007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공연 도중 화재가 발생하여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중인 단원들이 새까만 잿더미 속에서 빠져 나왔으며, 2011년 7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사무실이 침수되어 당일 리허설이 급하게 취소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어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아 빠른 복구가 가능하였다.
◈ 금융실명제와 IMF가 준 두 번의 위기, 그리고 기회1993년 코리안심포니에 첫 번째 위기가 닥친다. 금융실명제가 시작되면서 기업의 자금경색 여파가 문화예술계에 불어 닥쳤고, 코리안심포니도 예외는 아니게 되었다. 연간 3억씩 5년간 지원을 약속한 쌍용그룹의 지원연장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93년 11월 연합뉴스기사에 따르면 “대다수 문화예술인들은 ‘기업측에 문화예술지원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으면서도 쌍용이 대기업이고 또 지원하던 단체의 존립여부에 관계없이 단호히 ‘생명줄’을 끊으려 한다는 점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라고 당시 상황을 기록한다.
이런 여론의 분위기로 쌍용그룹은 94년도와 95년도에 추가 1억 원을 증액하여 총 4억 원의 지원을 하였고, 96년~97년에는 연 5억 5000만 원을, 98년에는 2억 원을 지원하는 등(98년 시사저널 기사 참조)의 도움을 주어 코리안심포니는 위기를 타파하게 된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맞아 쌍용그룹이 강력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이 후 쌍용그룹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되고, 코리안심포니는 두 번째 존폐위기가 시작된다.
1998년 이런 코리안심포니를 안타깝게 여긴 국내 음악인들은 위기에 닥친 코리안심포니를 위해 하나가 되었고, ‘코리안심포니와 친구들’이라는 음악회를 개최한다. 지휘자 정명훈과 소프라노 김영미, 전효신, 테너 임정근, 바리톤 고성현, 김요한, 김장현 등의 성악가들이 무보수로 참여한 코리안심포니의 기금마련 특별연주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예술의전당 상주단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2000년 1월 코리안심포니는 예술의전당 상주단체로 새롭게 시작하였고, 2001년 3월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이었던 이영조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이어서 2003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이었던 김민이 두 번째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김민은 취임소감을 “낙관 80%, 걱정 20%다”라고 밝혔다. 이는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홍연택이 타계하며, 내부의 갈등과 재정악화로 해체위기까지 몰리는 등 코리안심포니의 세 번째 위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민은 “우리를 결속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라는 취임사처럼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4년 김민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고, 예술의전당 사장이 코리안심포니의 이사장을 겸직하면서 상주단체로서의 지위를 보다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재정적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예술의전당 기획 프로그램 연주를 전담하는 등 공연의 폭을 넓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상임지휘자의 부재는 코리안심포니의 숙제였다. 2005년 독일출신의 로버트 쾨니히, 2006년 재일교포이자 러시아 국립교향악단 부지휘자인 박태영을 객원지휘자로 영입한 바 있지만 상임지휘자의 필요성은 대두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2007년 한양대학교 교수이자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였던 박은성이 코리안심포니의 제3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다.
박은성과 코리안심포니는 창단 25주년을 맞이하여 첫 번째 미국 투어를 기획한다. 2010년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과 L.A 세리토스홀에서 개최된 공연은 현지 언론의 격찬을 받는다.
특히 뉴욕타임즈의 스티븐 스미스 기자는 “인상주의적인 색채와 제스쳐로 가득한 초현실적 분위기, 거기에 속삭이는 듯한 목관악기와 확신에 찬 금관의 사운드, 그리고 희미하게 빛나는 금속타악기가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무대였다”라는 글로 당시 공연에 대한 극찬을 한 바 있다.
2011년 1월, 독일 작센 주립극장의 수석지휘자인 최희준이 당시 국내 최연소 상임지휘자라는 타이틀로 제4대 예술감독(이때부터 음악감독이 예술감독이라는 명칭으로 변경)으로 취임해 음악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젊고 패기 넘치는 수장의 취임으로 대중과 클래식의 거리를 좁히는데 더욱 힘쓰게 된 시기이다.
국내 교향악단 최초로 클래식음악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자체 제작해 생후 36개월부터 공연관람이 가능하게 한 ‘키즈콘서트’, 신인아티스트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라이징스타’ 등 획기적인 기획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 동시에 ‘쉼 없이 진일보하는 오케스트라’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2011년 3월에는 국립예술단체 공연연습장의 개관과 함께 자체연습실을 보유하게 되면서 안정적으로 기량을 연마할 수 있는 시설이 확보되는 등의 환경개선이 이루어졌다.
2014년 1월, 제5대 예술감독 임헌정이 취임하며 코리안심포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거듭나고 있다. 3년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브루크너 시리즈’, 슬로바키아 가을페스티벌, 오스트리아 브루크너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본격적인 해외무대진출을 준비하는 등 지난 30년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교향악의 역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자료 제공 - 코리안심포니라보엠>교향곡>피아노>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