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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인들 목소리 "우리 사는 게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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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인축제 좌담회 '여성영화인이여 연대하라' 온라인 중계

4일 서울 삼청동 씨네코드 선재에서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 주최로 열린 여성영화인 특별좌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다소 무겁게 받아들여질 법한 얘기가 나올 할 때조차도 미소를 부르는 농담이 그 무게감을 누그러뜨렸다. 그래서 더욱 깊숙이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말이다. 4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씨네코드 선재에서는 '영화 생태계의 변화와 여성영화인의 위상 변화 - 여성영화인이여 연대하라'라는 주제로 여성영화인 특별좌담회가 열렸다.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 주최로 열린 이날 좌담회는 여성의 눈으로 한국영화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그 안에서 여전히 약자로 머무는 여성영화인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영화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사회로 제작사 드림캡쳐 김미희 대표, 배우 문소리, 임순례 감독, 주진숙 중앙대 영화과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좌담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심재명 대표(이하 심): 인권영화를 많이 만들어 온 임순례 감독님은 8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장편영화를 연출한 여성 감독이다. 영화계에서 20여 년간, 여성영화인모임에서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든 소회가 있다면.

임순례 감독(이하 임): 제가 알기로는 장편영화 7편 연출했는데…. (웃음) 저 이전에 최다 연출 여성감독의 기록이 6편이었다. 그 이전에는 고작 3편. 사실 너무 초라한 기록이다. 제 경력이면 적어도 10여 편은 만들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함께 데뷔한 김기덕 홍상수 감독이 15편을 만드는 동안 그랬으니 굉장히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 (웃음)

현업에 있는 여성 감독 중 나이도, 장편영하 연출 편수도 가장 많아 부담을 느낀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30대 후배 감독들이 많다. 그들이 저보다 더 많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 문소리 씨는 1999년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뒤 2002년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를 앓는 여성을 연기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지금까지 20편의 장편영화를 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감회가 어떤가.

문소리(이하 문): 박하사탕 개봉이 2000년 1월 1일에 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만들어진지 15년 됐으니 제가 데뷔한 시기와 같다. 운 좋게도 199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던 시기에 데뷔했다.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고 기다리는 직업이다. 그렇지만 본인의 선택도 포함돼 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덕을 본 배우로서 큰 것을 돌려줄 수 있는 배우가 돼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동안 현장에서 '나는 여자니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영화가 많이 성장했음에도 굉장히 남성 중심의 세계관, 역사관을 담은 영화들이 넘쳐나면서 오히려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시각이 다양해지지 못하고 훨씬 좁아지는 듯해 안타깝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20억 원 미만의 상업영화가 만들어지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영화인의 연대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고 여자 이순신 영화를 만들자는 건 아니다. (웃음)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때 훨씬 더 다양하고 섬세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더욱 커지는 데뷔 15년째다.

심: 문소리 씨 답변이 너무 길었다. 다음 분들은 좀 짧게 해 달라. (웃음) '주유소습격사건'을 시작으로 '혈의 누' '선생 김봉두' 등의 흥행작을 냈고, 지난해 '숨바꼭질'까지 30편 넘는 장편영화를 제작해 온 김미희 대표님.

김미희 대표(이하 김): 1999년 주유소습격사건으로 프로듀서 데뷔를 했다. 그때는 10여 명의 여성 영화인이 프로듀서 또는 마케팅 분야에 한정돼 있었다. 지금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여성이 많아져 놀랍다.

주유소습격사건 시사회를 할 당시 언론들이 범죄영화라는 표현을 썼다. 저는 범죄영화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이렇듯 (남성 중심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소위 1세대 여성영화인들은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여성영화인 스스로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 왔느냐가 중요하지 않나 싶다.

심: 중앙대 영화과에서 영화 이론을 가르치시는 주진숙 교수님. 20년 전까지만 해도 여학생들이 적었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안다.

