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EG 회장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동생 박지만 EG 회장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에서도 박 회장을 집중 견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역대 정권이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못해 몰락을 자초한 것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더구나 박 회장은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다섯 차례나 구속된 바 있어 박 대통령 친인척 가운데 관리대상 1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윤회 씨 동향 문건’이 공개된 이후 나온 각종 인터뷰와 증언 등을 종합하면 박 회장이 정치와 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청와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국정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감지된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집중 견제한 것은 ‘워치 도그’(Watch Dog, 감시견) 역할에 충실한 것이지만 박 회장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박 회장의 수사검사였던 조 전 비서관이 그를 대신해 정 씨와 3인방을 감시하고 묶어 놓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나를 비서관에 추천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박지만 EG 회장은 아닐 것”이라며 자신과 박 회장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세계일보는 지난 3일 복수의 정보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박 회장이 지난 5월 김기춘 비서실장과 당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에게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되고 있다는 제보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자신 주변인 관련 비위 의혹 등이 담긴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문건을 다량 입수하고 ‘누군가 나를 음해한다’고 생각하고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입수한 문건은 정호성 제1 부속비서관 손을 거쳐 김실장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박 회장은 김 실장 뿐만 아니라 남 국정원장에게 문건 유출에 대해 조사를 요청했다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일반인의 신분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신분을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박 회장을 전혀 모른다”며 부인한 상태고, 문건을 전달 받은 것으로 전해진 정호성 비서관도 문건을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군과 국정원 등에서 박지만 회장의 인맥으로 통하는 인사들이 잘 나가다가 박 회장이 정윤회-3인방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리자 이들도 자리를 잃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장경욱 기무사령관 후임으로 재직하다 지난 10월 자리를 옮긴 이재수 현 육군 3군 부사령관이다. 이 부 사령관은 박 회장의 고등학교, 육사 37기 동기로 매우 절친한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마찬가지로 박 회장과 관련한 전언에 기초한 보도들 가운데 아직 확인된 것은 없다. 박 회장이 정 씨보다 더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박 회장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정 씨가 자신에 대한 보도가 시사저널에 났을 때 그를 만났다는 것과 지난 11월 박 회장 쪽에서 전화로 시사저널의 미행보도 관련 고소 취하를 요청했다는 정 씨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박 회장은 정 씨 동향 문건이 보도된 이후에 언론에 모습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입을 꾹 닫고 있다.
검찰이 정윤회 씨 동향 문건 유출경위와 내용의 진위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려면 박지만 EG 회장도 불러 얘기를 들어 봐야 한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청와대 문건 다량 유출과 박 회장의 청와대 조사 요청 여부에 대한 명명백백한 사실 확인을 위해서도 조사를 할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 혐의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의 동생을 소환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렵다.
무엇보다 실체적 진실규명에 대한 검찰의 의지가 강해야 하지만 현재 수사의 초점이 문서유출에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파문’을 계기로 박 회장의 이름이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만큼 그를 둘러싼 말들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