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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연서, 50점 짜리 여배우의 당당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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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배우 오연서. (웰메이드예당 제공)

 

깍쟁이다, 새침하다, 여우 같다. '왔다! 장보리'로 이런 오랜 수식어를 모두 떼어낸 탓일까. 배우 오연서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오연서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재동의 한 카페에서 특유의 밝은 미소로 취재진들을 맞았다. 다문 입이 열리면 금방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오연서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어?' 이게 제 목표였어요. 그전에 했던 역할이 깍쟁이 같은 역할이라 이런 것도 할 줄 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리는 억척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인데 저랑 배경이 비슷해요. 저도 시골에서 올라왔거든요. 그런 감성이 저에게도 있었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홀로 많은 것을 감당하는 원톱 주인공의 자리는 그에게도 버거웠다. 그러나 다소 벅찼던 장편 드라마의 긴 호흡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다.

"일단 타이틀 역할이라는 부담감이 컸어요. 대본이 극적이라 감정 소모가 심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대사도 길게 쓰시는 편이라 모든 배우들이 힘들어했어요. (촬영 기간이) 길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는 게 제일 힘들어요. 지칠 때도 자꾸 보리를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중간부터 시청자 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왔다! 장보리'가 이 정도로 '대박'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40%를 육박하는 시청률은 현장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면 갈수록 시청률이 잘 나왔는데 이 정도로 대박이 날 줄은 몰랐어요. 사랑을 정말 많이 받게 돼서 신기하고 얼떨떨하기도 해요.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죠.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NG를 내도 PD님이 좋게 좋게 넘어가시고 화를 안 내시더라고요.(웃음) 워낙 또 밤새는 걸 싫어하세요. 촬영할 장면이 많아도 제일 늦게 끝났을 때가 새벽 3시였어요. 잠도 자고 충전도 해와서 좀 더 좋은 연기를 보여 달라는 것이 PD님의 생각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오연서'라는 배우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다. 심지어 베트남에서도 그를 알아보고 인사해 온 중년 시청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많은 분들이 정말 좋아해주세요. 밖에서 만나면 손도 잡아주고, 엉덩이도 토닥거리면서 '힘내라'고 응원해줬어요. 베트남에 화보 촬영 갔을 때도, 보리와 다른 모습이라 못 알아볼 것 같았는데 중년 시청자 분들이 다 알아보시는 거예요. 관광하러 오신 거긴 하지만 아는 척 해주시니까 뿌듯하고 좋더라고요"

무엇보다 '장보리'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가장 컸다. 답답할 정도로 착한 모습 때문에 비난 받을 때는 자신의 일인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보리는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착해요. 연기할 때 처음에는 좀 답답했어요.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보리의 상황에 맞춰 생각하다 보니까 이해가 가더라고요. 후반에 보리가 욕먹는 것도 마음이 아팠어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런 건데…보리처럼 착한 사람도 욕 먹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리 언니가 연기를 잘 해서 그랬는지 연민정에게 연민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있더라고요. 1회부터 보면 정말 용서하면 안되는 인물인데.(웃음) 저는 보리가 부잣집 부모와 재회하지 않고 성공하지 못했어도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배우 오연서. (웰메이드예당 제공)

 

비단이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 김지영과는 친모녀처럼 돈독한 애정을 자랑한다. 그는 아직도 김지영을 '비단이'라고 불렀다.

"둘이서 스마트폰 메신저를 많이 해요. 비단이가 자기 사진도 보내주고 그러는데 진짜 딸 같아요. 비단이가 크면 얼마나 신기할까요. 10년 뒤면 20살이잖아요"

근거 없는 악성 댓글들에는 이제 꽤 내공이 쌓여 보지 않는 법을 익혔다. 그 대신 정당한 비판은 언제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안 보려고 많이 노력해요. 밖에서도 내 욕했다고 하면 기분 나쁜데 솔직히 속상하고 기분 상하죠. 그런데 가끔은 저에게 일침을 주시거나 아쉬운 점에 대해 말하는 댓글도 있어요. 무작정 비판은 밉지만 그런 반응을 보면 수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 있으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고, 앞으로도 노력해서 좋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가장 힘이 되고 기억에 남더라고요"