주진숙 교수(이하 주): 제가 워낙 무섭게 굴어서인지 학생들과의 친밀도가 낮다. 오늘 이런저런 얘기를 해야 하는 지라 어제 그제 여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얘기를 들었다. (웃음)

10년 전만 해도 30명 정원인 영화과 한 학년에 여학생이 3명, 5명이었다. 지금은 남학생이 11명, 여학생이 19명이다. 이번에 입시를 치르면서 봤을 때도 여학생이 3분의 2는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 현장에는 여성들이 적다. 그 유망해 보이던 여학생들, 지난 15년간 여성영화인모임에서 주는 상을 받은 반짝반짝 하던 분들이 다 사라졌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여학생들과 한 얘기를 짚어 보면, 연출부나 제작부에서는 아예 여학생을 불러 주지 않는다. 학교쪽으로 인력을 요청하는 전화가 와도 '남학생이면 좋겠다'고 한다. 여학생이 현장에서 칭찬을 받더라도 그 다음에는 불러 주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좌담회에 늦지 않으려고 택시를 탔는데 여성 기사분이었다. 이 기사분이 남성들과 달리 교통 체증을 뚫지 못하고 헤매셔서 속에서 불이 나더라.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웃음)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이 지금 사회가 여성들을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그것이 15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염려가 크다.

심: 임순례 감독님은 청년들의 암울한 처지를 그린 놀라운 데뷔작 '세친구'(1996)부터 최근 '제보자'까지 리얼리즘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더라. 작업하면서 지키고 싶은 것들을 듣고 싶다.

임: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가급적이면 인공적인 것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세트를 안 쓰고 장소를 섭외한다. 이번에 제보자 스태프들과 술 한 잔 마시면서 불만을 얘기하라 했는데, 굉장히 조심스럽게 "세트 짓는 기술도 좋은데 왜…"라고 하더라. (웃음) 나머지는 현장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모든 스태프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심: 임 감독께 두 번째 질문. 여성 감독이 상업영화에 접근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임: 한국의 상업영화, 장르영화는 활황인데도 여성들이 득세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제가 지닌 정서 자체가 상업영화 코드와 맞지 않는 듯하다. (웃음) 뭔가 굉장히 화려하게 포장할 수도 없고, 관객의 입맛과 타협하는 데 있어서도 취약하다.

그렇더라도 큰 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의 경우 적어도 제작자, 투자자에게 큰 손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전제를 깐다. 그래서 시나리오와 연출에 있어서 양보할 것과 고집 부릴 것을 구분한다.

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들이 활약을 못하는 게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업적인 지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영화의 중간 지점이 없다. 여성 감독들은 20억~30억 원 규모의 영화에 강점이 있는데, 그러한 규모의 영화가 제작될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심: 여성 감독들의 장점인 유연한 사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발휘할 영화가 없는 게 사실이다.

문소리 씨, 배우는 선택 받는 입장이지만, 연기를 하면서 선택한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 주인공상이 문소리 씨를 통해서 바뀌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웃음) 여배우로서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 법을 애기해 달라.

문: '하하하'(2010) 때 홍상수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기로 하고 촬영을 위해 통영으로 내려가기 전, 친한 여성영화인들과 얘기를 했는데 "제발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여자 주인공이면 좋겠다"고 하더라. (웃음)

홍 감독님이 원래 대본을 미리 안 주시지 않나. 촬영 첫날 제 역할이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직업 여성이라는 말을 듣고는 희망을 발견했다. 중간에 친구들이 응원차 내려와 "맡은 역할이 어떤 여자냐"고 묻길래 "정신이 똑바로 든 여자야"라고 답했는데, 옆에 있던 프로듀서가 "똑같이 또라이죠"라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많은 남성 감독들과 일을 할 때 그들의 판타지를 구현해 내야 하는 미션을 받을 때가 있다. '판타지는 당신이 해결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제가 구현하려는 캐릭터는 제가 느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것과 거리가 멀어서 애를 먹었던 적도 많다.

