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자료사진 (사진 = 이미지비트 제공)
정부로부터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인 해썹(HACCP) 인증을 받은 돼지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정부의 해썹 인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오는 28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 ‘돼지 이력관리제’가 시작부터 안전성에 금이 갔다. 돼지에 대한 전염병 관리시스템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축산물 안전을 강조하며 각종 인증과 제도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HACCP 인증 농장, 구제역 감염...인증 믿어도 되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썹에 대해 “식품의 원재료부터 제조, 가공, 보존, 유통, 조리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의 각 단계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해요소를 규명하고 관리해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인 위생관리체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썹 인증은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신청하면, 정부가 서류검토와 현장조사를 거쳐 최종 발급하게 된다. 이후에는 1년마다 정기검사를 실시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해썹 인증을 과연 믿어도 될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3일까지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17개 돼지농장 가운데 4개 농장이 해썹 인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 중 3개 농장은 국내 최대 돼지고기 유통업체의 계열농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농림축산검역본부 주이석 본부장은 “이들 3개 농장의 경우 구제역 백신의 항체형성률이 38%로 평균 기준에 크게 미달했다”며 “전염병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는, 전염병을 포함한 위해요소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정부로부터 해썹 인증까지 받은 대규모 축산물 유통업체와 계열농장들이 평소 안전관리를 엉망으로 했다는 방증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처럼 문제가 드러난 해썹 인증 사업장에 대해 과태료 부과는 물론 인증 취소와 같은 적극적인 행정처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썹 인증의 경우 어떤 예방하는 목적이지,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취소하지는 않는다”며 “자율적으로 인증을 받기 때문에 해썹과 관련된 패널티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해썹 인증이 비록 식중독과 같은 위생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결국 위해요소 제거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삼겹살 자료사진 (사진 = 이미지비트 제공)
◈ 28일 시행 앞둔 ‘돼지 이력관리제’...전염병 관리 ‘속수무책’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소 이력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오는 28일부터는 돼지에 대해서도 이력관리제를 시행할 방침이다.
이력관리제란 가축이 태어난 순간부터 어떤 사료를 먹고 자랐는지, 전염병 예방 백신은 언제 접종했고 어느 도축장에서 도축해 가공포장은 어떻게 했는지 모든 세부사항을 기록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들에 대한 일종의 안전서비스다.
소의 경우는 각 개별 소에 대해 이력관리제가 비교적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 구제역 이 소에서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력관리에 따른 예방백신 접종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28일부터 시행되는 돼지 이력관리제는 농장단위로 이뤄질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돼지의 경우 현재 1,000만 마리 정도가 사육되고 6개월이 지나면 출하되기 때문에 각 돼지마다 이력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농장단위로 관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농장단위로 이력관리제를 시행할 경우 많게는 수 십 개 축사에서 수만 마리를 키우는 돼지농장의 특성상, 형식에 그칠 것이라는 점이다.
농식품부는 돼지 전염병 백신접종 사항은 아예 이력관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돼지의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한 달에 한두 번씩 사육두수를 파악하고 있지만 정확한 숫자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이번에 시행되는 이력관리제의 경우도 사육통계와 도축, 유통 경로를 파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 발생정보와 예방체계에 대한 정보는 없다”며 “추후 보완해 나갈 문제”라고 덧붙였다.
불안하게 출발하는 돼지 이력관리제가 구제역 예방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렇기 때문에 돼지 이력관리제가 해썹과 같이 생산농장과 유통, 가공업자에게 유리한 홍보 수단은 될지 몰라도, 소비자들에게는 혼란만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