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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아빠! 엄마가 왔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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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지금 꼭 안아줄 것'…아내 잃고 주부아빠로 사는 전직 기자 에세이

지금 꼭 안아줄 것/강남구/클

 

한 남자의 품에 꼭 안긴 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 그 만개한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미소 짓게 만들 만큼 거짓도 꾸밈도 없다.

그런데 자꾸 아이를 안고 있는 남자에게 눈길이 간다. 뒷모습만을 드러낸 그는 아마도 아이의 아빠일 것이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꼭 안길 수 있는, 일거에 아이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남성으로 아빠 아닌 다른 존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아빠의 표정이 몹시 궁금하다. 그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을까. 특별한 각오를 다지기라도 하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는 않을까.

신간 '지금 꼭 안아줄 것'(지은이 강남구·펴낸곳 클)의 표지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은 특별하다. 그 감흥은 사진 속 부자의 삶이 주는 감동과 맞닿아 있다.

'여보, 나중에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비로 다시 만나자. 그래서 연애 10년을 기념하는 여행을 같이 떠나자. 구름 속에서 대화도 오래 하자. 미안했거든. 일 때문에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게 말이야. 비가 되어선 다른 데 가지 않을게. 항상 곁에 있을게. 함께 있다는 게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거든. (중략) 그전에 가끔 아이가 보고 싶으면 비로 내려와.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당신이라고 생각할게. 당신 몫까지 행복하게 사는 아이와 남편을 보고 슬퍼하지 말아줘.' (84쪽)

이 책은 아내를 잃은 뒤 직장 생활을 접고 '주부 아빠'로 살아가는, 전직 방송기자인 지은이의 자전적 에세이다.

앞서 KBS 인간극장 '사랑은 아직도'를 통해 아이와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따뜻한 일상이 소개돼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낸 그 이야기다. 이 책에는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지난 2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2년 봄, 지은이의 아내는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혈액을 이식받던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취재현장을 뛰어다니던 그의 곁에는 다섯 살 어린 아들이 남았다.

'민호는 집안에서 흐르는 분위기로 이미 엄마에게 중대한 일이 일어난 걸 감지했다. 민호는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힘겨운 목소리라도 들었던 전화마저 끊긴 게 벌써 90일이 다 되어갔다.' (146쪽)

'한동안 울던 민호는 곁에 있는 장난감을 잡고 다시 놀기 시작했다. 농담도 건넸다. 통곡하며 가슴을 뜯었던 어른과 비교를 하면 아이가 보여준 슬픔은 예상보다 적었다. 이날 민호는 엄마 사별 소식에 잠시 아빠 품에 안겨 우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의 가슴은 지금이 아니라 사춘기 때 비통함에 젖을 것이란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149쪽)

◈ 아내에게 한 마디만 전할 수 있는 시간 허락된다면…"사랑한다"

 

아이를 보며 지은이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의 행복을 흘려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그는 아내에게 못다 전한 사랑을 아이와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2년은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빈자리에 아이가 들어온 시간이기도 했다. (중략) 주변의 모든 자리를 아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는 떠났으나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이별과 만남은 빛과 어둠처럼 한 쌍이었다.' (280쪽)

책은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극도의 절망과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차분히 기록하고 있다.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을 이해시키며 부자가 함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여정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그 여정에는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인을 밝히려는 지은이의 힘겨운 싸움도 오롯이 녹아 있다.

'아내와 이별을 하고 유가족이 아니라 병원이 먼저 연락을 하고 스스로 가족들에게 다가오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딸을 여읜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삶을 다한 고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오히려 법리적인 공격과 방어에 급급했던 병원과 합의 의사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8천만 원이란 돈은 딸의 죽음을 오히려 평가절하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235쪽)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관료화된 병원, 인간애를 상실한 병원을 향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평소에 알고 지내던 병원 지인들이 일제히 연락을 끊었다는 점과 민원실과 법무실 중심으로 사안을 대처하는 모습에서 병원은 망자나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238쪽)

이 책의 제목에 굳이 '지금'을 넣은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꼭 안아줘야 한다는 지은이의 깨달음과 실천을 전하기 위함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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