그런 부분들을 감독님께 부탁하고 구슬리고, 어떨 때는 싸우기도 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캐릭터가 온전한 사람으로서 발딛고 서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캐릭터를 제 안에서 키워낼 때 남성 감독님들이 바라는 꿈의 여성상이 돼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영화에 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심: 2001년 한국의 장편영화가 50편 나왔는데, 여성 감독이 만든 장편영화는 단 2편이었다. 올해는 장편영화 180편 가운데 7편이다. 2009년에는 11편으로 여성 감독의 작품이 가장 많았다.

2004년에는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 단 한 편이 나왔다. 그 영화를 제작한 분이 김미희 대표다. 여성 감독과 작업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김: 변영주 감독님과는 '밀애'(2002)로 첫 인연을 맺은 뒤 발레교습소를 이어서 했다. 신인 감독과 작업을 하는 게 재밌다. 영화가 흥하든 망하든 신인 감독과 두 작품을 하는 게 제작자로서 기준이다.

남성 감독과 일할 때, 여자 감독과 일할 때는 정말 다르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남성성이 강한 감독과 일할 때 가장 힘든 것이 이 부분이다.

여성 감독과는 일을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차별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남성성이 강한 감독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를 건네면 일단 얼굴이 굳는다. (웃음) 그 다음부터는 말을 잘 못하겠더라.

여성성이 강한 남성 감독과는 재밌게 작업한다. 여성의 뇌 구조가 조곤조곤 설명하고 서로를 설득하는 것 같다. 즐겁고 시너지도 크다. 개인적으로 여성 감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심: 김 대표님, 여성 감독과 작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으신지.

김: 의무감은 없다. 굳이 여성, 남성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콘텐츠를 편협되지 않게, 다양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단, 일에 대한 보람은 여성 감독, 또는 여성 시나리오 작가와 하는 과정에서 얻는 게 더 크다.

심: 지금은 비평이 사라진 시대라고 말한다. 창작물을 평가하고 이론화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위축되고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도 크다. 이 점에서 주 교수님께서는 어떠한 바람을 갖고 계신지.

주: 과연 이론이나 비평이 필요한 시대인가. 소수의 비평가만 활동을 하고 있고, 이론도 너무 많이 위축돼 있다. 똑똑한 학생들이 공부를 마쳐도 갈 곳이 없고, 이론과 비평을 필요로 하는 학교도 많이 줄었다.

영화학과라는 이름도 사라지고 있다. 지방대학에서는 미디어, 콘텐츠, 디지털 등의 단어와 합쳐져 이름이 바뀌고 있다. 강의할 자리도 찾기 힘든 셈이다.

영화산업은 커졌지만, 좋은 영화가 나오기 힘든 현실이다. 여성적인 감수성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우리 시장에서는 다 죽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여제자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스파이 스릴러 장르로 살펴보겠다면서 '운명의 손'(1954), '쉬리'(1999), '베를린'(2012)을 비교 분석했다. 세 편 모두에서 여주인공이 죽는데, 운명의 손과 쉬리에서는 죽음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이유가 없다. 저와 여학생들이 느낀 게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였다. 왜 전보다도 퇴보하는가라는 개탄이었다.

영화 환경이나 콘텐츠 내용에서 보이는 이러한 점들과 비평이 사라지는 시대, 영화 이론이 필요 없는 시대가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심: 문소리 씨는 흥행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영화를 많이 해 왔다. 여배우로서 입지 변화를 절감하고 있을 텐데, 돌파구를 갖고 있는지.

문: 돌파까지는 아니어도 잘 버티자고 생각한다. '애가 어린데 집에서 애나 키워야 하나'라는 식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드니까 할 게 없어지나'라는 생각. '여자 캐릭터가 사라지고 남자들이 무리지어 나오는 영화를 많이 만들다보니 메인 관객인 30, 40대 여성이 그 쪽으로 가나'라는 생각도 든다.

