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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39)는 30일 오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은퇴 기자회견 자리에 그동안 자신이 입고 뛰었던 유니폼 13장을 들고 왔다. 처음으로 마운드에 섰던 공주중학교 시절 유니폼부터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진출의 역사를 썼던 LA 다저스 유니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은 한화 유니폼까지, 그 안에는 '코리안 특급'이 보낸 19년 영욕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만약 사진 촬영을 위해 단 한장의 유니폼을 골라야 한다면? 박찬호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져봤다. 박찬호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유니폼 하나하나에 담겨진 의미와 추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유니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추측해 볼 수는 있었다.
LA 다저스의 유니폼을 바라보는 순간 박찬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목소리에서는 울먹임이 느껴졌다. 박찬호는
"다저스의 파란 유니폼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팬들도 그렇고 나한테도 그렇고..."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박찬호는 다저스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이전까지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 의미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참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던, 먹튀라는 값진 별명도 이때 만들어졌다. 난 항상 최선을 다했고 다만 부족했을 뿐인데, 그게 죄처럼 여겨졌던 게 굉장히 분하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표정은 진지했지만 어둡지도 않았다. 금세 밝은 표정을 짓더니 "그 아픔을 견뎠기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편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금전적으로 큰 도움을 줬던 팀"이라며 웃었다.
박찬호는 2001시즌이 끝난 뒤 5년간 6,500만달러의 초대형 계약과 함께 텍사스에 입단했으나 부상과 부진의 반복으로 '먹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받아 들여야 했다. 야구 인생 최대의 고비였다. 하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다. 화려했던 나날과 고통의 시간들은 이제 모두 지난 일이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모든 부담을 내려놓은 한 명의 야구 영웅이 있었을 뿐.
박찬호는 동료들의 기념 사인이 담긴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유니폼을 소개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그 해 내셔널리그 우승 반지를 들고왔다.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내 평생 전혀 기회가 없을 것 같았던 월드시리즈에 입고 나섰던 유니폼이다. 미국에서 우승했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도 우승(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했다. 나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찬호는 "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 장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뭔가를 이뤘기 때문이 아니라 잘 견뎌왔기 때문이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항상 나를 지탱해 줬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 다시 도전하고 이룰 수 있었기에 더 의미있고 값진 시간이었다"며 19년 동안 걸어온 자신의 야구 인생을 정리했다.
11월30일은 박찬호에게 굉장히 뜻깊은 날이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 날이자 7년 전 이날에는 아내 박리혜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공교롭게도 기자회견이 열린 그 시간대가 바로 7년 전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시간대였다.
박찬호는 "어제 부인과 둘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와중에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아쉽다는 말보다 축하한다는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열심히 했구나, 최선을 다했구나, 그렇게 느꼈다. 앞으로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박찬호는 미국에서 야구 행정과 스포츠 경영을 공부해 미국에서 쌓은 풍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훗날 산업야구로 발전할 한국 야구계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