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나는 FA들' 2015 FA 시장은 지난해 광풍을 넘어서는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장원준-최정-윤성환-박용택-김강민-안지만(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등 올해 FA 최대어들.(자료사진=롯데, 노컷뉴스, 삼성, SK, LG)
뚜껑이 열렸다. 2015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막을 올리기가 무섭게 폭발하고 있다. 역대 최고액에도 도장을 찍지 않을 정도의 과열 양상이다.
지난해 강민호(롯데)가 세운 4년 75억 원, 역대 최고 몸값은 1년 만에 3위로 처졌다. 순위가 더 내려갈 수도 있다. 장원삼(삼성) 역시 지난해 4년 60억 원, 역대 투수 최고액이 하루 아침에 3위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억' 소리가 절로 난다. FA 시장에서 소외된 선수들이나 일반인들은 뚜껑이 열린다. 한 마디로 '미친 FA 인플레이션'이다. FA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물가가 뛰어도 너무 뛰었다.
▲최정-윤성환 최고액 경신 시간 문제
역대 1위 몸값의 주인공은 강민호에서 최정(SK)으로 바뀌었다. 원 소속 구단과 협상 마감일인 26일 최정은 4년 86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당초 예상됐던 100억 시대를 열지 못했지만 이 정도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윤성환(삼성)은 지난해 팀 동료 장원삼의 투수 최고액을 훌쩍 넘었다. 4년 80억 원에 사인했다. 이는 지난해 강민호를 넘어서는 액수다. 안지만(삼성)도 4년 65억 원에 계약했다. 불펜 투수 역대 최고액이던 정대현(롯데)의 4년 36억 원은 물론 정상급 선발 장원삼도 능가하는 금액이다.
이제 어지간한 외야수 FA의 기준은 50억 원으로 굳어진 모양새다. 김강민(SK)이 4년 56억 원, 박용택(LG)이 4년 50억 원을 찍었다. 그나마 지난해 이용규(한화)의 4년 67억 원, 외야수 최고액은 바뀌지 않았다.
주전과 백업을 오갔던 형제도 총 50억 원을 합작했다. 내년 주전 보장이 어려운 동생 조동찬(삼성)이 4년 28억 원, 올해 처음 풀타임을 소화한 형 조동화(SK)가 4년 22억 원에 계약했다. 김경언(한화)의 3년 8억 5000만 원 계약은 소박하다.
이 8명만으로도 400억 원(395억5000만 원)에 가깝다. 지난해 15명 FA가 세운 역대 최고액 523억 5000만 원 경신이 유력하다. 2015년에는 '아직 11명의 FA들이 남아 있사옵니다'다. 최정의 역대 최고액, 윤성환의 투수 최고액도 바람 앞의 등불이다.
어장도 풍부하고, 어족도 다양하다. 올해 최대어로 급부상한 좌완 장원준을 비롯해 배영수, 송은범 등 선발 자원에 권혁, 이재영, 김사율 등 불펜 요원이 적잖다. 나주환, 박경수, 박기혁(이상 내야수), 이성열(외야수), 차일목(포수)까지 갖췄다.
▲장원삼-장원준, 비슷한 조건에 30억 차?1년 사이에 물가가 껑충 뛰었다. 지난해도 시쳇말로 '미친 FA 시장'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더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장원준이다. 1차 협상 마감일인 26일 장원준은 원 소속팀 롯데의 구애를 뿌리쳤다. 롯데는 4년 최대 88억 원 제시액을 이른바 '깠다.' 지난해 강민호, 장원삼은 물론 최정, 윤성환도 넘는 엄청난 액수였다. 이렇게 사력을 다했는데도 장원준을 붙들지 못하자 비등할 비난 여론에 대한 롯데의 항변이었다.
그렇다면 장원준은 최소 90억 원은 받아야 할 것이다. 다른 구단이 만 29살 사우스 포를 데려가려면 롯데가 내민 카드보다는 많아야 할 것이다. 이는 지난해 장원삼보다 30억, 올해 윤성환보다 20억 원이나 많은 액수다.
장원준이 그렇게 뛰어난 투수일까. 2004년 데뷔한 장원준은 군 복무로 빠진 2년을 빼고 9시즌 통산 258경기 85승77패를 거뒀다. 평균자책점(ERA)은 4.18이었다. 한 시즌 평균 10승이 채 되지 못한다. 다만 2008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은 62승, 평균 12승 정도를 거뒀다.
같은 좌완인 장원삼은 지난해 FA 취득 당시 8시즌 213경기 88승65패를 기록했다. 장원준보다 1시즌 덜 뛰고 3승이 더 많았다. 10승 이상 시즌도 5번으로 같았다. 다만 대졸이기에 나이는 30살로 고졸인 장원준보다 1살 위였다. 여러 모로 비슷한 조건이다. 그런데 30억 원 차이가 난다.
윤성환은 어떨까. 역시 올해 값비싼 FA 물가가 그대로 반영됐다. 2004년 데뷔한 윤성환은 군 복무한 2년을 빼고 9시즌 82승55패 ERA 3.88을 기록했다. 역시 10승 이상 시즌은 5번이었다. 나이는 33살로 FA 취득 당시 장원삼보다 3살 많다. 그런데 20억 원을 더 받는다. 장원삼은 좌완이라는 희소성도 있었다.
▲"유망주 육성-발굴 대신 FA 눈독 구단 문제"
지난해 FA들과 협상에 나섰던 한 단장은 "정말 엄청나다"며 FA 과열상에 화들짝 덴 소감을 밝혔다. 모 감독은 "국내 프로야구는 모그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다간 정말 기업의 부담이 커져 다 망할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더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FA 물가가 치솟고 있다. 한 야구인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물론 시장은 그해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올해는 신생팀 kt까지 가세하면서 수요가 는 탓도 있다. 장원삼이 올해 FA 시장에 나왔다면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이같은 이상 과열은 각 구단들이 키웠다는 지적이 적잖다. 2005년 이후 FA 최고액이던 심정수(은퇴)의 4년 60억 원은 10년 가까이 깨지지 않았다. 각 구단에 암묵적인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거품 계약이 발생하면서 시장 질서가 교란되기 시작했다. 모 단장은 "2011년 이택근(넥센), 2012년 김주찬(KIA)이 시발점이었다"고 했다. 이택근과 김주찬은 각각 LG, 롯데에서 현 소속팀으로 옮겨오면서 4년 50억 원 FA 계약을 맺었다. 당시 이택근은 두 시즌 연속 100경기를 채우지 못했고, 평균 50타점, 60득점 밑이었다. 김주찬도 50억 원까지는 아니라는 평가였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은 최근 FA 시장에 대해 "구단들이 너무 고액 FA들에 의존하는 것 같다"면서 "유망주들을 키우고 육성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최근 3년 MVP는 다른 팀에서 버리다시피 한 선수라는 기사가 큰 공감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를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큰 돈을 쓴다는 지적을 받을 만한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저 연봉은 내년 2700만 원. 그나마 5년 만에 300만 원이 오른 액수다. 프로는 곧 돈이라고 하지만 극과 극 양상이 극심화하고 있다. 장원준이 제시받은 4년 88억 원은 최저 연봉의 약 326배다. 가뜩이나 빈부 격차가 극심한 현실에, 프로야구 FA 시장 소식까지 서민들과 저연봉 선수들의 삶은 더욱 팍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