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故 장준하 시신 수습한 백기완 "타살 확실했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사회통합 대통령 되려면 故장준하 사망 의혹부터 풀어야

- 장준하·백기완, 긴급조치 첫 구속자
- '사상' 발간자와 독자로 첫 만남
- 잔인무도한 학살, 과학적 입증해야
- 박근혜 與 후보 등 해명 앞장서야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다 1975년 숨진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당한 지 37년 만에 유골에 난 동그란 함몰 부위가 공개되면서 지금 파문이 일고 있는데요. 당시 반 유신운동을 함께했고 긴급초치 1호가 떨어지자마자 함께 구속됐던 백기완 선생. 백기완 선생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또 가로 6cm, 세로 7cm의 동그란 함몰 흔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연결해 보죠.

백기완

 

◇ 김현정> 얼마 전에 고 장준하 선생 추도식도 다녀오셨죠? 매해 추도식이 있습니다만, 아마 올해 추도식은 좀 심경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 백기완> 신문에 장준하 선생이 학살당한 그 실상을 보면 누구나 이것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가장 잔인무도하게 장준하 선생을 학살했다, 더구나 가장 비열하게 학살했다,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아직도 그 진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박정희 유신독재가 유지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끝장내야 된다는 생각을 가져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겁니다.

◇ 김현정> 처음에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죠?

◆ 백기완> 원래는 부산 피난 시절에.. 저는 그때만 해도 어렸고 장준하 선생은 한창 젊었고요. 그럴 때 만났거든요. 그런데 내가 처음 본 것은 장준하 선생하고 장준하 선생 부인이 무슨 잡지를 만들어서 손수레 끌고 팔러 다니는 걸 봤어요.

◇ 김현정> 그게 무슨 잡지였습니까?

◆ 백기완> 그게 사상.. 그 다음에 사상계라고 했었는데.

◇ 김현정> 사상에서 사상계로. 그걸 보고서는 어떠셨습니까?

◆ 백기완> 그때 우리 젊은 세대들은 그걸 보는데, 책을 만든다는 것은 6.25 전쟁 그때는 상당히 상상하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걸 만들어서 한 분은 앞에서 손수레를 끌고 한 분은 뒤에서 끌면서 팔고 다니고. 그리고 그 책에 대해서 유심히 관심을 가지고 읽고 좋아하고 그랬었죠. 그래서 알게 됐어요.


[YouTube 영상보기] [무료 구독하기] [nocutV 바로가기] [Podcast 다운로드]


◇ 김현정> 잡지를 내는 발간자와 독자의 입장으로 만나신 거네요?

◆ 백기완> 그렇죠. 그것도 길거리에서요.

◇ 김현정> 그렇게 해서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긴급조치 1호가 발령이 되고 일주일 뒤에 첫 구속자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고 장준하 선생과 백기완 선생이셨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떻게 된 거죠?

◆ 백기완> 5.16 군사반란을 아주 타도하려고 우리는 싸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통일이라는 걸 앞세워서 유신독재를 만들었어. 쉽게 말씀드리면 영구독재예요.

◇ 김현정> 영구독재, 영원한 독재.

◆ 백기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누가 뽑느냐? 우리 시민이 뽑는 게 아니고 박정희가 지목한 유신 앞잡이들이 뽑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구독재죠. 이 땅에 있는 모든 풀, 나무들까지 반대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걸 반대하는 데 나도 꼽사리끼다 보니까 장준하 선생하고 같이 감옥도 가고 그랬죠.

◇ 김현정> 지금 겸손하게 '그냥 중간에 끼어서 나는 참여한 것이다'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앞장서서 유신 반대운동을 했고, 그래서 두 분이 나란히 구속이 되신 거죠. 그런데 그때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매를 맞을 때 장준하 선생이 '백기완이는 그만 때려라'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요?

◆ 백기완> 장준하 선생이 조사를 받으면서 "백기완 의원은 더 이상 때리지 마라. 진짜 신념에 가득 찬 그 양반을 때리면 죽어도 자기는 잘했다고 그런다. 너희들이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르다고 때려서 죽이면 민족문화의 보고가 없어져. 민족문화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천재야. 그러니까 천재를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고 때리면 안 돼. 그러면 나 조사 못 받겠다." 딴죽을 걸었다는 것 아니오. 그래서 그때부터 덜 맞았죠.

◇ 김현정> 그렇게 해서 장준하 선생 덕분에 고문도 좀 덜 받으시고. 두 분이 참 각별한 인연이세요.

◆ 백기완> 그렇죠. 일주일 덜 맞았죠.

◇ 김현정> 그 밖에도 장준하 선생 하면 떠오르는 어떤 생생한 에피소드 있습니까?

