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205일 만인 7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안이 처리됐다. 참사가 일어난 지 약 7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가족은 끝까지 상처를 입어야 했다. 정치권은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외쳤지만 '진짜 국민'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 직전 찬반 토론자로 나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은 위헌적 요소를 담은 지극히 위험한 법이라고 주장하며 세월호 법 통과를 반대했다.
하 의원은 토론 말미에 "위헌적 요소를 담은 세월호 법 통과는 이후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이 더 해지고 그분들의 명예까지 손상될 것"이라며 세월호 유가족을 걱정(?)하는 말을 남겼다.
하 의원의 배려 섞인 발언에 유가족은 욕설을 쏟아냈고 울분을 터뜨렸다. 본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국가가 어떻게 304명의 희생자 가족 앞에서 위헌이라는 망발을 일삼을 수 있는지 정말 대단히 분노스럽다"고 억누른 감정을 표출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참사이후 지금까지 계속 정치권으로부터 이렇게 '쓰임'을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한 달 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카메라를 응시한 채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6.4 지방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행해진 '정치적 쇼'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유가족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믿고 의지했다.
하지만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을 외면했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46일 동안 목숨을 걸고 단식을 했을때도, 유가족들이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했을때도 대통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며 농성에 들어간지 76일만인 지난 5일 청운동 농성장에서 철수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야당도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세월호 청문회의 기관보고 일정을 잡는 과정에서 월드컵 기간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정에서도 그렇듯 정치권이 말하는 '국민'은 언제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자신들의 정책방향을 합리화 하기 위해 쉽게 갖다 쓸 수 있는 수사로 전락했다.
지난 5일 청와대 앞 농성장을 철수하며 세월호 희생자 고(故)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우리는 국민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가족들이 스스로 국민이기를 부정한 것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한 것'도 있지만 '더이상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가 대개조론'을 들고 나왔지만 바뀐 건 없었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남은 건 '국민'이길 스스로 부정하게 하는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뿐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 '식량을 충족시키는것, 병기를 충분하게 하는 것, 백성이 군주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일 이 중에 하나만을 지켜야 한다면 '백성이 군주를 믿게 하는 것(民信)'이라고 답했다.
너무 뻔할지 모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불신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국민이 아니다'고 말하는 유가족을 품기 위해 되새겨봐야 할 공자의 답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