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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이어폰을 귀에 꽂고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전봇대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우악스런 두 팔이 여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칠 새도 없이 끌려간 여성은 곧 새카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년 전 오늘이었다. 2012년 4월 1일 수원시 지동 주택가 골목에서 살인마 오원춘이 20대 여성을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 불 꺼진 상점에 인적도 드물어…지동엔 스산한 분위기 여전
사건은 잊혀지는 듯했다. 1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악몽의 기억은 어두운 골목 구석구석 남아 있었다.
지난 30일 수원시 지동. 저녁 8시를 넘긴 이른 저녁시간이었지만 거리에 인적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몇몇 호프집 네온사인만이 적막한 거리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오원춘 사건 이후 지동 일대는 시민안전특구로 지정됐다. 피해 여성이 끌려갔던 전봇대를 비롯해 동네 곳곳에 55개의 보안등도 새로 설치됐다.
그러나 사건의 공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는 주민들의 얼굴에 아직 남아있다.
지동에서 15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민 김모(55,여)씨는 "벌써 1년 전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어렵게 말문을 뗐다.
저녁마다 운동을 나오지만 되도록이면 일찍 들어가려고 노력한다는 김 씨는 "처음에는 지나가기도 두려웠다"며 "너무 늦게 안다니고 될 수 있으면 일찍 다닌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주민들 사이에 혼자 다니는 대신 짝을 지어 다니는 분위기도 생겼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귀가한다는 안모(18)양은 "1년이 지났지만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아직도 무섭다"며 "사건이 일어난 집 옆에 사는 사람도 그 사람(오원춘)을 닮아서 왠지 무서웠다"고 두려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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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범죄 느는데 체감안전도는 '바닥'…주민들 "경찰 더 많이 다녔으면"오원춘 사건 이후 경찰은 112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상황실 요원 170명을 증원하는 등 112 신고 프로세스 개선에 나섰다.
또 권역별 112 전담체제를 구축해 경기남부권을 수원권, 성남권, 안양권, 부천권으로 나눠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대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 주민들이 느끼는 체감안전도는 여전히 바닥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0월 경찰청이 16개 지방청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감안전도 조사에서 경기청은 59.4점으로 전체 11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시민 3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치안고객만족도 역시 77.3점으로 16개 지방청 중 14위에 그쳤다.
반대로 살인, 강도 등 5대 강력범죄 발생은 증가하는 추세다.
1일 경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5대 강력범죄는 모두 13만 6342건으로 2011년 13만 5002건보다 1천여건 증가했다.
특히 강간, 추행 등 성범죄는 2012년 4천471건으로 2011년 4천 378건보다 2% 늘었다.
낮은 치안 만족도와 증가하는 강력 범죄 속에서 지동 주민들의 공포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건 이후 오원춘이 살던 집 철문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겼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밤에 다니기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고생 신모(17)양은 "집에 갈 때 어둡고 뒤에서 모르는 사람이 쫓아오면 너무 무섭다"며 "사건 이후 순찰차가 자주 다니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안심이 안 된다"고 말했다.
오원춘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48)씨도 "무서운 동네라고 소문이 나면서 인적이 끊기고 손님도 자연스럽게 줄었다"며 "밤늦게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보면 남자인 나도 무서울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늦은 저녁 혼자 귀가하던 김모(24,여)씨도 치안 불안을 호소했다. 김 씨는 "사건 이후에 마을에 꽃도 심고 순찰차도 다니지만 사건이 일어나려면 경찰이 있는 순간을 피해서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좀 더 실질적인 치안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