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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찾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서원마을. 마을 입구 마을회관 앞 벤치에는 동네 주민이 삼삼오오 모여 삶은 밤과 포도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화려한 고층빌딩은 없지만 첫눈에 단정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서원마을은 그린벨트, 고도제한, 군사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재개발이 안되는 지역이었지만 마을 재생사업으로 새롭게 태어난 곳이다.
마을 재생사업을 뉴타운 등 재개발처럼 구역을 지정해 완전히 철저한 후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마을 형태를 그대로 살리는 '마을 리모델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구에서는 도서관, 마을회관, 골목 정비 등 기반시설을 확충해주고, 집 주인들은 필요에 따라 집을 다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30년 된 집 가운데 리모델링을 해서 계속 사용하는 집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재개발 사업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원주민 재정착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서원마을에도 2008년 마을 재상사업을 하기 전에 부동산 개발업자가 찾아와 타운하우스를 개발하겠다며 주민들을 찾아왔었다.
개발이익에 따라 '10억+알파'를 주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다른 재개발 지역처럼 "집 내주고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원마을은 서울시에서 추진한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금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 벤치마킹을 하려고 찾아오고 있다.
마을 재생사업에 대해 주민들은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서원마을운영위원회 감사인 이숙희(59) 씨는 "삶의 만족도는 엄청나다"며 "아파트에 살 때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이곳에서는 누구와도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수 있다"고 했다.
주민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서고 담장을 낮게 정비해 주민들 간 '소통'이 더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시에서는 주차공간에 녹지를 깔아주기도 했다.
사실 서원마을은 이미 적지 않은 유명세를 탔고, 최근 인기 CF감독이 이사 올 집을 짓고 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마을을 다시 꾸민데서 한발 더 나가 마을 공동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 씨는 "최근 마을을 구경하겠다고 찾는 사람이 많아 마을 입구에 카페를 차리거나 손으로 담근 된장, 고추장을 파는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된장 사업은 노인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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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마을 같이 마을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서울에만 8곳이다. 동작구 흑석동, 금천구 시흥동, 은평구 길음동, 도봉구 방학동, 구로구 온수동, 장수마을(성북 삼선동) 등 재개발 사업에서 제외된 곳도 있지만 재개발 사업에서 재생사업으로 돌아선 곳도 있다.
마포구 연남동, 서대문구 북가좌동 등은 재개발을 위해 정비예정구역 지정됐었지만, 마을 재생사업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남동의 허현 재생사업 추진위원장은 "기존 재개발은 폐해가 많아 주민들이 반대가 심했다"며 "재생사업은 시에서 기반시설은 깔아주고 운영은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할수 있어 찬성률이 높았다"고 밝혔다.
새로운 재생사업 추진 지역으로 선정된 곳도 11곳이나 된다. 이 가운데 성북구 정릉동, 도봉구 도봉동(새동네), 영동포구 대림 2동, 서대문구 홍제동(개미마을) 등은 지역특성화 사업으로 탈바꿈한다.
노후주택이 밀집한 강북 미아동, 은평구 응암동(산골고개), 마포구 성산동, 동대문구 휘경동(배봉마을)과 기존에 재개발 구역이었던 구로구 구로동, 송파구 잠실동 등 포함됐다. 존치구역으로 재개발에서 빠졌던 금천구 시흥 3동도 마을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별도로 은평구에서는 '두꺼비 하우징'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은평구는 산새마을(신사2동)을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하고 쌈지공원, 도시텃밭, 주차공원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산새마을 아랫 마을은 서울시의 재생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주민의견을 수렴중이다.
마을 재생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뉴타운 등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대한 회의론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갈수록 개발이익을 내기가 어려워질 뿐더러 주민들이 추가부담을 떠안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뉴타운 지역의 주민 재정착률이 20~30%에 불과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시는 재개발 지역 중 추진위나 조합 등 사업 주체가 없는 정비예정구역 266곳과 사업 주체가 있지만 실태조사를 요청한 50여 곳에 대해 순차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 지역 중에서 마을 재생사업으로 돌아서는 곳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실태조사에 따라 재개발 사업을 포기한 곳 중 일부에서는 마을 재생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