◆ 백기완> 그 뒤에도 내가 뻔지르르하게 잡혀가지 않았수? 새벽에 나를 내보내는 거야. 꼭 내가 나올 때쯤에 장준하 선생이 돼지고기 한 근하고 소주 한 병을 사와서 굽자고 해요. 비계는 자기가 먹고 고기는 나만 주더라고. 그래서 나는 장준하 선생이 비계를 좋아하는 줄 알고 고기만 집어먹었죠. 한참 있다 보니까 좋아하는 동생은 비계를 안 주고 자기만 드셨던 거야. 이렇게 인품이 있던 분인 거야.

◇ 김현정> 긴급조치 1호로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서도 당시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유신반대 운동을 계속하다가 1975년 8월 17일,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약사봉을 등산하다가 추락했다' 이렇게 알려지는데요.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 백기완> 새벽 1시쯤에 암살 현장을 가봤거든요. 나는 그 양반의 머리를 들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리하고 허리를 들고. 나는 머리를 들다가 다른 손에 피가 묻어나는 걸 보고. '아, 여기를 맞았구나.' 그랬어.

◇ 김현정> 머리를 보고?

◆ 백기완> 그게 바로 엊그제 신문에 나온 그거예요.

◇ 김현정> 그 동그란 함몰의 흔적이요?

◆ 백기완> 동그란 걸 보라고. 이건 아주 날카로운 쇳덩어리를 가지고 '딱' 하고 치는 기술로 때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그 동그랗게 자국이 안 나오게 돼 있어. 이번에는 진짜 '얼마나 잔인무도하게 학살했느냐'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앞장을 서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박근혜가 요새 신문에 매일 나오고 방송에 매일 나오지만 유신독재의 정통을 이어받은 사람이야. 그걸 부인하지 않아, 본인이. 그러니 유신독재가 학살한 사건이니까 당연히 앞장서서 그걸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이바지해야죠.

ㅁㄴㅇ

 

◇ 김현정>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고 박근혜 후보는 박근혜 후보지. 박근혜 후보에게 그 당시 사건을 책임지라고 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 백기완> 그건 말이 잘못된 거예요. 역사적인 과오는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나도 그것은 과학적으로 캐야 됩니다. 연좌제하고는 관계없는 거야. 그런 애매모호한 신문용어를 가지고 역사의 범죄를, 눈 가리는 범죄에 가담하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 김현정> 이것은 연좌제가 아니라 역사를 밝히자는 거다?

◆ 백기완> 그렇죠.

◇ 김현정> 지금 지지율 1위의 대선후보로서 당연히 앞장서야 될 일이라는 말씀이고요?

◆ 백기완> 이 땅의 대통령을 하겠다면 오늘의 역사적인 현실이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역사적 현실은 신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그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한 다음에는 진짜 달라진 게 없어야 돼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그늘진 데, 밝은 데 이런 것 없는 통일을 이뤄야 돼요. 오늘 우리들의 앞에 놓여진 명제거든요. 그 명제를 이어받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 그런 데 끼려고 하면 박근혜도 이번에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잔인무도한 학살, 암살, 내막을 밝히는 데 책임이 있는 분입니다.

◇ 김현정> 그 당시 역사를 생생하게 아는 분을 저희가 모셨으니까 조금만 더 그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그 당시에 함께 등산을 했던 최후 목격자, 김용환 씨라는 분이 있는데요. 그분은 끝까지 “추락사가 맞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이유는 뭘까요?

◆ 백기완> 중앙정보부, 요새 국정원 직원이 '그 사람은 중앙정보부의 사설기관의 정보원'이었다고 그랬잖아. 장준하 선생 주변에서 나하고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장준하 선생하고 등산을 같이 갈 수가 있는 거야?

◇ 김현정> 그분은 전혀 모르시는 분이세요?

◆ 백기완> 나는 몰라요. 그 사람이 바로 밝혀야 될 당사자야. 무시무시한 암살, 학살의 내막을 밝혀야 될 당사자라고요.

◇ 김현정> 그 후에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에 '재조사를 하자' 이런 분위기가 있었는데요. 그때는 왜 뚜렷하게 밝혀지지가 않았죠?

◆ 백기완> 그때 그 비리를 밝힐 만한 역사적인 사명의식이 모자랐던 겁니다. 조금은 노력했던 흔적이 있기는 있어. 진짜 하려고 했다면 했다고 나는 보고 있어요.

◇ 김현정> 그동안의 노력이 어느 정부에서든지 부족했다. 이번에 반드시 재조사를 해서 밝혀내자, 이런 주장이시군요?

◆ 백기완> 안 하면 대한민국에서 살 자격이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될 자격이 없어요.

◇ 김현정> 어제 장준하 기념사업회와 유족들이 청와대를 향해서 진상재조사를 공식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 백기완> 그랬어요? 그거 잘하는 거예요.

◇ 김현정>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37년간을 끌어온 의문이 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인터뷰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백기완 선생님,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홈페이지 바로가기]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