할 캐릭터가 너무 없다. 30대, 20대 후반 여배우들도 할 게 없다고 얘기한다. "왜 이렇게 여자들이 안 나오는 거예요" "너무 없어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바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계속 가지는 않겠지'라는 낙관적인 생각에 그때까지 버텨야 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15년째 이 일을 하다보니 주변에 여성영화인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그들과 함께 의논을 많이 한다. 배우로서 매우 큰 사랑을 받았으니, 이젠 그 사랑을 돌려주고 끌어안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부도 한다.

심: 이 지점에서 여성영화인의 연대가 요구된다. 여성영화인들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우리를 위한 영화 제작을 강구하는 것이다.

육아 등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없을까. 여성할당제가 있다. 70년대 유럽에서는 주요 기업, 공무직, 교사, 정치인 등 사회 전반에 있어서 여성 고용을 의무적으로 30~40%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여성할당제가 있지만 공무직, 교사에 한정된 게 현실이다.

기업의 경우도 여성이 CEO일 경우 세제 지원이 있는 것으로 안다. 영화계에도 여성의 비율이 40%를 넘는 영화에 있어서는 여성할당제의 개념으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교육·문화 수준에 비해서 양성 평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영화계에도 여성영화인의 연대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봤다.

주: 중앙대에서 드디어 1호 여성 감독이 나왔다. 올해 개봉한 '셔틀콕'을 통해서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감독 본인은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다더라. 여성 감독들이 느끼는 재미는 주류와는 다른 것 같다. 그런 정서와 재미를 어떻게 유포할 수 있을까도 문제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연대를 하자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여성영화인들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은 촬영 등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영화계에 새로 진입하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인식을 심어주고 현장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워크숍,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 스태프를 구성할 때 남자 팀장은 밑에 조수로 친밀한 사람을 뽑다보니 여성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여성은 배출되고 있는데, 왜 산업적으로 지속이 안 될까. 결혼, 출산, 육아가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데뷔를 하고 어느 분야의 장이 될 때쯤 결혼, 출산, 육아를 하다보면 현장에 돌아오기 힘들다.

연결고리가 중요하다. 프로듀서나 제작 부문에서 여성이 성장하는 게 그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카트'는 심재명 대표가 아니었으면 제작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미희 대표가 여성 감독들과 꾸준히 작업을 하듯이 제작에서 결과물로 만들어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듯싶다.

여성이 감독을 꿈꾸더라도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으니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부딪혀 보는 게 남성들보다 약한 것이다. 생각보다 안 힘들 수 있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도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문: 어려서는 정신 없이 돌아다녀서 그랬는지, 여성영화인들이 왜 연대를 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이제 아이를 낳고 마흔이 됐는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과부하가 걸리는 심정이다 보니 여성영화인모임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더라.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도 그렇게 큰 위안이 되는데 이 모임은 어떻겠나. (웃음)

선배 여성영화인들이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한국의 많은 남성영화인들이 해내는 못하는 일들도 해내고 있는 듯해서 이제서야 더 크게 깨닫고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김: 여성들의 권리나 권익을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능력과 강인함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한두 작품하고 사라진 친구들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제작부에 여성들을 반드시 한 명 넣는다. 투명성, 책임감, 합리성을 지닌 여성들의 성향이 프로듀서랑 너무 잘 맞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게 근성이다.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근성을 갖고 끊임없이 노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쳐서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물었을 때 귀기울임으로써 연대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심: 여성영화인들이 해야 할 숙제들이 생겼다. 여성들의 영화 현장 진입을 돕는 구체적인 오리엔테이션, 공적 지원의 제도화에 대한 노력 등등의 목소리를 냈다.

올해 한국영화 산업을 보면서 많은 실망도, 그만큼 많은 희망도 봤다. 임순례 감독님의 제보자를 보면서 우리 사회 현실에 돌직구를 던지는, 이렇게 세련된 상업영화로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의 연대를 얘기한 카트가 잘 될 줄 알았다. (웃음) 카트는 80만 명 가까운 관객들이 봐 주신 소중한 영화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연대를 다루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더욱 힘을 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여성영화인으로서 이후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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