최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방송 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전혜빈 언니와는 따로 통화해서 얘기했어요. 언니는 그런 의미로 얘기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녹화하는 날도 화기애애하고 즐거웠고, 따로 언니와 얘기해서 풀고 이럴 것도 없었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거예요. 예능프로그램의 무서운 점은 편집의 힘이 크고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준다는 거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예능은 하지 않으려고요.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고, 말투 때문에 선입견이 생겨서 오해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왔다! 장보리'가 '막장드라마'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드라마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선은 더 선하고, 악은 더 악하고. 살면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일인데 극적으로 만들다 보니까…. 악한 장면들만 보였다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됐다고 생각해요. 막장이 아니라 극적이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왔다! 장보리'하면 악역 연민정을 맡은 배우 이유리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캐릭터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다 보니 결말로 갈수록 연민정의 비중이 높아졌다. 오연서는 이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서운해 한다고 바뀌는 부분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만 질투가 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기운이니까요. 연민정 악행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재밌어 한 것 같아요. 작가님도 마지막에 서운해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보리가 행복하지 않으면 이 드라마는 행복할 수 없다고, 수고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사실 저는 고마운 게 더 크죠. 시청률 높은 드라마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잖아요. 쑥스러워서 못했는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만약 그가 연민정 역할이었다면 어땠을까. 오연서는 좀 더 실력을 쌓은 후, 악역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예전에 사이코패스 역할을 해본 적이 있는데 좀 시원한 건 있어요. 평소에 화내거나 해코지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으니까 못 해본 것에 대한 그런 기분이 있더라고요. 소리 지르고, 울고 그러면 속도 시원해지고…. 악역은 당장은 아닌 것 같고, 좀 더 내공이 있을 때하고 싶어요. 제가 연민정을 했다면 조금 다른 연민정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유리 언니가 보리 역할을 해도 마찬가지고요. 똑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느끼는 감성이 달라서 연기도 달라지거든요"

벌써 경력 10년 차의 20대 여배우. 그러나 오연서는 웬만한 신인보다 더 자신의 연기에 엄격했다. '왔다! 장보리'와의 이별 소감에서도 '왜 좀 더 잘하지 못했을까 서운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연기가 제대로 안 나올 때 속상해요. 그 순간을 털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자꾸 다시 찍고 싶은 생각들이 절 괴롭혀요.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되지 않는 연기는 머리로 알아요. 그래서 표현이 되지 않는 연기로 망치고 나면 서운하고 속상해요. 그런 점이 좀 아쉽죠"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배우 오연서. (웰메이드예당 제공)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를 고집해 온 것도 한 평생 연기만 해온 선배 배우들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한만큼, 아니면 준비해 간 것보다 연기가 잘 나왔을 때 선생님들(선배 배우들)이 칭찬해주시면 뿌듯해요.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고요.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연기는 일단 자기 만족이 커요. 시청률 50~60%가 나와도 제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면 슬플 것 같아요"

쉬는 날에 만화책만 본다며 웃을 땐 영락없는 20대 청춘이었다.

"잠도 많이 자고, 못 봤던 만화책도 많이 보고 싶어요. 작품 끝나고 3개월 정도는 항상 쉬었는데 집에서 만화책만 보고 이러다 보니 쉬는 것도 지루해지더라고요. 자기 관리하면서 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직까지 열심히 해야 할 때고, 보여줄 것이 더 많아요"

"연기할 때 빼고는 스스로 배우 같다는 생각을 안 해요. 드라마에 나오는 톱스타 여배우들 보면서 진짜 여배우들은 저렇게 살고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저는 그렇게 안 살고, 평범하게 살고 있거든요. 일하지 않고 있으면 20살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러다 연기 이야기만 나오면 다시 눈을 반짝이며 여배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연기는 사실 연습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많이 만나고, 경험해보고, 관찰하고…이런 사소한 것들이 연기에 도움이 많이 돼요. 고현정 선배도 좋아하고, 신민아 선배의 사랑스러움도 좋아요.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작품 속 캐릭터에 반하게 되더라고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해 '파리의 연인', '로맨스가 필요해' 시리즈, 웹툰 치즈인더트랩, '별에서 온 그대' 등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원래 좋아하는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인데 달달한 것을 되게 좋아해요. 쉴 때는 '별에서 온 그대'를 눈물 콧물 흘리면서 봤어요. '치즈인더트랩' 홍설과 얼굴은 닮았는데 많은 분들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우려하더라고요. 제의가 들어온다면 영광이죠"

지금은 명실상부한 20대 주연급 여배우지만 그도 막막한 배우 지망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밝고 쾌활한 에너지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

"오디션을 진짜 많이 봤는데 항상 최종에서 떨어지는 거예요. MBC에서도 유명했어요. 왜 안됐는지 들어보니까 되게 침울하고 우울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오디션을 보러 가도 수동적이었는데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말숙이 캐릭터가 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매달렸어요. 말숙이 연기를 보고 PD님들이 깜짝 놀랐는데 제가 그런 밝은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PD님들은 그런 밝음을 좋아하는 것 같고 대중들도 밝고 건강한 모습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그는 어떤 배우로 세상에 기억되고 싶을까. 답은 간단했다. 배우 다운 배우가 되는 것, 그것이 오연서의 목표였다.

"여배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죠. 사람 냄새나는 배우가 돼서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진심으로 연기해서 진심을 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연서는 스스로에게 100점 만점에 50점을 매겼다. 생각보다 짠 점수에 의문을 표하니 멋쩍게 웃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잘하라는 의미예요. 채워 놓으라는 의미로 그렇게 점수를 매겼어요. '왔다! 장보리'를 하면서 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은 50점 줬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55점, 60점 이렇게 서서히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한번에 많이 주면 나중에 줄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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