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내내 어두웠던 서정원 감독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이라는 고사성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14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K리그 클래식 수원 블루윙즈와 FC서울의 시즌 첫 '슈퍼매치'. 서울은 시즌 첫 승을 올리기까지 약 3분만을 남겨뒀다. 상대는 영원한 숙적이자 라이벌 수원, 1승 이상의 의미가 담긴 승리의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서울의 뜻대로 풀렸다. 후반 43분까지는 그랬다.
수원에게는 최악의 전반전이었다. 전반 19분 서울의 간판스타 데얀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순식간에 측면이 뚫리면서 위기를 맞았고 데얀은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호쾌한 중거리슛을 날려 수원의 골망을 흔들었다.
전반 38분에는 스트라이커 정대세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경기 시작 6분만에 경고를 받은 정대세는 공을 주우려는 서울 골키퍼 유상훈을 뒤에서 걷어차다 또 한차례 경고를 받았다. 공을 빼앗으려는 시도로 보였지만 의미가 없고 해서도 안될 플레이였다.
10대11로 싸우는 열세 속에서 사령탑으로는 '슈퍼매치'에 처음 나서는 서정원 수원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0-1로 지나 0-2로 지나 패배는 마찬가지다. 후반 37분 수비수 홍순학을 빼고 공격수 라돈치치를 투입했다.
라돈치치는 투입되자마자 '대형 사고'를 쳤다. 후반 43분 페널티박스 우측에서 스테보가 올린 크로스를 정확히 머리로 받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서정원 감독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감격을 숨기지 못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뜨렸을 때나 1997년 짜릿한 헤딩골로 '도쿄대첩'의 발판을 놓았을 때보다 더욱 기쁜 듯 보였다.
장고 끝에 나온 절묘한 한수였다. 서정원 감독은 후반 내내 라돈치치의 투입 시기를 두고 고민했다. "급하다고 해서 라돈치치를 빨리 투입하면 분명 수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보내면서 히든카드로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생각했고 10분 남기고 투입이 적절했다"고 말했다.
참고 기다린 끝에 던진 한수가 최상의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서정원 감독의 용병술에 '슈퍼매치'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음은 물론이다.
공교롭게도 서정원 감독은 '슈퍼매치'로 불리는 라이벌전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92년 서울의 전신 안양에 입단한 서정원 감독은 유럽에서 뛰다가 1999년 복귀할 때 안양이 아닌 수원과 계약을 맺었다. 이에 안양 팬들은 그해 3월에 열린 수원과의 경기에서 서정원 유니폼 화형식을 거행했다.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때부터 두팀의 라이벌전은 본격화됐다.
서정원 감독은 감독으로 처음 맞이하는 '슈퍼매치'를 앞두고 서울에 대해 "선제골을 넣고도 지키지 못하는 게 부진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놀랍게도 서정원 감독이 던진 한마디가 이날 경기 내용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1-1로 경기를 마친 수원은 이로써 '슈퍼매치' 9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2010년 8월28일 4-2 승리를 거둔 이후 7승2무째다. 수원, 특히 서정원 감독에게는 승리만큼이나 기쁜 무승부다. 절묘한 한수에서 비롯된 기사회생, 서정원 감독은 과연 '슈퍼매치'의 살아있는 역사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